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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올바른 관계 (사사기 7:19~25)

by TwoTalents 2019. 11. 12.

이미지 출처 - Daum 블로그 '주님 오시는 발자국 소리'

제목 : 올바른 관계

 

본문 : 사사기 7:19~25

19.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20.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21.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22.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 계에 이르렀으며

23.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24.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하 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벧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고

25.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말씀 :

오늘 본문은 드디어 미디안을 상대로 승리하는 기드온과 300 용사의 이야기가 다뤄지고 있다.

이 미디안과의 전쟁은 사사기 61절에서부터 준비되어져 왔다.

우리가 나누고 있는 설교로 치더라도 총 6편의 설교가 기드온의 소명과 전쟁 준비에 대한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의 결말이 오늘 본문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긴 준비에 비해서 막상 승리하는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너무나 짧고 간략하게 전개되고 있다.

너무 싱겁게 끝나버리고 만다.

만약 이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이나 강하심, 혹은 능력을 나타내고자 했다면, 승리에 관한 기사가 더 길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짧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이나, 승리 자체보다 준비과정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지지난 주 수요일 말씀의 제목이 승리 후에였다.

그때 이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 자체가 아니라고 이미 이야기하였다.

승리 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회복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스라엘이 고난을 받았던 이유도,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이유도, 모두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문제에서 비롯된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새롭게 형성되는 모습이 길게 설명되어 진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올바르게 형성만 된다면, 주님의 함께하심으로 전쟁은 당연히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회복되었을 때, 그것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본문 19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본문에서의 이경은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

한밤중이거나 새벽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시간이면 적군들이 보초를 제외하고는 잠이 들었을 시간이다.

거기다가 깨어있는 보초들이, 성경의 표현대로라면 파수꾼들이 교대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깐 이 시간은 하루 중에 미디안 진영의 방비가 가장 허술한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때, 기드온과 백 명의 용사가 항아리를 부수는 것이다.

미디안을 향한 전쟁이 시작됨을 알리는 것이다.

적의 가장 약한 부분을 파악하고, 미디안의 허를 찌른 것이다.

이것은 기드온과 그의 참모들이 머리를 맞대어서 승리를 위한 전략, 전술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 전쟁은 이미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하셨지 않은가?

그 승리를 적의 입을 통해 기드온도 확인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런 전략과 전술이 왜 필요한가?

그냥 칼 들고 미디안을 향해 나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런 1차원적 생각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긋나게 하고 망치는 사고방식인 것이다.

언제가 말씀 중에 나눈 적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를 제외하고는 사람과 관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을 행하신 적이 없다.

언제나 사람 때문에 일하셨고, 사람과 함께 일하셨다.

그 과정에는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이 있고, 사람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승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승리에 대한 확신을 주셨다.

그렇다면 이제는 사람이 그것을 믿고 직접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래야 승리하는 것이다.

주님이 허락하신 믿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직한 방법을 총동원해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승리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형성된다면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최선을 다해 열심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승리를 믿으니깐.

하나님께서 함께 싸우실 것을 믿으니깐.

저 엄청난 미디안의 군대보다 하나님이 더 강하시니깐.

두려움 없이 담대함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건강한 관계가 실제 삶에서 드러나는 사람의 모습이다.

 

또한, 본문 20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처음에 기드온과 백 명의 용사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는 것을 시작으로 나머지 이백 명도 함께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는 것이다.

이들이 왜 이러고 있는가?

기드온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으니깐 이러고 있는 것이다.

아니, 적군을 한 명이라도 더 물리치려면 빨리 내려가서 한 번이라도 더 칼을 휘둘러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적진을 쳐다보며 가만히 서서 나팔 불고 항아리나 깨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적군이 잠자고 있는 시간, 파수꾼이 교대하는 시간.

기껏 미디안 진영이 가장 허술한 시간을 파악해서 전쟁을 시작해 놓구선, 정작 적을 향해 돌진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가만히 서서 소리나 내고 있는 것이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바보 같은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승리의 영광이 드러날 때가 자주 있다.

