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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이런 인간 꼭 있다.(사사기 8:1~3)

by TwoTalents 2019. 11. 16.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이런 인간 꼭 있다.

 

본문 : 사사기 8:1~3

1.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2.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3.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 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말씀 :

오늘 본문에는 기드온과 300 용사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일차적으로 승리한 뒤에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있다.

오늘 말씀의 내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믿는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중요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먼저 본문보다 앞선 부분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사사기 724, 25.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고 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기습에 성공한 기드온이 에브라임 산지에 사자를 보내게 된다.

전쟁에서 패하고 도주하고 있는 미디안 군사를 공격하라는 것이다.

에브라임 지파는 기드온의 요구대로 도망치는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았다가 죽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를 기드온에게 가져온다.

여기까지 보면 전쟁에서 확실하게 승리해가는 이스라엘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부려야 할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전쟁의 끝자락에 들어서야 참전을 하게 된 에브라임 지파가 기드온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

본문 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아니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 당연히 자신들을 불렀어야지.

왜 부르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도망치는 패잔병이나 처리하게 하는 것은 자신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냐는 식으로 불만을 나타내는 것이다.

본문에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라는 대목 때문에, 마치 기드온과 에브라임 지파가 서로 언성을 높여서 다툰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에브라임 지파가 일방적으로 불만을 쏟아 냈던 것으로 봐야 한다.

본문 다투는지라의 히브리어는 리브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다툰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불평하다’, ‘대적하다’, ‘책망하다라는 의미도 함께 가진다.

본문 2절을 통해 우리는 이 다툼이 에브라임의 일방적인 불평이었음을 알게 된다.

본문 2.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자신들을 부르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에브라임 지파를 향한 기드온의 대답이다.

기드온은 불평하는 에브라임을 향해 그들의 전과를 치켜세우며 그들을 달래고 있다.

비록 전쟁의 끝마무리에 참전했지만, 에브라임이 행한 것이 기드온 자신이 행한 것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포도의 끝물과 맏물을 예로 들고 있다.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기드온 집 안 사람들인 아비에셀이 처음부터 끝까지 세운 공로보다 전쟁의 막바지에 참여한 에브라임 지파의 공로가 훨씬 더 크다고 풍자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에브라임의 불평과 책망에 기드온은 맞서 대응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패한 미디안의 패잔병들을 쫓는 역할을 했지만, 그 일이야말로 이 전쟁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일임을 강조하면서 에브라임을 달랜 것이다.

 

이렇게 에브라임은 승리한 전쟁에서 자신들을 늦게 불렀다고 기드온을 향해 일방적으로 불평을 늘어놓았고, 기드온은 그들을 달래는 상황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이 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불만을 나타내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기드온은 실제로 에브라임 지파를 무시하였는가?

그래서 에브라임을 전쟁에 부르지 않은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해 순서를 거꾸로 해서 생각을 해 보자.

먼저 기드온은 에브라임을 전쟁에 부르지 않았는가?

이것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사사기 634, 35절에는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을 위해 사자들을 각 지파에게 보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기드온이 또 사자들을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따르고 또 사자들을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 그를 영접하더라

 

이때 나타나는 지파의 이름은 므낫세, 아셀, 스블론과 납달리 지파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기드온이 에브라임 지파를 부르지 않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이 부분을 달리 해석하기도 한다.

모든 지파에게 사자를 보냈는데, 사자를 영접하고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나아온 지파가 이 네 지파라는 것이다.

이 해석대로라면 나머지 지파들은 기드온의 요구를 듣고도 그것을 무시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에브라임도 전쟁 소식을 들었지만 135천 명이라는 적의 숫자에 기가 죽어 쉽게 출전하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게 된다.

아니, 그렇지 않고 진짜로 듣지 못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기드온이 에브라임에게 전쟁의 참여를 요구했을 때, 에브라임은 주저하지 않고 전쟁에 참여했을까?

기드온이 속한 아비에셀은 므낫세 지파이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요셉 족속으로 형제 지파이다.

만약에 에브라임이 전쟁에 참여할 의지가 있었다면 기드온이 부르지 않아도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봤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깐 기드온이 실제로 에브라임을 불렀는지 안 불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불렀다 하더라도 에브라임이 전쟁에 참여했을지 안 했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기드온은 에브라임을 무시했는가?

이건 단언컨대 아닐 것이다.

