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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승리 후에 (사사기 7:1~8)

by TwoTalents 2019. 10. 23.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승리 후에

 

본문 : 사사기 7:1~8

1.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2.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 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 이었더라

4.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 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5.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6.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 니라 하시니

8.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에 있었더라

 

말씀 :

지난주에는 미디안과의 전쟁을 앞두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기드온에 대해 나누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뜻을 계속해서 확인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의심해서, 하나님의 일을 피하고자 표징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을 더욱 깊이 알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확실하게 행하기 위해서 응답하시기를 간구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확실한 뜻을 확인한 기드온은 이제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주저 없이 행동하기 시작한다.

모집된 군사들을 거느리고 미디안 군대가 진을 친 곳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본문 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전쟁의 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미디안 진영의 남쪽에 진을 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여호와의 말씀이 기드온에게 다시 임하시게 된다.

본문 2절 상반절.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사사기 810절에 의하면 지금 미디안 군대의 수는 135천 명이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 군대는 32천 명이다.

거의 4배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스라엘 군대가 많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군대를 축소할 것을 명령하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기드온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한다는 것이다.

군사를 줄여 버린다.

본문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하나님께서 두려움에 떠는 자는 돌려보내라고 하셨고, 기드온은 실제로 두려워하는 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한 명이 아쉬운 이 시점에서 총 32천 명 중에 22천 명을 돌려보낸다.

기드온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준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지난주에 나누었던 말씀에 그 해답이 있다.

기드온은 몇 번에 걸쳐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확인됐을 때, 이제는 어떤 명령이라 할지라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기드온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기드온에게 두려워 떠는 자들을 돌려보내라고 하셨다.

두려움은 바로 불신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사기 6장에서 이스라엘의 악행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스라엘의 악행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이방 신을 향한 두려움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보다 이방 신을 더 두려워했던 것이다.

하나님보다 이방 신이 더 강한 것으로 인식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심각한 우상 숭배로 나타났다.

 

지금 본문에서 두려워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통해 기적과 같은 표징을 반복적으로 나타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두려워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하셨던 말씀을 믿지 못한 것이다.

아니 믿었더라도, 135천 명의 미디안 군사를 32천 명의 이스라엘의 군사로는 하나님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자기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이런 불신앙은 하나님의 전쟁에 있어서 방해만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앙으로 두려워하는 이들을 가장 먼저 배제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본문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2/3가 넘게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이제 만 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것도 많다고 말씀하신다.

더 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테스트를 할 테니 군사를 이끌고 물가로 내려가라고 명령하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물을 마시는 유형에 따라 전쟁에 참여할 사람들을 구분하시겠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기드온도 하나님께 불평할 만도 하다.

하지만 기드온은 이번에도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른다.

 

군사들이 물을 마시는 유형은 이렇게 구분되었다.

본문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서서 두 손에 물을 담아 핥아먹는 사람과 무릎을 꿇고 마시는 사람들로 나누어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

본문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만 명 중에서 300명만 손에 물을 담아 핥아먹었고, 나머지 97백 명은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언 듯 인간적으로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 300명을 돌려보내고 97백 명으로 전쟁을 치를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상식, 이성, 이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씀을 하신다.

본문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물을 핥아먹었던 300명을 남겨 두고 나머지 97백 명을 돌려보내라는 것이다.

지금 적군은 135천 명이다.

애초에 모였던 32천 명의 군사로도 승리를 보장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군사를 줄이고 줄이더니, 급기야 300명의 군사만을 남겨 놓으신 것이다.

그러고는 이들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될 것이라고,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쯤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지고 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동안 말도 잘 안 듣고 속 썩였던 이스라엘을 골탕 먹이려고 작정하신 것 같아 보인다.

아니면, 전쟁에 이길 자신이 없으니깐, 군사를 터무니없이 줄여서는 나중에 패배의 원인을 거기에 두려는 술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이 명령을 기드온 또 그대로 준행한다.

본문 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에 있었더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더 이상의 질문도 없이, 97백 명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300명으로만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향한 반복적인 확인이 기드온으로 하여금 이렇게 놀라운 순종을 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그리고 기드온을 통해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이 확인되는 것을 목격한 300명의 용사들에게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던 것이다.

