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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하나님은 힘이시다(사사기 3:7~11)

by TwoTalents 2019. 9. 15.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하나님은 힘이시다

 

본문 : 사사기 3:7~11

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10.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11.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말씀 :

오늘 본문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사사들의 사역이 시작된다.

사사기에는 총 12~14명의 사사가 등장한다.

숫자의 차이는 학자에 따라 사사기 4장에 등장하는 바락과 9장에 등장하는 아비멜렉을 사사로 인정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이다.

 

다시 한번 사사를 설명하자면.

사사(The Judge)는 일반적으로 여호수아가 죽고 난 뒤에, 아직 왕정 체제가 세워지기 전, 사울 왕 이전까지인 B.C. 1390-1050년 사이의 약 350년의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셨던 민족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단순히 연도에 맞추어 본다면 이 시기가 우리나라로는 고조선 시대이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완전히 통일된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다.

12지파, 12 족속이 각각 분리, 독립되어 있었던 부족 연합 국가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던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이 때로는 민족 전체가, 때로는 특정 지파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고 범죄 하였다..

그때 자기 출신 지파나 혹은 일부 관련 지파의 지도자가 되어 비 세습적, 비전문적, 비정규적으로 통치자의 역할을 사사가 담당하였다.

그런데 사사들은 일반적인 행정이나 치안 등은 담당하지 않았다.

각 지파의 개별적 위기 상황에서 세움을 받아 주로 군사적 지도자의 임무를 수행하였을 뿐이다.

 

사사 시대의 첫 번째 사사는 오늘의 주인공 옷니엘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하나님은 힘이시다이다.

옷니엘의 뜻이 바로 하나님은 힘이시다이다.

 

성경은 옷니엘이 살고 있던 당시의 이스라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본문 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천지가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다.

그러니깐 세상 어디라도 그곳은 하나님의 목전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여호와의 목전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스라엘을 주목하고 계심을 나타내는 말로 봐야 한다.

이스라엘이 잘못하고 있던, 잘하고 있던 변함없이 하나님은 그들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중에도 악을 행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악은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린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세상 모든 민족과 나라,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선민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께도 이스라엘은 특별한 존재이고, 이스라엘에게도 하나님은 특별하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특별한 하나님을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존재 자체를 완전히 잊어버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적으로도 하나님을 완전히 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본문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잊어버리고’는 솨카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뜻은 잘못 놓다이다.

놓아두어야 할 마땅한 자리가 있는데, 엉뚱한 곳에 잘못 둔 것을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어야 하는 분이시다.

개인에게는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리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을 내 마음 중심이 아니라, 주변 자리에 잘못 놓아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가장 중요한 자리, 마음의 중심 자리에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놓아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범죄이다.

내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어야 하고, 이스라엘 민족의 가장 높이는 자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 자체가 하나님을 잊은 것과 똑같다는 말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예배도 참석한다.

하지만 정작 나에게는 재물이 더 중요하다면.

내 마음의 중심에는 재물이 있고, 그 옆에 하나님이 있다면.

나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내가 교회 나와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열심히 찬양한다고 하여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보다, 시험 잘 치는 것과 성적 올라가는 것을 더 간절히 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잊은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2등이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내 삶에 첫 번째이던가 아니면 없는 것이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바알과 아세라였다.

바알은 가나안 민족이 섬기는 농사의 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알은 풍요의 신으로 통한다.

아세라는 다산의 신이다.

이스라엘에게는 부와 자손의 번창이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알과 아세라라고 하지 않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이라고 한다.

바알과 아세라 자체가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바알과 아세라를 상징하는 신상의 모양이 각 지역마다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사사기를 나누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쫓아내지 않은 이방 민족이 가나안 모든 지역 곳곳에 남아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 12지파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욕심 때문에 이방 민족을 쫓아내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남아 있는 이방 민족이 조금씩 다른 바알 신상과 아세라 신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깐 바알들과 아세라들이란 표현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바알 신상, 아세라 신상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겼다는 것은 이스라엘 12지파 모두가 바알과 아세라를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섬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마음 중심에 풍요의 신과 다산의 신을 두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지켜보시던 하나님께서 분노하시게 된다.

