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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사사 시대에 왕이 되다.(사사기 9:1~6)

by TwoTalents 2019. 12. 18.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사사 시대에 왕이 되다.

 

본문 : 사사기 9:1~6

1.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그의 어머니의 형제에게 이르러 그들과 그의 외조부의 집의 온 가족에게 말하여 이르되

2.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

3.그의 어머니의 형제들이 그를 위하여 이 모든 말을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매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서 이르기를 그는 우리 형제라 하고

4.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자기를 따르게 하고

5.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다만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

6.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서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말씀 :

우리가 나누고 있는 사사기의 사사는 결코 왕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 하나님께서 세우셨던 임시직이었다.

그리고 그 역할도 제한적이다.

왕이 아니므로 어느 한 가문이 세습하면서 대대로 직분을 감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드온과 기드온의 아들, 손자를 향해 자신들을 다스려 달라고 요구했을 때, 기드온은 그것을 거절한 것이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정, 그러니깐 왕이 세워질 것을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왕이 된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아비멜렉이다.

오늘은 사사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스스로 왕이 된 아비멜렉의 죄악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 아비멜렉이 누구인지는 오늘 본문보다 전 부분에서 설명하고 있다.

사사기 830, 31.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 중 한 명이다.

그런데 그는 정실부인이 아닌 첩의 아들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세겜 사람임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세겜을 분배받았던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에브라임 지파가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던 히위 족속의 여인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어쨌든 아비멜렉은 서자이며, 어쩌면 혼혈인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어려서부터 심한 차별을 겪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 과정이 아비멜렉에게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아무튼, 기드온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 자신의 고향을 찾아가 이렇게 주장한다.

본문 1, 2.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그의 어머니의 형제에게 이르러 그들과 그의 외조부의 집의 온 가족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

 

세겜 사람들에게 너희가 여러 명을 섬길 것이냐? 아니면 한 사람을 섬길 것이냐?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낫겠느냐고 질문을 하고 있다.

당연히 많은 사람을 섬기는 것보다는 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수월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아비멜렉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요즘으로 표현하면 가짜 뉴스인 것이다.

기드온은 앞서 살핀 대로 자신과 자신의 자손들은 왕이 되지 않을 것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기드온의 아들 중에 왕이 되고자, 이스라엘을 다스리고자 노력을 한 사람은 기록상 등장하지 않는다.

굳이 있다면 지금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있는 아비멜렉 자신뿐이다.

그런데 지금 아비멜렉의 주장은 마치 기드온의 아들들, 70명의 아들들이 왕이 되어 백성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다가 자신이 같은 가족, 혈연관계임을 내세워 세겜 사람들로 하여금 기드온을 배신하도록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기드온 시대를 지나며 외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이스라엘을 내부적으로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의 선동에 너무 쉽게 넘어가 버린다는 것이다.

본문 3.

 

그의 어머니의 형제들이 그를 위하여 이 모든 말을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매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서 이르기를 그는 우리 형제라 하고

 

아무리 혈연관계라고 하지만, 그래도 40년간이나 평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사로 헌신한 기드온을 너무 간단하게 배신한다.

과연 그 이유가 뭘까?

첫 번째는 기드온의 실정이다.

앞서 읽었던 사사기 830, 31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다.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기드온은 분명하게 왕이 되는 것을, 자신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을 거절하였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라는 멋진 말을 남기고 자신은 왕이 될 뜻이 없음을 명확하게 밝혔다.

그런데, 기드온이 실상은 왕처럼 살았다.

왕이 되기를 거부했지만, 실제 삶은 왕과 같았다는 것이다.

지금과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방금 읽었던 사사기 830, 31절의 표현은 다윗이나 솔로몬 같은 왕에게나 사용되었던 말들이다.

왕으로서 정치를 하다 보니 정략결혼을 통해서 이방 민족과 평화를 유지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부인도 많고 자녀도 많았다.

그런데 기드온이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드온이 실질적인 왕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백성을 다스렸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니깐 세겜 사람들에게는 왕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이지, 실질적인 왕이였던 기드온의 아들들, 거기다가 70명이나 되는 많은 아들들이 부담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중에 자신의 아비와 같이 왕처럼 살고자 하는 이가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니 아비멜렉의 거짓 선동이 세겜 사람들에게는 사실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두 번째는 세겜 사람들의 마음이 벌써 기드온은 물론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 4.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자기를 따르게 하고

 

기드온 시대에 이미 기드온의 실수로 에봇을 향한 음란이 있었다.

