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팩트 체크 - 사실은...(사사기 3장 15절)

by TwoTalents 2019. 9. 17.

이미지 출처 - unlockingthebible.org

제목 : 팩트체크 - 사실은...

 

본문 : 사사기 3장 17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말씀 :

오늘은 에훗이라는 사사 개인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성경을 통해, 말씀, 설교를 통해 듣고, 찾고,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나눌 것이다.

 

먼저 에훗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포털에서 에훗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검색되는 단어나 문장, 내용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관련 검색어라고 뜨는 것이 바로 에훗에 대해 가장 많이 알려진 부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실제 검색을 해 보면 사사, 왼손잡이 등이 가장 많이 검색된다.

그리고 왼손잡이 에훗을 검색해 보면 수많은 설교가 등장한다.

그 설교를 클릭해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내용이 에훗이 장애인이라는 것.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역 개정 성경에는 에훗이 장애인이란 말이 없다.

개역 개정뿐 아니라 한글로 번역된 모든 버전의 성경에는 에훗을 장애인이었다고 밝히는 곳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수많은 설교자들이 왜 에훗을 장애인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걸까?

그것은 히브리 성경을 근거로 한 주장이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에훗을 소개하는 부분이 이렇게 되어있다.

이쉬 이테르 야드 여미노

이쉬는 남자, ‘이테르는 묶인, 혹은 못 쓰는, ‘여미노는 오른손.

그러니깐 이쉬 이테르 야드 여미노오른손이 묶인 남자’, ‘오른손을 못 쓰는 남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많은 설교자들은 오른손이 불구인 남자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한글 성경의 어느 버전에도 에훗을 장애인이라고 번역한 성경은 없다.

한글 성경뿐 아니라 영어 성경에도 에훗을 오른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곳은 없다.

이것은 기타,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된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제가 알기로는 스페인 성경 중에 한 버전만 에훗을 오른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히브리 원문에는 분명히 에훗이 장애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게 소개가 되어있다.

그런데도 한글 성경은 물론, 거의 모든 성경에서 이 부분을 빼고 그를 그냥 왼손잡이라고 소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하겠다.

 

그전에, 거의 모든 성경에서 빼버린 번역을 굳이 히브리 원문에서까지 찾아내서 에훗을 장애인으로 소개하는 설교자들의 의도는 또 무엇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본다.

 

첫 번째는 성경의 원본 그대로, 원래 뜻 그대로를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설교자의 마음일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시대마다, 나라마다 조금씩 왜곡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교단이 나뉘고, 이단도 생기고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공되지 않은 원래 성경의 모습으로, 원래의 의미를 전하고자 하는 노력을 설교자들이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참 좋은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에훗에 대해 원래 사사기의 내용과 같게 전하고 싶어서 그를 장애인으로 소개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것 역시 뒤에 다루겠다.

 

에훗을 장애인으로 소개하는 두 번째 이유는 더 깊은 감동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설교를 듣는 이로 하여금 더 큰 은혜, 더 큰 감동을 끼치겠다는 것.

실제 에훗을 장애인이라고 소개하는 대부분의 설교를 들어보면.

하나님께서 장애인과 같이 연약한 자를 들어 사용하신다고 전파한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약하고, 사명을 감당하기 힘들게 보이지만,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장애인인 에훗을 들어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사기 318~20절의 내용을 소개한다.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아뢰려 하나이다 하니 왕이 명령하여 조용히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이르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에훗이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왕과 단둘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

그가 오른손이 없는 사람이니깐 왕도, 왕의 경호원들도 아무런 의심 없이 왕과 에훗의 단독 면담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기준에서는 에훗에게 약점이었는데, 하나님은 그 약점을 멋있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약할 때 강함 되시네라는 찬양을 이어서 부르곤 한다.

얼마나 감동적인가?

 

그렇다면 이제 팩트체크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에훗은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인위적인 왼손잡이가 맞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애인이 아닐 가능성이 훨씬 크다.

앞서 한글 성경은 물론 대부분의 번역서에서 오른손을 못 쓰는’, ‘오른손이 묶인이란 부분을 빼고 번역하였다고 밝혔다.

이것은 애초에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왼손잡이라는 번역 하나로 원래 뜻을 전달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원문의 이쉬 이테르 야드 예미노오른손을 못 쓰는 사람이 아니라 오른손을 묶어 놓은 사람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당시 베냐민 지파는 용사들에게 인위적으로 오른손을 사용하지 않게 묶어 놓고 왼손을 사용하게 하는 훈련을 했었다.

왼손을 엄청나게 훈련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양손을 다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당시에 왼손잡이라고 하면 일상적으로 양손잡이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래서, 히브리어 성서 원문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의 번역본인 70인 역(LXX)에서는 이를 '암포테로덱씨오스', '양손잡이'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비해 왼손이 발달한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본문의 왼손잡이가 양손잡이를 의미한다는 것은 사사기 자체에서도 증거한다.

사사기 2015~16.

 

그 때에 그 성읍들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 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칠백 명인데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

 

사사기 20장에서는 이스라엘이 내전을 겪게 된다.

이스라엘 전체와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서 전쟁을 위해 선택한 베냐민 자손을 향해 왼손잡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때 사용한 단어가 에훗을 소개할 때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만약 에훗이 장애인이라면, 이 당시 전쟁에 참전한 베냐민 자손 700명이 모두 장애인이란 말이 된다.

