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실패 실패 (사사기 1:27~36)

by TwoTalents 2019. 7. 31.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실패 실패

 

본문 : 사사기 1:27~36

27.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 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 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28.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 더라

29.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 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30.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 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31.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 내지 못하고

32.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 지 못함이었더라

33.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34.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 였으며

35.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 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36.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말씀 :

사사기 1:22~26의 말씀을 통해, 승리한 것 같지만 승리가 아니었던 요셉 가문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루스라는 성읍을 정복하였다.

그런데 그 정복은 오히려 또 다른 루스가 생겨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줘버린 이상한 정복이었다.

오늘은 이렇게 성공처럼 보이지만, 성공을 가장한 실패 때문에 연이어 발생했던 연쇄적인 실패를 나누어 보려고 한다.

 

먼저 사사기 1:22~26 말씀에 등장했던 요셉 가문 중 한 지파인 므낫세 지파가 등장한다.

본문 27.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므낫세 지파가 가나안 한곳 한곳을 차근차근 정복해 나가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정복과정에서 반드시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라고 명령하셨다.

그런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경우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이스라엘이 쫓아낼 수 없었거나, 아니면 쫓아내지 않았거나이다.

쫓아낼 수 없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이고, 쫓아내지 않았다는 것은 고의적인 것이 된다.

쫓아낼 수 없었다면, 하나님이 가짜이다.

쫓아내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의 심각한 범죄이다.

 

그런데 본문은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본문의 결심하고는 히브리어로 야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일방적이거나, 강제성이 배제된 단어이다.

그러니깐 상대방의 묵인하에 서로 타협을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므낫세 지파가 정복했던 땅에 거주한 가나안 민족들이 누군가와 타협을 하고, 그 누군가가 묵인을 해 줬기 때문에 그 땅에 계속 머무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누구랑 타협하고, 누가 묵인을 해 준 것인가?

당연히 정복자가 묵인을 해 준 것이다.

정복자가 누구인가?

므낫세 지파이다.

지금 므낫세 지파는 의도적으로 가나안 족속을 거주하게 하였고,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지난주에 나누었던 것처럼 명백한 실패이다.

성공한 것 같고, 정복한 것 같은데 결국은 정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후에 다른 지파들까지도 계속해서 줄줄이 실패를 이어나가고 있다.

29.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또 다른 요셉 가문인 에브라임 지파 역시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고 함께 거주하게 된다.

다른 지파도 계속적으로 완전한 정복을 성공하지 못한다.

30절은 스불론 지파, 31절은 아셀 지파, 33절은 납달리 지파, 34절은 단 지파의 실패가 기록되어 있다.

34절에 기록된 단 지파는 그냥 쫓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예 자기들이 아모리 족속에게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본문 34.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힘이 없어서 쫓겨난 것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본문 35절 상반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단 지파를 쫓아낸 다음에 아모리 족속이 결심하고 자신들의 땅에서 거주하였다는 것이다.

앞서 밝힌대로 결심하고는 타협과 묵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평지를 뒤로하고 산간으로 쫓겨난 단 지파는 너무나도 쉽게 그 땅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정복을 실패하고 하나님 앞에 간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쫓아낸 아모리 족속과 타협을 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 산에서 살 테니깐 더 이상 우리를 쫓아오지 말고, 기름진 평지에서 당신들은 잘 살기를 바란다고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린 것이다.

 

나중에 요셉 가문이 강성해져서 단 지파가 쫓겨난 땅을 정복하게 된다.

그런데 그 과정 역시 문제가 발생한다.

35절 하반절에서 36.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본문에서 말하는 요셉 가문은 에브라임 지파를 지칭하는 것이다

에브라임의 경계가 단 지파가 할당받은 땅과 맞물려 있었다.

그래서 단이 정복하지 못한 그곳까지 세력을 확장시킨 것이다.

그런데 에브라임도 아모리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왜 이런 것일까?

이스라엘 각 지파는 왜 승리를 하고도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않은 것일까?

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그들과 타협하고 함께 머물렀던 것일까?

왜 이렇게 줘도 못 챙기는 이상한 상황이 일어난 것인가?

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족속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발생시킨 것인가?

 

이스라엘 각 지파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나안 족속이 너무 불쌍해졌을까?

