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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자격이 없다.(사사기 9:7~21)

by TwoTalents 2019. 12. 30.

이미지 출처 - Walking with the Bible

제목 : 자격이 없다.

 

본문 : 사사기 9:7~21

7. 사람들이 요담에게 그 일을 알리매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로 가서 서서 그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세겜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의 말을 들으시리라

8.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자신들 위에 왕으로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9.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게 있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10.나무들이 또 무화과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1.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단 것과 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12.나무들이 또 포도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3.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14.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5.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 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16.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의 손이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17.우리 아버지가 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너희를 위하여 싸워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냈거늘

18.너희가 오늘 일어나 우리 아버지의 집을 쳐서 그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이고 그의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이 너희 형제가 된다고 그를 세워 세겜 사람들 위 에 왕으로 삼았도다

19.만일 너희가 오늘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면 너희가 아비멜렉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요 아비멜렉도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려니와

20.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21.요담이 그의 형제 아비멜렉 앞에서 도망하여 피해서 브엘로 가서 거기에 거주하니라

 

말씀 :

지난 주에는 아비멜렉이 무리한 과정, 정확하게 말하면 죄악 된 과정을 통해 왕이 되었던 것을 나누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왕이 되고 난 직후의 일을 다루고 있다.

본문에는 형제들이 죽임을 당하는 고난 속에서도 생명을 보존하게 되었던 기드온의 막내아들 요담이 등장한다.

그 요담이 창의적인 우화를 통해 아비멜렉이 왕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것이 오늘의 주된 내용이다.

본문 7.

 

사람들이 요담에게 그 일을 알리매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로 가서 서서 그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세겜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의 말을 들으시리라

 

형제들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 아비멜렉의 악행을 요담이 듣게 된다.

그런데 요담은 바로 더 멀리 도망가지 않는다.

오히려 아비멜렉과 그의 일당들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자신의 외침을 들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들으심과 관련이 있음을 선언한다.

이 부분이 하나님의 영이 요담에게 임한 것인지, 아니면 요담 스스로의 분노를 외치는 것인지에 대해 성경에는 직접적인 기록이 없다.

하지만, 앞뒤 정황상 개인의 복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요담은 일방적인 복수나 저주를 말하고 있지 않다.

아비멜렉과 그를 왕으로 세운 이들의 죄악을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해결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요담의 신앙이 성숙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성숙한 신앙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담을 그리심 산꼭대기로 보내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요담은 나무에 관한 우화를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요담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셨거나, 깨달음을 주신 것으로 보인다.

본문 8~15절까지의 내용은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나무들의 세계에서 왕을 세우려고 한다.

그런데 나무들 사이에 인지도가 높고 존경받는 나무들이 줄줄이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추천받은 감람나무는 자신의 기름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거절의 이유였다.

왕이 되어 권력을 행사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감람나무이기 때문에 진실로 하나님이 영화로움을 받으시는 것이다.

두 번째 추천받은 무화과나무는 자신의 단 것, 그리고 아름다운 열매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

무화과나무에게는 왕이 되는 것 보다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본문에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지만, 무화과나무 역시 하나님과 사람들을 자신의 달콤한 열매로 기쁘시게 하는 것을 자신의 본문으로 생각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세 번째 추천받은 포도나무도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포도 열매, 그 열매로 빚어낸 포도주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 경우 모두가 기름, 열매, 포도로 빚은 포도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영화롭게, 기쁘게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참으로 신실한 나무들인데, 정작, 이 나무들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왕이 되라는 제안을 거절해 버린다.

이렇게 나무들마다 거절을 하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게 된 나무가 하필 가시나무였다.

본문 14.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모든 나무들이 다 거절을 하고 가시나무에게까지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가장 확률이 낮았던 가시나무가 나무들의 왕이 되게 생긴 것.

 

아무튼, 가시나무만 남게 된 상황에서 가시나무가 이렇게 얘기한다.

본문 15.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가시나무는 자신이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을 제안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다른 나무들에게 자신을 왕으로 삼게 되면 자신의 그늘에 와서 쉬라는 것이다.

가시나무에 그늘이 있는가?

없다.

자신이 할 수도 없으면서 마치 할 수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시나무의 품을 그늘로 생각해서 쉬어도 되는 것인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 그늘은 커녕 그냥 가시에 찔려서 아플 뿐이다.

가시나무의 품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나무들은 상처를 입게 된다.

가시나무가 진정으로 다른 나무를 위한다면, 오히려 자기 곁에 오지 말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품으로 오라는 것.