11 지파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는 베냐민 지파가 장애인으로 구성된 700명의 군대를 보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오히려 방금 읽은 본문에서는 이들을 향해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백발백중의 실력을 지닌 것이다.

이들은 오른손이 없는 장애인이 아니라, 양손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용사 중의 용사인 것이다.

이것은 에훗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에훗을 소개할 때 표현과 700명의 용사를 소개하는 것에는 언어적 유희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베냐민의 뜻이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깐 오늘 본문인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을 히브리 원문과 합쳐서 번역을 해 보면.

오른손의 아들이면서 오른손이 묶인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 되는 것.

 

지금 우리나라 상황으로 비슷하게 언어유희를 해 보자면.

이름이 문제인데, 아무런 문제 없이 국정을 잘 수행하는 문재인 대통령

이런 것과 비슷한 표현인 것이다.

 

앞에서 에훗이 장애인으로 확정되어버린 이유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성경의 원본 그대로, 원래 뜻 그대로를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설교자의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라면, 오히려 조심스러워서 에훗을 장애인이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장애인이라고 할 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근거로 들고 있는 히브리 원문의 한 단어는 이스라엘식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그 시대 기록 문화의 한 부분일 뿐이다.

 

저는 굳이 에훗을 장애인으로 소개하는 것에는 두 번째로 제시한 이유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더 깊은 감동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설교를 듣는 이로 하여금 더 큰 은혜, 더 큰 감동을 끼치겠다는 것.

일단 히브리 원문에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는 단어가 있으니깐 그것이 맞다고 주장하면 되는 것이다.

성도들이 듣고 감동받고 은혜받으면 그것이 제일 좋은 설교가 아니냐고 주장한다.

실제로 에훗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성경에서 원래 전하는 바와는 상관없이 좋은 말, 감동적인 말, 은혜로운 말로 꾸며져서 전달되는 설교가 무수히 많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것이 맞는가?

어디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인가?

거짓이든 진실이든 성도들이 설교 듣고, 감동 받아서 교회 열심히 나오고 헌금 많이 내면 그것으로 다 된 것인가?

 

단언컨대 결단코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절대로 말씀에서 인위적인 거짓, 목적이 틀린 감동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성경을 읽어봐도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거짓을 말씀하신 적이 없다.

은혜를 주시려고 사실을 꾸미거나, 부풀려서 말씀하신 적이 없다.

 

무엇보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 얻어야 할 것은 은혜가 아니다.

감동이 아니다.

은혜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우리를 사랑하시어 구원하신 것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벌써 은혜는 주어졌다.

가슴 찡한 감동을 받으려면, 성경 읽지 말고 그냥 잘 지은 소설 한 편 읽는 것이 더 빠르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생명을 찾아야 하고, 그 생명을 향한 길을 발견해야 한다.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말씀 속에서 길을 찾고, 진리를 발견하고, 생명을 경험하다 보면 부수적으로 은혜도 받고 감동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목적인 진리는 뒤로 가고, 은혜와 감동이 목적이 되어버리니깐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왜곡해서 선포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설교, 제대로 된 설교 청취라면 은혜와 감동보다는 찔림을 더 많이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봐야 한다.

? 우리는 스스로 죄를 없앤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죄가 없는 것처럼 여겨주시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죄에 유혹에 넘어가고, 여전히 범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236, 37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성령이 함께하신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의 제대로 된 반응은 바로 찔림이었다.

진리를 듣게 되니깐 마음이, 양심이, 영혼이 콕콕 찔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은혜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제는 이 은혜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감동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오직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다.

말씀 속에서 진리를 찾고 진리로 자유롭게 되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말씀 마무리.

사사 에훗은 장애인이었고, 오른손의 결함으로 왼손밖에 사용하지 못했지만.

인간적으로는 부족한 그를 하나님께서 들어 사용하셨고.

그의 약점이 장점 되게 하여 왕과 단독으로 만나 그를 암살할 수 있게 하셨던.

약한 자들에게, 부족한 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감동적 삶의 주인공이 아니다.

 

굳지 에훗을 소개하자면.

에훗은 멀쩡한 오른손을 묶은 채 왼손을 훈련했던.

그렇게 양손을 다 사용할 수 있게 된 용사 중의 용사였으며.

준비된 사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할 수 있었던.

죽음을 각오하고 모압의 왕에게 다가갔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에훗을 위해 모압 왕 에글론을 교만하게 하시어.

경호원도 없이 에훗과 독대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하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간 훈련해 왔던 기술로 단번에 에글론을 죽일 수 있었던 역사의 사람,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 소개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전하고 싶은 핵심은 우리가 말씀을 통해 찾고, 받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는 진리를 따르는 사람이다.

우리는 진리를 나누고, 진리를 알고, 진리로 자유롭게 되는 사람이다.

내 삶의 감동이나 일시적인 유익을 위해 진리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찔리고, 삶에서 불편하더라도 그것이 진리라면, 그 진리가 결국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을 믿고 구하는 사람들이다.

진리가 나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임을 알고, 온전히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진리를 나의 감정, 나의 일, 나의 삶에 맞추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나의 삶을 진리에 맞추고, 진리가 주는 깨달음과 감정을 나의 마음에 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한분 한분의 삶이 진리를 따라 나아가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내 마음의 즐거움이 아니라, 내 생명의 영원함을 위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찾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이교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사람이교회'는 온라인교회입니다.

'사람이교회'와 함께하기 원하시는 분은 아래 메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saramichurch@naver.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