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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사사 돌라(사사기 10:1~2)

by TwoTalents 2020. 1. 2.

히브리어 돌라 - '벌레'라는 뜻

제목 : 사사 돌라

 

본문 : 사사기 10:1~2

1.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2.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말씀 :

자칭 왕이었던 아비멜렉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짧은 왕의 시대는 끝이 났다.

이제 다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로 인해 이스라엘은 다스려졌다.

잠시 멈춰졌던 사사의 시대를 이은 사람은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이며 부아의 아들인 돌라였다.

본문 1절은 다시 시작되는 사사의 시대를 이렇게 설명한다.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그런데 이 돌라에 관한 기록이 너무나도 미미하다.

우리는 앞서 사사기 3장에서 삼갈의 기록도 매우 적었던 것을 보았다.

그때 삼갈에 관한 기록이 사사기 331, 그리고 사사기 65, 이렇게 딱 두절이 전부였다.

삼갈을 기록한 구절에는 그가 실제로 사사였는지조차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기록이 적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돌라는 성경이 분명하게 그가 사사인 것을 밝히고 있다.

거기다가 그는 사사로써 23년간이나 활동했었다.

본문 2.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 그런데도 돌라에 관한 기록은 너무나 적은 분량이다.

대사사로 분류되는 입다와 삼손이 각각 6년과 20년 동안 사사로서 활동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돌라의 짧은 기록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이렇게 돌라의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돌라에 대해 정확한 얘기를 하기가 상당히 모호하다.

단지 당시의 상황과 짧은 기록, 그리고 이 짧은 기록의 양식 등을 통해 대부분을 추측하는 수준으로 나눌 수밖에 없다.

 

다시 본문 1절을 읽어 보겠다.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아비멜렉을 뒤이어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앞서 우리가 살펴보았던 여느 사사처럼 그는 어떤 어려움에서 이스라엘이 벗어나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돌라가 사사의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런데 돌라의 기록은 다른 사사의 기록과 좀 다른 부분이 있다.

 

사사기 38, 9절 옷니엘의 기록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사사기 314, 15절 에훗의 기록이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사사기 331절 앞서 언급한 삼갈의 기록이다.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이 사사들의 기록과 돌라의 기록에 차이점을 발견했는가?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할 때 사사가 등장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구조는 돌라나 다른 사사나 동일하다.

그런데 돌라에게는 이스라엘에게 고통이 되는 주체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옷니엘은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이 이스라엘을 괴롭힐 때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에훗은 모압 왕 에글론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삼갈은 블레셋을 상대로 혜성같이 나타나 놀라운 승리를 쟁취하였다.

그런데, 돌라의 기록에서는 누가 이스라엘을 아프게 했는지, 무엇이 이스라엘의 고통인지 그 주체가 나타나 있지 않다.

이것은 돌라의 기록이 너무 짧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없다.

? 블레셋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삼갈의 기록은 돌라보다 더 짧다.

 

그리고 돌라의 기록에는 다른 사사의 기록과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

사사기 41.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사사기 6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사사기 833, 34.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사사가 죽고 난 뒤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스라엘은 하나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범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것이다.

그 다음에 사사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돌라의 기록에는 이런 기록이 없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목전에서 악을 행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분명히 이스라엘은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돌라가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돌라의 기록에는 왜 이스라엘이 죄를 범했다는 기록도,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일으켜 고통당하게 했다는 기록도 없는 것일까?

 

이것은 고통의 종류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다른 사사의 시대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고통은 외부에 의한 것이었다.

이방 민족이 침략하여 이스라엘을 상대로 노략질하고 살인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원인은 이스라엘의 범죄였다.

그런데 돌라의 시대에는 외부에 의한 고통이 아니라 내부 사정에 의한 고통이었을 것이라는 거다.

돌라, 바로 앞의 시대가 어느 시대였는가?

사사 시대에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왕이 되었던 아비멜렉의 시대였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죽이고,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여 피로써 권력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세겜 사람들과 전쟁을 치른다.

그런데 그 세겜 사람들은 바로 자신을 왕으로 옹립했던 이들이었고, 같은 민족이었다.

비록 아비멜렉의 통치 기간이 삼 년밖에 되지 않았고, 그리고 그의 통치 영역이 세겜과 밀로로 지엽적이긴 했지만.

그런데도 아비멜렉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적지 않은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아비멜렉이 전쟁 중에 여인이 던진 맷돌에 죽임을 당했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혼란이 바로 가라앉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아비멜렉 시대의 상처로 인해 내홍을 겪고 있던 시기에 세워진 사사가 바로, 돌라라는 것이다.

그러니깐 돌라의 역할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내분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스라엘, 같은 민족임에도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신들이 받은 상처를 빌미로 언제든지 민족끼리의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이스라엘, 이런 화약고 같은 이스라엘의 상황을 안정과 평화로 인도하기 위해 세움을 받은 사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했다는 기록도, 그 악으로 인해 이방 민족의 침략을 받았다는 기록도 없는 것이다.