그리고 기드온이 죽게 되자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은 바알브릿을 자신들의 신으로 삼아버렸다.

이 우상 숭배가 아비멜렉이 고향에 와서 자신을 밀어달라고 주장하는 이 시점에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미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멀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 기드온을 마음에서 지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아비멜렉은 이렇게 자신의 거짓 선동에 넘어간 세겜 사람들을 세력으로 삼아 스스로 왕이 되는 작업을 진행해 나간다.

앞서 읽었던 본문 4절의 말씀대로 바알브릿 신전의 예물을 자금으로 사용하여 동네 깡패들을 불러모은 것이다.

우상에게 바쳐졌던 재물로 용역 깡패들을 동원하여 자신의 형제들을 무참하게 살해하게 된다.

본문 5.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다만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

 

도망간 막내 동생 요담을 제외하고는 모든 형제를 한곳에 모아 놓고 죽이는 것이다.

비록 이복형제이긴 하지만 그들은 형제들이다.

아비멜렉이 서자 혹은 혼혈인으로 차별을 받았을 것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이런 무자비함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부분이다.

한명 한명 쫓아가서 따로따로 죽이는 것도 아니었다.

산 채로 한곳으로 잡아 와 한꺼번에 처형을 한 것이다.

극에 달한 아비멜렉의 잔인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이런 아비멜렉의 죄악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어쨌든 모든 정적을 제거한 아비멜렉은 이제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본문 6.

 

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서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본문에서는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도록 작업하고 선동한 것은 아비멜렉이다.

왕이 되고자 자신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스스로 왕위에 오른 것과 똑같다.

 

오늘 본문은 6절밖에 되지 않고, 짧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드러나는 아비멜렉의 죄악은 너무나도 크다.

그는 품지 말아야 할 야망을 품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스스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야망을 위해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퍼트렸다.

혈연, 지연을 이용해서, 자신의 아버지 기드온의 실정까지 들추어내면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자기편으로 만들어 버렸다.

거기다가 우상의 힘을 빌려 자신의 정적이자 형제들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일을 스스럼없이 행한 것이다.

또한, 깡패들을 동원해서 형제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만다.

그의 손에는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지도 않는데, 하나님께서 세우시지도 않았는데.

사사의 시대에 스스로 왕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사의 시대에 스스로 왕이 되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차별을 받았다, 그래서 누구보다 성공하고 싶었다, 서자 혹은 혼혈이라는 신분을 뛰어넘고 싶었다, 그의 형제들은 잔인하게 죽어도 될 정도로 아비멜렉을 괴롭히고 업신여겼다.

그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아비멜렉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변명이 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버린, 하나님을 대적한 원수일 뿐이다.

오히려 아비멜렉은 모든 분함과 억울함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어야 했다.

자신의 아버지 기드온처럼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스스로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사가 되었을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사랑하는 믿음의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환경이 우리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어릴 적 좋지 못한 경험이 트라우마로 계속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내 삶이 나쁜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내가 자라나고, 살아가는 환경이 너무나 좋지 못해서, 나에게 나쁜 부분이 형성될 수도 있음은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내가 저지르는 잘못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이해는 되지만, 용납되는 일은 아니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결코 변명이 되고 변호 될 수 없다.

 

사랑하는 여러분.

억울함, 눌림, 심령의 가난함, 마음의 병, 육체의 연약함, 슬픔과 아픔, 고통, 괴로움, 외로움과 차별, 핍박과 고난, 나를 넘어트리고 대적하는 그 모든 감정과 환경들, 조건들.

이러한 것들에 결코 지지 않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한 모든 것을 가지고 그대로 주님 앞에 무릎 꿇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나와 여러분과 지금도 함께하신다.

함께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언제나 승리하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였다.

거짓말로 세겜 사람들을 선동하여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우상의 제물을 이용해 깡패들을 동원하여 형제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그렇게 해서 그는 왕이 되었다.

그런데 그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자신이 얻게 된 것은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아니었다.

아비멜렉은 단지 세겜의 왕일 뿐이었다.

형제 70명을 모두 잔인하게 죽이고 차지한 자리는 고작 자신의 고향뿐이었다.

역사는 아비멜렉을 결코 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도대체 그는 무엇을 위해 그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인가?

 

우리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다스리게 하셨다.

하늘의 별과 같은, 바다의 모래의 같은 번성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이런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함께함이 나에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기억하는 믿음의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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