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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내부의 적(사사기 8:4~17)

by TwoTalents 2019. 11. 20.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내부의 적

 

본문 : 사사기 8:4~17

4.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자 삼백 명이 요단 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 하며

5.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는 백성이 피곤하니 청하건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의 뒤를 추격하고 있노라 하니

6.숙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는지라

7.기드온이 이르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8.거기서 브누엘로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그같이 구한즉 브누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은지라

9.기드온이 또 브누엘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하니라

10.이 때에 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있는데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칼든 자 십이만 명이 죽었고 그 남은 만 오천 명 가량은 그들을 따라와서 거기에 있더라

11.적군이 안심하고 있는 중에 기드온이 노바와 욕브하 동쪽 장막에 거주하는 자의 길로 올라가서 그 적진을 치니

12.세바와 살문나가 도망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온 진영을 격파하니라

13.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14.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그를 심문하매 그가 숙곳의 방백들과 장로들 칠십칠 명을 그에게 적어 준지라

15.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너희가 전에 나를 희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들에 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16.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17.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말씀 :

오늘은 기드온과 300 용사가 미디안 연합군가 치렀던 전쟁이 마무리되는 장면을 나누려고 한다.

7장부터 시작된 이 전쟁은 오늘 본문에서 그 끝을 맺는다.

 

7장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는 135천 명의 미디안 연합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게 된다.

미디안 연합군은 300명의 용사에 의해 쫓겨 도주한다.

그런데 기드온은 그것으로 전쟁을 끝내지 않았다.

비록 그들이 도망갔지만, 전쟁의 완벽한 승리를 위해 도주하는 그들을 쫓아가 끝까지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본문 4.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자 삼백 명이 요단 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실제로 기드온과 300 용사가 칼을 휘두르며 적군과 싸움을 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팔 불며 소리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300명으로 135천 명을 상대하였다.

흩어져 도망가는 그들을 쫓아가고, 잔당을 멸하고 하는 것 역시 상당한 에너지가 소비되는 일이다.

그러니 이들은 피로도는 상당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도망가는 적군을 쫓아 동쪽으로, 동쪽으로 계속해서 추격한 것이다.

그렇게 동쪽을 향하다가 이제 요단강에까지 건너게 된다.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숙곳에 이르게 되어 기드온은 그곳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요청한다.

본문 5.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는 백성이 피곤하니 청하건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의 뒤를 추격하고 있노라 하니

 

숙곳 사람들에게 전쟁에서 승리 후 도망병을 추격하는 것으로 피곤해 있는 300 용사에게 먹을 것을 좀 줄 것을 부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자신들이 쫓고 있는 자들이 미디안의 왕인 세바와 살문나라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이 숙곳 사람들이 누구이기에 기드온은 그들에게 전쟁과 상황을 설명하면서 먹을 것을 요구하는 것인가?

숙곳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곳으로 가나안 분배 당시 갓 지파가 기업으로 차지한 성읍이다(13:27).

그런데 그곳에는 이스라엘의 갓 지파 사람들과 그들이 쫓아내지 않았던 가나안 원주민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 등장하는 숙곳 사람들이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기드온이 전쟁에 지쳐 있는 300 용사에게 떡을 주라고 스스럼없이 떡 덩이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그들은 갓 자손들인 것이 분명하다.

이 숙곳에 살고있는, 갓 지파일 가능성이 너무나 큰 이들이 기드온의 요구를 거절해 버린다.

본문 6.

 

숙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는지라

 

갓 지파는 미디안과 인근 지역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많은 괴롭힘을 당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미디안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들의 반응이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기드온은 상황을 설명했다.

1차 전쟁에서 승리했고, 지금 세바와 살문나를 쫓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도 이들은 확신하지 못하고 기드온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다.

미디안의 압제가 얼마나 심했으면, 승리하고 있는 시점에서도 그것을 믿지 못할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사기 6장을 나누면서 이스라엘의 악행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나누었다.

이스라엘의 악행은 하나님보다도 바알을 더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지금 갓 지파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기드온과 300 용사는 승리하였고, 이제 이 전쟁은 완벽한 승리를 위해 마무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이런 상황을 들었음에도 세바와 살문나를 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사기 6장에서 언급된 악행과 똑같은 것이다.

