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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그도 사사이다. (사사기 3장 31절)

by TwoTalents 2019. 9. 23.

이미지 출처 - 갓피플 만화

제목 : 그도 사사이다.

 

본문 : 사사기 3장 31절.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말씀 :

오늘은 세 번째 사사로 알려진 삼갈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그런데 삼갈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은 오늘 본문인 사사기 331, 딱 한 절이 유일하다.

그리고 삼갈에 관한 간접 기록이 하나 있는데, 같은 사사기 56절에 이런 기록이 있다.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삼갈에 대해서는 이 두 말씀 외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그래서 이 두 말씀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삼갈이 과연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앞서 말 한대로 기록이 너무나 부족하다 보니깐 정확하게 삼갈에 대해 알 수 없고 의견이 나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본문에는 삼갈을 아낫의 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부분 때문에 삼갈이 이방인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오늘 말씀에는 삼갈이 등장한 시기를 에훗 후에는...’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삼갈의 등장이 다른 사사들의 등장과는 사뭇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첫 번째 사사 옷니엘이 등장하게 되는 부분의 기록은 이렇다.

사사기 3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그리고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에훗이 등장하는 시기의 기록이다.

사사기 3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마치 공식과도 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적에서 악을 행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벌하게 된다.

이스라엘이 돌이켜 회개할 때, 한 구원자를 보내셨는데 그가 바로 사사였다.

 

그런데 삼갈의 등장에는 이런 기록이 없다.

이스라엘이 악을 행했는지, 그래서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셨는지.

그래서 구원자로 삼갈을 사사로 보내셨는지.

이런 기록이 전혀 없다.

 

오히려 삼갈 다음에 등장하는 사사 드보라의 기록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사기 41.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아까 삼갈은 에훗 후에 였는데, 41절에서 에훗이 죽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적에서 악을 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사사가 드보라이다.

 

여러분은 이 부분이 어떻게 생각되시는가?

 

어떤 학자는 삼갈은 에훗이 죽고 난 후 드보라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의 일시적 혼란기, 즉 일부 블레셋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힐 때 잠시 사사로 활동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신학자들은 에훗이 살아 있을 동안에 즉, 에훗이 나이 많아서 사사 직을 제대로 수행하기가 어려울 때.

그때, 삼갈이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인 600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조금 다른 주장인데, 공통적인 것은 삼갈의 사역은 아주 잠깐이었다는 것.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현대에 들어서는 아예 삼갈이 사사가 아닐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많이 생겼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번역본은 개역 개정이다.

지난 번역본인 개역 한글과는 좀 다르게 번역되어 있다.

개역 한글 버전의 사사기 331절은 이렇게 되어있다.

 

에훗의 후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로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새롭게 번역된 개역 개정이다.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사사라는 말을 빼버렸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삼갈은 사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실제 히브리 원문에 삼갈이 사사라는 말이 없다.

 

제 개인적인 생각도 삼갈을 굳지 사사로 분류할 필요가 없지 않나이다.

그런데 오늘 제목은 그도 사사이다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뒤로 가면서 밝히도록 하겠다.

 

아무튼, 이렇게 기록도 별로 없고, 사사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삼갈이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는 삼갈이 소모는 막대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삼갈이 무기로 소모는 막대기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가 정식 군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당시 팔레스타인이나 수리아에서는 밭을 갈 때 길이 약 2.5m 정도 되는 둥글고 두꺼운 막대기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 막대기의 한쪽 끝은 뾰족해서 소를 몰 때 찌를 수 있도록 되어있었으며 다른 쪽 끝에는 조그마한 삽이 달려 있어서 밭을 손질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한다.

이것으로 삼갈은 농부였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극히 평범한 이스라엘의 한 백성이다.

아마 현대인들은, 그리고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은 이 부분에 주목할 것이다.

그러니깐, 삼갈이 사사였는지 아니었는지.

그가 용사이거나 장군이었는지, 아니면 평범한 농부였는지.

삼갈의 신분, 직업, 지위.

이런 것들에 주목할 것이고, 그것으로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아닌가?

아닌 게 아니다.

아닌 척 하지만 다 그렇게 한다.

 

그런데 삼갈에 대해 진짜로 중요한 것은 본문의 뒷부분이다.

 

“...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사사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어느 농부가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다고 한다.

이건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다.

정식 군인도 아닌 사람이, 정식 무기도 아닌 소모는 막대기로 적군을 육백 명이나 물리친 것이다.

이건 기적과 같은 일이다.

어쩌면 그에게 삼손과 같은 놀라운 힘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삼손도 나귀 턱뼈로 블레셋 군인 1000명의 물리쳤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다.