본문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이스라엘을 시험하시기 위해 남겨 놓으신 가나안 민족을 들어 사용하시는 것이다.

메소보다미아에게 힘을 주어 이스라엘을 점령하게 하셨다.

일찍이 속국이나 노예의 경험이 없었던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의 조상들처럼 남의 나라의 속국, 노예와 같은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범죄 한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징계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징계이면서,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스라엘은 욕심 때문에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개시키려고 그들을 남겨 두신 것이다.

고난 속에서라면, 그래도 하나님을 찾지 않겠느냐고 기대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개와 회복을 바라시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스라엘은 고통 중에서는 참 하나님을 찾게 된다.

본문 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알면서도 또 속아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다시 찾은 것만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결심하신다.

그래서 세워진 민족의 지도자가 바로 갈렙의 조카이자 사위인 옷니엘이다.

옷니엘은 이미 사사기 1장에서 등장하였다.

갈렙은 자신과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는 용사를 찾고 있었다.

그때 갈렙이 찾은 믿음의 용사,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옷니엘이다.

갈렙의 안목은 그대로 적중하게 된다.

하나님은 옷니엘을 들어 사용하시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

본문 10.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옷니엘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속박했던 메소보다미아의 구산 리사다임을 물리치신 것이다.

 

옷니엘의 등장은 그냥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잠자고 일어나 보니 슈퍼스타가 되어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는 이미 갈렙과 함께 전쟁을 치르면서 생명을 담보로 한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갈렙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용기를 검증받았다.

또한, 어려운 상황, 위기의 시대에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였다.

그만큼 성령에 민감하였고, 언제라도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런 옷니엘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게 된 것이다.

 

언젠가 다윗에 대해 설교를 하면서 그가 그냥 갑자기 용사가 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하드 트레이닝이 다윗으로 하여금 골리앗을 물리치는 용사 되게 하였다고 밝혔다.

옷니엘이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구하는 지도자가 되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하나님을 향한 옷니엘의 민감함과 순종이 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게 했던 것이다.

옷니엘은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을 지켜나갔다.

그 결과 옷니엘이 살아있는 동안 이스라엘에게 같은 고난은 발생하지 않았다.

본문 11.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옷니엘이 사사로 부름을 받아 하나님 곁으로 가기까지의 40년이 이스라엘에게는 평온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범죄 한 이스라엘과 구원자로 세워진 옷니엘을 살펴보았다.

이스라엘의 범죄는 하나님을 2등의 자리에 놓아둔 것이었다.

하나님의 자리는 1등 자리여야 한다.

최우선의 자리여야 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자기가 필요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들, 그것들을 줄 것이라고 역시 착각하고 있는 우상들을 갖다 놓았다.

 

하나님은 내 마음 중심의 자리여야 한다.

그 자리가 아니라면, 하나님을 잘못 모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 하나님을 잊은 것과 똑같다는 것.

그리고 원래 하나님의 자리인 내 마음 중심에 엉뚱한 것을 놓아두었다면.

하나님의 자리에 놓아둔 모든 것은, 그것이 무엇이라 할지라도 우상이 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재물, 학교 성적은 물론, 권력, , 자녀, 배우자, 친구, 인간관계, 지식, 재미, 오락 등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보다 더 위에, 하나님보다 더 중심에 있다면 그것은 다 우상이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을 잊은 것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자 옷니엘을 구원자로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옷니엘을 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준비되고 훈련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믿음이 검증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하나님께 민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고난이 닥쳐왔을 때, 그것 피한다고 분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더욱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게 되고, 옷니엘은 주신 감동에 순종하여 망설이지 않고 또다시 믿음으로 전쟁터를 향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승리하였다.

 

옷니엘과 같이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준비되고 훈련된 모습으로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부르심에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구세군 한마음교회가, 한마음 신앙공동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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