아니 신앙적인 것을 떠나서라도, 동족은 목숨을 걸고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이들은 동족이 아닌, 힘 있다고 생각되는 이방인들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민족의 배신자들이다.

이런 그들을 향해 기드온은 이렇게 선언한다.

본문 7.

 

기드온이 이르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기드온은 지금 전쟁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보다 이방인의 칼을 더 두려워한 갓 지파를 반드시 벌하겠다는 것.

 

이렇게 다짐하고는 기드온 일행은 도주하는 적군을 쫓아 동쪽으로 더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브누엘에 이르게 된다.

브누엘은 브니엘의 또 다른 이름이다.

본문 8.

 

거기서 브누엘로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그같이 구한즉 브누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은지라

 

브누엘에 도착해서 이곳 사람들에게도 숙곳에서처럼 식량을 구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도 숙곳 사람들과 똑같이 말하며, 똑같이 거절했던 것이다.

이 브누엘도 갓 지파가 분배받은 성읍이다.

기드온의 분노는 극에 달았을 것이다.

본문 9.

 

기드온이 또 브누엘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하니라

 

갓 지파의 반복되는 거절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전쟁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전쟁에서 이기고 평안히 다시 돌아올 것을 장담하고 있다.

같은 민족의 거절로 인해 흔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드온은 몇 번이고 확인했던 확신, 하나님께서 주신 확신을 더 신뢰한 것이다.

그래서 승리 후에, 돌아올 때, 브누엘 역시 철저하게 징계할 것을 선언한다.

 

본문 10절에서 12절까지는 비록 민족에게는 외면당했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여 패잔병을 쫓았던 기드온과 300 용사의 확실한 승리가 서술되고 있다.

그 승리 후에 기드온은 자신이 확신했던 것처럼 평안히 숙곳과 브누엘로 돌아오게 된다.

본문 13, 14.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그를 심문하매 그가 숙곳의 방백들과 장로들 칠십칠 명을 그에게 적어 준지라

 

하나님과 함께한 전쟁에서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숙곳과 브누엘의 갓지파 족속들을 벌하기 위해 자신들을 외면한 자들의 명단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본문 방백사르라는 히브리어가 사용되고 있고, 그 뜻은 장관, 두목, 지도자 등이다.

그리고 장로는 히브리어 자켄으로 고문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니깐 숙곳과 브누엘의 지도자급인 사람들의 명단을 확보한 것이다.

징벌 대상의 명단을 정리한 기드온은 그곳에 들어가 그들을 향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한다.

본문 15.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너희가 전에 나를 희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들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세바와 살문나를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같은 민족인 기드온과 300 용사를 조롱했던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이다.

특히나 기드온과 300 용사는 민족을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태였다.

같은 민족으로 당연히 도와주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힘이 없어 함께 싸울 수 없다면, 기드온이 요구한 떡 덩이라도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자신들의 두려움을 기드온에게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었다.

그런데, 니 주제에 무슨 세바와 살문나를 잡는다고 설치냐고 조롱을 한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한 전쟁에서 기드온과 300 용사를 조롱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조롱한 것과 같은 것이다.

기드온은 그들의 조롱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지적한다.

갓 지파 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아 그들 눈앞에 보인 것이다.

진정으로 강하신 이가 누구인지를 그들에게 확인시키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이 다짐한 대로 숙곳과 브누엘를 향한 징벌을 실행한다.

본문 16, 17.

 

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이 부분을 놓고 기드온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다.

아무리 갓 지파가 도움을 거절했지만, 그렇더라도 같은 민족인데 어떻게 그들을 바로 징벌할 수 있느냐는 의견이 있다.

비슷한 의견은 기드온이 숙곳과 브누엘을 징벌한 것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기드온 자신의 뜻이 더 많이 반영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저는 다르게 해석한다.

먼저 유사한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겠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해 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시시때때로 불만을 토로했다.

그냥 본문을 읽는 제가 짜증 날 정도로 답답한 모습이었다.

