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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악순환(사사기 2:11~23)

by TwoTalents 2019. 8. 29.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악순환

 

본문 : 사사기 2:11~23

11.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13.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14.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15.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16.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7.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 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18.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 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 셨음이거늘

19.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 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20.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1.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22.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23.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 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

 

말씀 :

지난 시간까지 우리가 살펴본 사사기는 하나님께서 함께함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크게 두 가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그것이 무엇인가?

첫째는 가나안 민족을 완전하게 쫓아내지 않은 것이다.

둘째는 자신들의 후손에게 하나님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이다.

오늘은 그 결과로 일어나게 된 사사기 시대의 전반적인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사사기 전체 이야기를 개괄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본문 11, 12.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이것이 앞서 말했던 두 가지 잘못의 결과이다.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약속의 땅에 우상을 그대로 남겨 놓은 꼴이 되어버렸다.

남겨 놓은 가나안 민족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우상에 물들어버린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두 번째 잘못, 바로 교육이 없었으니깐 그런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강하신 분이신데.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시고 지금까지 승리케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 사실을 망각하고, 알지도 못하고, 눈에 보기 좋은 우상에 절을 해버리는 것이다.

본문 13절에 우상 숭배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바로 욕심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 욕심의 성향이 우상 숭배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바알은 농사의 신이다.

아스다롯은 다산의 신이다.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풍요로운 삶이 잘못인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난 풍요는 참된 풍요가 아니다.

그것 자체가 죄악이고, 그것 자체가 죽음이다.

 

이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

본문 14, 1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이스라엘은 이제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었다.

그런데 주인이 되었음에도 계속해서 이방인들에게 노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방비가 허술한 것이며, 확실한 주인이 아니라는 것.

또한,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본문의 가든지는 히브리어로 야차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주로 전쟁터에 나갈 때 사용되는 언어이다.

그러니깐 이제는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재앙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지금까지 전쟁에서 계속 승리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진 것.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완전히 포기하시지는 않으신다.

그래서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신다.

바로 사사를 세우셔서 노략자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케 하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이 이스라엘이 거부해 버린다.

본문 16, 17.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 사사에게도 순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신속하게 우상을 섬기고 죄악에 길로 향했던 것이다.

이 정도면, 이제 막 가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사사기 전체의 역사이다.

 

18절부터는 이런 사사기 역사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

본문 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여호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다.

그런데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고, 그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람, 사사를 세우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사가 살아있는 동안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평화를 허락하하셨다.

그렇게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이스라엘이 주님께 회개했기 때문이다.

대적에게 하도 두들겨 맞다 보니깐, 어쩔 수 없이 마지막에 하나님을 찾은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징벌 거두시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 것이다.

 

그런데 그 뒤에 또 문제가 생겼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본문 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상황이 이해되는가?

앞선 17절에서는 이스라엘이 속히 타락했다고 말했다.

시간상으로 너무 빨리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본문에서는 더욱 타락했다고 밝힌다.

그러니깐 이스라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빨리, 더욱 악하게 타락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나마 사사가 살아있을 때는 괜찮다가.

사사가 죽고, 그 세대가 죽으니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안면몰수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여호수아와 그 세대 사람들이 죽고 난 뒤의 상황과 너무나 똑같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전히, 아직도 이스라엘은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로 되어버리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르침이 없고, 교육이 없는 것이다.

 

이런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문 20, 2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앞서 15절에서 이스라엘은 전쟁에 나갈 때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 결과가 이렇게 20절, 21절과 같이 나타나게 된다.

전쟁에서 이길 수 없으니, 이방 민족을 다시는 하나도 쫓아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남아 있는 이방 민족은 지난주에 잠깐 언급한 대로 계속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걸림이 된다.

본문 22, 23.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

 

이방 민족을 하나님께서 쫓아내지 않으시고 그들을 남겨 두신 이유가, 이방 민족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본문에서의 시험은 테스트가 아니다.

본문에서의 시험은 시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범죄할 때, 남겨진 이방 민족으로 시련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다 내쫓으라고 했는데 욕심 때문에 너희가 남겨 두었으니, 나도 그들을 결단코 쫓아내지 않겠다.'

도리어 그들을 너희 범죄에 대한 징계의 도구, 시련의 도구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이다.

마치 가시와 같이 계속해서 범죄하는 이스라엘을 괴롭히게 될 것이라는 것.

 

오늘 말씀의 제목이 악순환이다.

악순환은 나쁜 현상이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사사 시대의 역사는 범죄와 징계, 회개와 회복, 하지만 다시 범죄라는 이 나쁜 현상이 계속 반복되는 악순환의 역사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가?

왜 이런 이 나쁜 현상이 반복되는가?

제일 처음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욕심 때문에 어긴 것으로 징계를 받았다.

징계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회개함으로 회복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뒤에 그 욕심을 완전하게 버리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욕심으로 인해 또다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115절에는 욕심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스라엘의 욕심은 하나님과 바알을 함께 섬기는 종교 혼합에까지 이르게 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렇게까지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은혜를 받고 회복을 경험했던 세대가 그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 두들겨 맞고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것을 온전히 자식들에게 전달하지 못했고, 하나님을 가르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 멋대로, 눈에 보기 좋은 대로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것이다.

 

왜 이렇게 교육이 안 될까?

왜 이렇게 답답할 정도로 신앙이 자녀들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지난주에 소통의 부재를 하나의 이유로 제시했다.

자녀들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들과 계속적이 소통과 이해, 공감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다.

오늘 또 다른 이유 하나를 제시한다.

교육이 안 되는 이유는 역시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육의 방법, 자체를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가르칠 방법을 몰라서이다.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왜 모르는가?

지금 부모세대도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들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삶을 삶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 두들겨 맞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주의 종을 통해 잘못을 알게 되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체험 말고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하나님을 가르칠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그 자녀들도 어설프게 있다가 우상 숭배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기 부모들처럼 하나님께 두들겨 맞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주의 종을 통해 또 회개하게 되고.

그렇게 다시 회복하고.

하지만 그들도 체험 말고는 아는 것이 없으니, 그다음 자식들에게 신앙을 교육할 방법은 모르고.

그나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어 고난 중에 주시는 체험으로 신앙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모르고 있다.

나도 모른다.

오늘날에도 체험이 하나님을 아는 주요 방법이 되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녀를 위한 교육의 방법을 간구하고 찾아야만 한다.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일에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여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가 다음세대는 관심도 가지지 않는데, 기성세대들의 자기 만족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기성 세대는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대로 내 방식대로 다음세대를 교육해서 내눈에 보기 좋은 사람이 되게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다음세대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어줍잖은 내 경험은 오히려 다음세대가 하나님을 아는 것에 방해할 뿐이다.

 

사사 시대를 반면교사 삼아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것 이상을 바라는 것은 욕심임을 잊지 말자.

다음 세대를 위해 그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바르게 남기기 위해, 오늘도 기도하며 방법을 간구하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 놀라운 방법을 알게 하실 것을 믿고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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