다른 나무는 생각지도 않고, 오직 자기의 유익, 기쁨만을 생각하는 가시나무의 이기적인 성품이 드러나는 것이다.

거기다가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다.

백향목은 나무들 중에서도 가장 귀한 나무 중 하나이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이 귀한 나무를 불살라버리겠다는 것.

이것을 현실에 빚대어 말하면, 아비멜렉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세겜의 고귀한 이들, 지도자들을 다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결국, 이 우화의 본뜻이 무엇인가?

기드온과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시지 않는 이상, 왕이 될 생각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기드온에게 제대로 신앙 교육을 받았던 그의 아들들, 지금 외치고 있는 요담의 형제들도 아버지처럼 하나님의 뜻과 반하여 왕이 되고픈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겜 사람들이 가시나무 같은 아비멜렉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백향목과 같았던 기드온의 아들을 다 죽이고 아비멜렉을 자신들의 왕으로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우화를 마친 요담은 본문 16절을 통해 이렇게 외친다.

 

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의 손이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요담은 이제 직접적으로 세겜 사람들의 잘못을 꾸짖고 있다.

세겜 사람들이 기드온의 아들을 죽인 직접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70명이 자신들을 다스리는 것보다, 혈연관계인 한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가?

기드온의 집안에 과거에 우리 집안을 지켰든지 말든지.

지금, 그리고 앞으로 불편한 것이 싫은 것이다.

그런데 정작 기드온의 아들들은 세겜을 다스릴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세겜 사람들은 기드온의 공로를 너무 쉽게 잊어버렸다.

아니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본문 17, 18.

 

우리 아버지가 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너희를 위하여 싸워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냈거늘 너희가 오늘 일어나 우리 아버지의 집을 쳐서 그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이고 그의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이 너희 형제가 된다고 그를 세워 세겜 사람들 위에 왕으로 삼았도다

 

목숨을 다해 이스라엘을 지켰던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 기드온이다.

그런데 세겜 사람들은 그 기드온의 아들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그리고는 진짜 아들도 아닌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을 혈연이라는 이유 때문에 왕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요담은 여기서 아비멜렉의 처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아비멜렉은 이스라엘 전체가 아닌 그저 세겜 사람들 위에 세워진 왕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요담이 이렇게 말한다고 한들 이기심으로 스스로 미혹당한 세겜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겠는가?

요담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밝히실 것을 선언한다.

본문 19, 20.

 

만일 너희가 오늘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면 너희가 아비멜렉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요 아비멜렉도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앞으로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드러내시리라는 것.

여룹바알에게 행한 일들이 잘한 일이라면.

기드온을 배신하고 아비멜렉을 세운 일이 옳은 일이라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들의 왕을 세운 일이 의로운 일이라면.

당연히 그것으로 인해 아비멜렉도, 세겜 사람들도 기쁨이 가득 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잘한 일도, 옳은 일도, 의로운 일도 아니라면.

반드시 아비멜렉으로 인해 세겜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

 

요담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홀연히 사라지게 된다.

본문 21.

 

요담이 그의 형제 아비멜렉 앞에서 도망하여 피해서 브엘로 가서 거기에 거주하니라

 

이후에 요담은 더 이상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가 아비멜렉의 횡포 속에서도 목숨을 보호받았던 이유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세겜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되어 진다.

아무튼, 그는 멋있게 주님의 뜻을 전함으로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다.

 

오늘 말씀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인간의 욕심이 자격 없는 자를 세우게 된다는 것이다.

감람나무도, 무화과나무도, 포도나무도 나름의 나무들의 왕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왕의 자리를 거절하였다.

?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본연의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왕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 나무들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무들은 자신들이 왕이 될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던 그 나무들이 줄줄이 거절할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알아차려야 했었다.

아직은 아니구나.

아직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구나.

그런데 나무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왕을 세우고자 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최악의 경우를 만들고 만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는 것은 인간의 뜻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이상, 그 누구라도 그는 왕이 될 자격이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보이는 사람을 왕으로 세우려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분노는 여기에 있다.

 

사랑하는 믿음의 신앙공동체 여러분.

비단 왕뿐만이 아니다.

교회에서의 많은 직분, 담당자는 그저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함께 기도하고 고민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렇게 응답 된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것 같으니깐.

위에서 빨리빨리 사람을 세우라고 하니깐.

그렇게 해서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은 일에도, 드러나지 않는 직분에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람을 세우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남들 하니깐, 다른 교회에서도 하니깐.

우리 교회만 안 하고 뒤처지는 것 같으니깐.

이런 유혹에 넘어지지 않는, 끝까지 하나님의 영광스러움과 성도들의 기쁨을 최우선으로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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