출애굽기 1415,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지금 당장 애굽의 군사가 뒤에서 들이닥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홍해를 향해 지팡이를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바다가 갈라진단다.

실제 모세는 밤이 새도록 바다를 향해 지팡이를 들었다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다.

 

가나안 정복을 위한 첫 전쟁인 여리고 전쟁 때도 하나님의 명령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여호수아 62~5.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적군을 앞에 두고 7일 동안 성을 빙빙 돌다가 마지막 날에 소리를 지르라는 것이다.

그러면 전쟁에서 승리한단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이 웃긴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준행한다.

 

이 두 사건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홍해는 갈라졌고, 이스라엘은 바다를 육지와 같이 건너게 되었다.

여리고 성은 무너지고, 이스라엘은 승리하게 되었다.

이 두 사건의 핵심은 무엇인가?

인간의 이성과 사고로는 가늠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인간의 순종을 나타내고 있다.

순종이 홍해를 가르고, 순종이 여리고를 무너트린 것이다.

 

잠자고 있던 적군을 향해 나팔을 불면서 항아리를 깨트리라는 것은 기드온을 통한 하나님의 명령인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기드온과 300 용사는 최선을 다해 순종했던 것이다.

이 순종의 결과가 어떠했는가?

본문 21, 22.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미디안 군사들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정확하게 이유를 할 수는 없다.

어쨌든 하나님의 희한한 말씀에 순종했더니 미디안 진영의 군사들이 갑자기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난리를 부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팔을 부니깐 이제는 같은 편끼리,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군대는 사방으로 흩어져 여기저기로 도망가 버리고 만다.

마치 나팔소리와 함성으로 인해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나팔 소리와 항아리 깨지는 소리에 미디안의 135천 명의 군대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니깐,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저함 없이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드신 분이시다.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고, 태양을 멈추신 분이시다.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불가능할 것 같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 순종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쟁에서 승리하게 했던 것이다.

 

본문 23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도주하는 미디안 잔여 군들을 근처의 이스라엘 지파에게 통보해서 추격하게 한다.

24절과 25절 말씀.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고 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예상되는 도주로 인근에 있던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전달하여서 도망치는 미디안 군사를 공격하게 했던 것이다.

그것으로 에브라임 지파가 적군에 남아 있는 지도자급 인물을 물리치고 그들의 수급을 기드온에게 가져오게 된다.

마지막까지 안일해지지 않고, 완전한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도망치는 미디안을 보면서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전쟁이 나의 전쟁이고, 나의 승리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전에 이스라엘이 이런 생각으로 이방인을 모두 쫓아내지는 않았다.

그것 때문에 지금도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형성되어 있다면.

이 전쟁은 당연히 하나님의 전쟁인 것이다.

지금의 승리는 하나님의 승리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으로 마지막까지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말씀 마무리.

미디안 족속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괴로움을 겪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관계가 어긋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통은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찾게 하였다.

반복되는 배교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에 한 번 더 응답하셨다.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고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구원케 하셨다.

기드온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신의 소명을 확인하였다.

그 과정을 통해 기드온은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함께하는 이스라엘 군사들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른 모습으로 회복해 나갔다.

 

이제 긴 준비 끝에 이제 실제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여호와의 일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으로 오롯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결과, 미디안과의 전쟁, 300명 대 135,000명의 전쟁은 완전한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지금 우리는, 나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형성했는지,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았으면 한다.

나는 하나님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내가 해야 할 일, 맡겨진 일을 기쁨으로 열심히 감당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내 귀에 듣기 좋고, 행하기 편한 것만 듣는 척하지는 않는가?

 

나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가?

혹시 얼른 마무리하고 빨리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싶은 생각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셨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으셨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말을 들으신다.

계속해서 약속을 어기는데, 알면서도 오늘 또 속아주신다.

주님은 영원히 우리의 생명을 책임지신다.

영원한 천국을 예비하셨고, 그곳에서 영원한 삶을 살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그러하신 것처럼.

나도 주님께 최선을 다하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주님 맡기신 일에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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