출애굽기 3225~29.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모세가 목숨을 걸고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으로부터 그 중요한 십계명을 받고 있는 과정이었다.

모세를 위해, 자신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며 함께해야 할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가 늦는다고 불만을 터트린다.

그러면서 우상을 만들고 거기에 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내 산을 내려온 모세가 그것을 지적하며 잘못되었다고 회개의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이런 행위에도 전혀 깨달음이 없고, 회개가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용서란 있을 수 없다.

? 앞으로 함께하며 하나님 안에서의 질서를 세워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은 이들은 형제들의 손에 의해 철저하게 도륙되었다.

 

기드온은 숙곳과 브누엘의 모든 갓 지파 사람들을 다 도륙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기로 결정 내렸던 지도자들을 징벌하였다.

그들의 잘못된 판단과 인도가 나머지 갓 지파 사람들 모두를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드온은 하나님 앞에서의 죄악과 하나님을 향한 불신을 철저하게 청산하려는 것이다.

전쟁에서 이겨나가고 있는 과정에서도 하나님과 동족을 외면한 이들이다.

이들은 이방 세력이 강하여지면 언제라도 민족을 배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내부의 적이다.

어쩌면 우리가 직접적으로 싸워야 할 적보다, 내부에서 그것을 방해하는 내부의 적이 더 위험한 존재일 수 있다.

다 이긴 전쟁도 내부의 적으로 인해 전세가 뒤집히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이승만 때, 청산하지 않았던 친일파 때문에 아직도 전쟁을 치르고 있다.

너그럽게 생각해서, 그때는 일제가 총칼로 위협할 때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해방 후에라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민족을 팔아서 취득했던 부당한 재산들 다 내놓아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는가?

친일파의 뻔뻔함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이다.

뉘우치지 않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내부의 적이 되어 지금도 우리를 괴롭히고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이것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시의 거의 모든 목사들이 친일을 했다.

일제의 침략 전쟁을 위해 축복 기도를 했고, 천황 앞에서 고개 숙여 신사참배를 했다.

목사들도 사람이다.

가족 붙잡고, 자식 붙잡고 죽이겠다는데 무작정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저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그런데 해방 후에 그 목사들이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아무런 뉘우침 없이, 일본강점기 때 누렸던 기득권을 그대로 누리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 친일파가 주도했던 독재정권에 빌붙어 버린 것이다.

군사정권은 정당한 것이라고 설교시간에 떠들었고, 그들을 위해 새벽기도 시간에 울부짖었다.

그런 사람들이 한국 교회 각 교단의 지도자들이 되어서 신학교와 총회를 장악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권력을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대를 이어서 한국 기독교를 망치고 있다.

혹시라도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들춰내거나 문제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면 바로 공산당이라고, 좌파라고 단죄해 버리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감추기 위해서 말씀까지도 왜곡해 버리는 사람들이다.

그런 인간들이 제대로 된 설교, 제대로 된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자기 잘못 감추고, 그것을 위해 근거도 없이 타인을 악마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의 입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 되어진단 말인가?

이런 가짜 목회자들이 기독교 내부의 적이다.

그들 때문에, 지금도 개독교, 개먹사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있고, 전도의 길도 막혀 버린 것이다.

 

기드온이 그냥 숙곳과 브누엘의 사람들을 벌하려고 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징계를 가해도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아 와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강하심을 확인시켜주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직접적인 기록이 없어서 단정할 수는 없다.

개인적인 해석으로 이것은 잘못된 지도자들을 단죄하는 것이 얼마나 타당한지를 나머지 갓 지파 백성들에게 알게 하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도자들의 개인적 욕심으로 민족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밝히며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에는 제대로 된 지도자를 세워서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내부를 잘 살펴야 한다.

우리 교회의 내부는 물론, 나 자신의 내부도 잘 살펴야 한다.

갓 지파는 분명 민족을 걱정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는 범죄였다.

마찬가지로 나는 사랑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하나님이 배제된 마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밀한 부분을 자세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큰 그림을 놓쳐서도 안 된다.

교회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소중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크신 계획은 더 소중하다.

이것은 나라 적으로도, 한국 교회 전체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믿음의 사람이교회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개인의 안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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