다음 주부터 나누게 되겠지만.

결국,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는 두려움 없는 순종으로 자신들보다 400배 이상 더 많은 적군을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일까?

굳이 32천 명을 300명으로까지 줄여가면서 전쟁을 치르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제일 처음에 군사를 감소시켰을 때는 앞서 살핀 대로 두려움이라는 불신앙 때문이었다.

혹시 미디안 군사보다 더 많은 군사가 모였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불신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전쟁에서 지게 될 것이다.

두려움에 떠는 이들이 배제된 것을 당연한 조치이다.

 

그렇다면 남은 이들로 전쟁을 치르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군사를 더 줄여 버리신다.

남은 만 명의 물 마시는 모습으로 300명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돌려보내는 것이다.

어떤 설교자는 군사들의 물을 마시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정예군을 세우셨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을 혀로 핥아먹는 자와 무릎 꿇고 먹는 자가 전쟁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는 것이다.

서서 두 손에 물을 모아 혀로 핥아먹는 자는 좌우를 살피는 자이며, 경계하고 정신을 차린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에서 적군이 갑자기 공격해도 방어가 가능한 지혜로운 자라는 것이다.

반면 무릎을 꿇고 물을 먹은 사람은 좌우를 살피지 않고, 물 먹는데 정신이 팔려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군이 달려들어도 대처하지 못하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혜로운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해서 남은 300명과 같은 믿음의 용사가 되어야 한다고 설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너무나도 작위적인 해석이다.

성경적으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애초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신 것과도 상충하는 해석이다.

하나님은 그냥 더 적은 숫자를 선택하신 것이다.

300명이든 400명이든 두 무리 중에 적은 무리를 선택하신 것이다.

만약 물을 핥아먹는 사람들이 아니라, 무릎 꿇고 물을 먹은 사람들이 300명이었으면 그들을 선택하셨을 것이다.

앞에서 사사기 72절 상반절까지만 읽었는데, 2절 전체를 읽어 보겠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지금 하나님께서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전쟁의 승패를 걱정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전쟁은 당연히 승리한다.

그런데 승리 후에, 그 후를 걱정하고 계시는 것이다.

혹시라도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도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면.

32천 명으로 13만 명을 물리쳤다고, 자신들이 대단하다고 교만해져 버린다면.

이렇게 되면 어쩌냐는 것이다.

이건 미디안에게 고통당하고 있을 때보다, 상황이 더 나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지금 이 전쟁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은 무작정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죄악 때문에 하나님을 떠났던 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형상에 지나지 않는 이방 신 보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죽은 우상을 물리치고 오직 생명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예배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교만할 수 있는, 자만할 수 있는, 착각할 수 있는, 오해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32천 명으로 13만 명을 이긴다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다.

건강한 영적 상태라면 당연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영적 환자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기적 속에서도 스스로를 자랑하고 자신을 높이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예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 버리신 것이다.

인간들 스스로 했다고 말할 끈덕지를 없애버린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셨다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 되게 하셨던 것이다.

승리 후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높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크고 작은 믿음의 경험을 하게 된다.

어려움 속에서 기도함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한다.

고난 속에서 간구함으로 힘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 놀라운 경험 후에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혹시라도 내가 하나님 앞에 신실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고 생각지는 않는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지켰기 때문에 나와 함께하신다고 교만하지는 않는가?

내가 이랬기 때문에, 내가 잘했기 때문에, 내가, 내가.

우리의 깨달음은 내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깨달음은 오직 하나님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 가장 위험할 때는 고난 받을 때, 고통당할 때, 어려움에 부닥칠 때가 아니다.

승리할 때, 기쁠 때, 성공할 때.

이러한 때야 말로, 하나님이 아닌 내가 높아지고, 내가 드러나기 가장 쉬울 때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승리 자체가 아니다.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깨닫는 것이다.

승리 후에 더욱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만 높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그의 영광만이 드러날 때, 그것이 참된 승리이다.

이 진리를 기억하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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