가나안 족속 중에 험악하고 우락부락한 남자들도 있지만...

연약한 여성들도 있고, 아직 어린 애들도 있고 하니깐 그냥 막 추방하기에는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그런 건가?

아니면 사랑의 하나님을 본받아서 가나안 원주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옆에 두려고 한 것인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족속을 추방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버리지 못한 욕심 때문이었다.

그들이 부리지 말아야 했었던 지나친 욕심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 그것으로 만족할 줄을 모르고...

그 이상의 것을 바랬던 그들의 죄악 된 욕심 때문이었다.

본문 128.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므낫세 지파의 상황을 기록한 부분이다.

므낫세 지파는 강성해짐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노역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들을 노예로 삼고 일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경제적인 욕심 때문인 것이다.

당시에는 노예가 바로 재산이다.

자신들의 재산을 불어나게 하려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므낫세 지파만의 상황이 아니다.

오늘 본문 뒤에 등장하는 사사기 22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들은 것, 능력이 안 되서 쫓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은 것, 능력이 되도 쫓아내지 않았던 것이다.

?

가나안 족속을 힘으로 눌러서 노예로 삼으면 되니깐.

노예는 재산이니깐.

나의 재산이 늘어나니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보다, 내 재산 늘어나는 것이 나는 더 행복하니깐.

그러니깐 이런 어이없는 일을 벌인 것이다.

욕심에 눈이 멀어서,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까지 재산을 불리려는 것이었다.

가나안 족속들을 노예로 삼을 수 있었던 그 힘을 어떻게 얻게 된 것인지...

그것이 누구의 은혜인지 조차도 까먹어 버린 것이다.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듣지 않아서, 이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므낫세 이후에 등장한 에브라임, 스불론, 아셀, 납달리 지파 모두가 마찬가지 이다.

나중에 단 지파를 대신해서 아모리 족속의 땅을 차지했던 에브라임도 그들의 힘을 이용해 노역을 시키는 것으로 자기 배를 채웠던 것이다.

 

노예였던 이스라엘이 넓고 기름진 땅을 정복하고 얻게 되었다.

거기다가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게 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기준에서 세상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무엇이라고 표현하는가?

이런 것을 성공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단언하건데...

이것은 믿음 안에서 완벽한 실패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

하나님의 원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바라셨던 모습대로 되지도 않았다.

 

우리는 여호수아와 사사기 같은 성경을 읽으며 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목적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사사기 첫 시간에도 이야기 했지만...

모든 초점을 가나안 정복에 두고 그것을 목적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땅만 뺏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나안 정복은 목적이 아니다.

목적을 위한 하나의 목표일 뿐이다.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에서 말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참된 목적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형성이다.

가나안 정복의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유일신과 선택받은 민족의 관계가 올바르게 형성 되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이스라엘 민족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이 온전히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목적을 잘못 아니깐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너무 많은 경우 목적과 목표를 헷갈려 한다.

 

하나님 이번에 저에게 이러 이러한 것을 해 주시면, 앞으로 더 열심히 교회 나오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형제 자매를 사랑하겠습니다.”

 

이건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과 협상을 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목적과 수단이 거꾸로 되어있다.

열심히 교회 나와서 예배하고, 시간될 때마다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헌금을 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형제 자매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것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목적이다.

이런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기특해서 필요한 것을 거저 더 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마치 세상적인 복을 받기 위해 수단처럼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자꾸 헛된 욕심을 부리면서 거꾸로 기도하고, 거꾸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삶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물질이든, 건강이든, 권력이든, 인간관계든...

그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예배자로서의 삶,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받은 사명...

그러한 것을 위해 사용되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들이다.

수단이고 방법이다.

만약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와 예배, 교회의 사명에 방해가 된다면...

오히려 버려야 하는 것들이다.

 

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것들을 복으로 잘못 알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그것에 욕심을 부리는 이가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의 참된 목적을 아는 믿음의 신앙공동체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작은 목표 이루겠다고, 목적을 내팽개치는 어리석음이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공동체의 목적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하나님과 함께 함, 하나님의 인도하심...

그것으로 인한 영원한 천국으로의 입성임을 잊지 않는 우리이길...

그것으로 오늘도 주안에서 성공하고, 내일도 주안에서 성공하는 믿음의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