 

삼손과 같은 힘이 있었든지, 아니면 어떤 뛰어난 전술이었든지.

분명히 하나님께서 삼갈과 함께 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삼갈이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군인 600명을 죽인 것이 무엇을 뜻하기에 중요하다는 것인가?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블레셋 600인을 죽인 것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하나님과 함께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 용기, 확신으로.

절망 속에 있었던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해 낸 것이다.

삼갈이 살았던 당시의 상황을 앞서 읽었던 사사기 56절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삼갈이 살았던 그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큰 대로를 놔두고 오솔길로 다녔다는 것이다.

에훗 말년이었든, 에훗 사후였든, 블레셋의 노략질이 점점 심하게 되었다.

블레셋의 압제가 극심하여 상거래도 없었으며, 법질서도 마비되어 있었다.

노상에서 약탈 행위가 빈번히 자행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폭행도 이루어졌었다.

그래서 행인들은 안전을 위해 큰길로 다니지 못하고 작은 길로 다녀야 할 형편에 처해 있었다.

이스라엘은 경제가 엉망이었고, 거리는 무법천지가 되어 백성들에게 평안함이 없었던 그런 시기였던 것이다.

 

아마도 삼갈은 어느 시점에서 블레셋의 도적들과 마주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때, 하나님의 성령이 삼갈을 감동시키신 것이다.

그는 소모는 막대기를 들고 자신과 민족을 위협하는 블레셋 600인을 물리쳤던 것이다.

물론, 이것이 1회에 이루어진 것인지 여러 차례에 걸친 것인지 그것조차도 정확하지는 않다.

어쨌든 삼갈은 블레셋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승리가 이스라엘에게도 블레셋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에훗과 드보라의 중간 시기에 아주 잠시 잠깐이지만,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또한, 블레셋에게는 섣불리 도적질할 수 없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왔음이 분명하다.

 

성경은 확실하고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그도 사사이다이다.

앞서 말한 대로 저는 삼갈이 사사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데에 한 표를 던진다.

그런데 제목에는 삼갈을 향해 사사라고 밝힌다.

이것은 실제 그의 신분 자체를 검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제목 하였다.

그의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삼갈이 어떤 일을 했느냐에 주목하고 이러한 제목을 올린 것이다.

삼갈이 사사였는지 아닌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은 온전히 사사와 같은 일을 하였다.

 

지난주에 우리가 다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에훗의 이야기는 길고 드라마틱하다.

성경은 매우 자세하게 에훗에 대해서 설명한다.

뒤이어 나오는 드보라의 경우에도 정말 극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

그에 비해 삼갈의 기사는 겨우 한 절이 전부이다.

하지만 삼갈 역시 에훗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옷니엘처럼, 에훗처럼, 드보라처럼...

삼갈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최선을 다해 행동하였고, 결국,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해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사와 함께 사사기에 기록되어 지금 우리에게까지 하나님과 함께한 그의 승리가 읽히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삼갈의 기록을 통해 무엇이 진실로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삼갈이 진짜 사사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가 농부인지, 군인인지, 장군인지는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

삼갈이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그 믿음을 어떻게 실행했는지가 진실로 중요한 것이다.

소모는 막대기 하나로, 주님을 신뢰하고 목숨 걸고 나아갔던 삼갈의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이 아름다운 진리는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그럴듯한 직함, 남들이 감탄할 직분, 부러움에 대상이 되는 직책.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때로는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삼갈이 자신의 직분이나 지위를 신경 썼다면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 이다.

몇 주전 주일 아침에 나누었던 사명에 대한 설교의 표현대로라면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저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한분 한분 모두가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놀라운 소명을 주고 계신다.

주님 주시는 그 소명에 제대로 응답했으면 좋겠다.

이 소명이라는 것이 목회자가 되거나 선교사가 되거나 이런 말이 아니다.

무엇이 되는 소명을 받으라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이런 소명을 들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제가 목회자이기 때문에 전 인생을 하나님께 바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전 인생을 걸었더니 목회자의 길로 인도하셨다.

 

어떤 분은 저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목회자니깐 원래 하나님께 인생을 다 건 사람이지 않느냐?

그럼 일반 성도는, 여러분은 반쯤 걸면 되는 건가?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인생의 전부를 걸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든지, 무슨 직책을 맡든지, 어떤 직업을 갖게 되든지.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은 동일하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오늘 삼갈의 놀라운 삶이 우리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삼갈의 소모는 막대기가 우리 삶 속에서 여러 모양으로 드러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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