 

어쨌든 돌라는 어지러운 이스라엘의 상황을 멋있게 해결하게 된 것이 분명하다.

본문은 명확하게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비멜렉으로 인한 혼란의 시대를 평안과 안정의 시대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돌라는 다른 사사와는 다르게 군사적 능력보다는 뛰어난 정치력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본문 2절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본문 2절을 다시 읽겠다.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돌라가 사사로 이스라엘을 다스린 23년이 이스라엘에게는 평화의 시대였던 것이다.

그는 뛰어난 정치력으로 안으로는 12지파를 화해시켰고, 밖으로는 이방 민족과 반목하지 않도록 했을 것이다.

만약 돌라가 사사였던 기간에 어떤 전쟁이 한차례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사사기에 기록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록이 없다는 것은 이 시대가 안정의 시대, 평화의 시대라는 것을 방증해 준다.

 

돌라의 기록은 다른 사사에 비해 매우 적고, 그래서 오늘날 설교에서도 돌라가 언급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다른 사사들에 비해 중요하지 않거나 대단하지 않은 인물임을 나타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돌라는 다른 사사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함이 나타난다.

그는 바로 뒤이어 등장하는 사사 야일의 시대로 이어지기까지 전쟁 없이 평화의 시대를 유지한 사사이다.

믿는 자로 하여금 고난 중에서 건지시고, 고통 중에 회복시키시고, 위기를 극복하게 하시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런데 이런 굴곡 없이 평화를 유지하고, 그 평화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최고의 축복이다.

평범한 일상의 축복은 쉽게 받을 수 있는 축복이 아니다.

 

그동안 평화가 길어지면 이스라엘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타락했었다.

하지만 사사 돌라의 시대에는 그러한 타락이 나타나지 않는다.

돌라의 참된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어느 사사도 이루지 못한 것, 바로 평화롭게 다음 사사로 임무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앞서도 살폈듯이 사사가 죽고 난 뒤에는 이스라엘은 하나님 목전에서 악을 행하는 것이 습관처럼 나타났다.

그런데 돌라가 죽고 난 뒤에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지 않았다.

오히려 돌라 시대의 평화가 야일의 시대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갔다.

이것은 돌라의 통치와 역량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그가 얼마나 위대한 리더심의 지도자였는지를 알게 해 주는 부분이다.

 

우리는 많은 기록을 남기려고 노력한다.

보수적 성향의 단체일수도 더욱 그런 것을 보게 된다.

행사 때마다 무조건 사진을 남겨야 한다.

서류가 많으면 일을 많이 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일할 시간에 보고서 작성하고 결산서류 작성하는 허다한 경우를 보면서 그것이 참으로 허망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무엇보다 많은 기록을 남기려는 것은 다음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다분히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내가 이만큼 일을 했다는 것을 드러내놓고 싶은 마음.

나의 업적을 드러내놓고 싶은 마음.

나의 이름을 나타내고 싶은 마음.

주님의 인도보다 내 능력을 칭찬받고 싶은 마음.

주님이 싫어하시는 마음.

 

구약 성경에는 죽음을 맞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올라간 두 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이다.

엘리야가 북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벌였던 위대한 사역은 열왕기상, 하를 거쳐 많은 부분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 에녹이다.

그런데 에녹의 기록은 엘리야에 비해 너무나도 적은 분량이다.

창세기 518~24.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이것이 에녹의 이름이 언급되는 창세기 부분의 전부이다.

누가 누구 낳고 어쩌고저쩌고하는 것을 제외하면 실제적으로는 24절 한 절이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는 엘리야와 같은 반열의 사람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라는 이 기록 하나로 에녹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충분하게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기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가 진실로 중요한 것이다.

 

말씀 마무리.

오늘 우리가 돌라를 통해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드러나지 않아도, 기록에조차 남지 않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나에게 맡기신 사명이다.

인간의 기준으로 그 일의 경중을 따져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이다.

 

주보에는 예배 사회와 기도자가 항상 기록되어 있다.

찬양대와 헌금순서자도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 주보를 접는 사람은 기록이 없다.

주보 접고 나누는 일이 하찮아 보이는가?

주일 예배를 가장 먼저 준비하고, 예배를 위해 이곳에 오는 예배자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일이다.

주방 봉사자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하찮아 보이는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하신 일이 함께 식사하는 일이었다.

그 교제의 자리를 준비하는 위대한 일이 바로 주방 봉사이다.

 

사랑하는 믿음의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기록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다.

내가 봉사하는 것이 주보에 기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 직분이 명칭도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임을 잊지 말자.

내가 그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렇게 충성하는 내가 바로 에녹이고,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내가 바로 돌라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믿음의 패밀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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