기드온의 성정이 누군가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사사기 6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기드온은 긍정적으로 보면 겸손한 사람이었고, 부정적으로 보면 오히려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가장 강력한 지파 중의 하나였던 에브라임을 무시했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불만을 나타내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미디안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형제들을 위해 진정으로 싸우고 싶어서였을까?

민족을 향한 사랑으로 가장 먼저 전쟁에 나가고 싶어서였을까?

우리는 오늘 본문 3절을 통해 에브라임의 영적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본문 3.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에 큰 역할을 담당한 기드온을 향해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은 에브라임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신을 공격하는 에브라임을 향해 기드온은 칭찬으로 응답을 한다.

자신들을 높여 주니깐 그들의 불평, 불만이 쏙 들어가 버린다.

이들은 애초에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함께 구하고자 하는 충심 이런 거 없는 인간들이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이 승리한 전쟁에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늦게라도 승리의 영광을 자신들이 취하고 싶은 것이다.

기드온에게 모든 찬사를 빼앗길 수 없기 때문에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에브라임의 이런 성정은 역사적으로도 잘 드러난다.

에브라임은 원래 요셉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장자인 므낫세가 아니라, 둘째인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내리게 된다.

창세기 4814~19.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이렇게 에브라임은 어릴 때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이런 것은 자라나는 환경에 때라 아이에게 좋은 영향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영향이 될 수도 있다.

에브라임의 경우는 후자에 가깝다.

에브라임 지파는 계속해서 특별한 대우를 받기 원했다.

여호수아로부터 땅을 분배받을 때도, 떼를 쓰며 더 많은 지분을 요구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사 입다 시대에도 기드온에게 드러냈던 것과 비슷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자기들은 특별하다는 것, 다른 지파와 다르다는 것이다.

 

결국, 에브라임은 유다 지파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이스라엘이 분열되는 것에 주도적인 역할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반복적으로 범죄하였던 북이스라엘의 중심 지파가 바로 에브라임이다.

 

에브라임은 승리의 순간,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이스라엘이 회복된 순간.

자신들을 향한 영광과 찬사가 없을 것을 불안해하며.

이미 다 이긴 전쟁의 공을 자기들에게 돌리려고 엉뚱하게 기드온을 공격하는 몰지각하고 파렴치한 인간들인 것이다.

 

이런 인간들은 어디에나 꼭 있다.

과거나 현재나,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도둑놈 심보의 사람들은 언제나 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는 발을 뺀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면 자신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일이 훌륭하게 마무리되었을 때.

어느샌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승리의 축배를 자기가 터트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 일에 함께했던 것처럼, 자기가 했으면 더 멋있게 잘할 수 있었다는 듯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결코 에브라임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것.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함께하심이다.

그 함께하심으로 인한 전쟁의 승리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기드온과 300 용사의 순종이다.

영광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며, 이스라엘은 그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에브라임은 자신의 영광을 찾으려고 하였다.

가장 노력을 많이 한 기드온을 깎아내려서라도 자신들의 지분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무지한 범죄이다.

 

두 번째는 기드온의 대응은 결코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 기드온의 대응은 지혜로운 모습이다.

그리고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영광을 포기하는 겸손한 모습이 맞다.

하지만, 이것이 에브라임을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을 더 기고만장하게 할 뿐이었다.

사사기 12장에 가서는 앞서 잠깐 소개했던 사사 입다의 시대에 에브라임은 기드온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은 불만을 터트린다.

그리고 결국, 에브라임 때문에 이스라엘 지파 간에 내전이 발생하고 만다.

 

어떤 신학자는 기드온은 지혜롭게 에브라임을 달랬기 때문에 내전이 없었고, 입다는 그러지 않고 강경한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내전이 일어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기드온이 오냐 오냐 했기 때문에 이들이 스스로 잘못한 것을 모르고 교만해졌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 더 타당하든지 간에.

확실한 것은 에브라임은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고 했었다는 것이다.

칭찬받아 마땅한 기드온을 대적하여 자기들이 높임을 받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나라를 분열시켰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인데.

진짜 중요한 것,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접어두고.

엉뚱한 것, 나의 영광, 나의 승리, 나의 성공만을 위해 나아간다면.

우리는 에브라임과 같이 나의 영광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를 분열시키는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욕심은 나를,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기억하고 바라보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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