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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계속되는 승리, 하지만...(사사기 1:16~21)

by TwoTalents 2019. 7. 19.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계속되는 승리, 하지만..

 

본문 : 사사기 1:16~21

16.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

17.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18.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 하였고

19.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20.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21.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말씀 :

여호수아 사후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스라엘 민족은 계속 가나안 정복의 사명을 수행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 여호수아가 살아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함께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였다.

 

오늘은 이 가나안 정복 전쟁을 진행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일을 나누어보려고 한다.

지난주 주일 말씀 본문이 여호수아였다.

말씀 중에 각 성경의 목적을 바로 알고, 바른 관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여호수아서를 단순히 이스라엘의 역사서나 가나안 정복기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나누었다.

 

이것은 사사기 역시 마찬가지다.

사사기에는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주된 이야기는 아니다.

사사기 역시 여호수아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관계적인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오늘 본문은 아주 짧은 부분이다.

그런데 이 안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예가 모두 들어있다.

오늘은 그것 살펴볼 것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계속되는 승리, 하지만.”이다.

 

사사기 앞부분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사사기의 시작은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에 누가 가장 먼저 남아 있는 가나안 족속과 전쟁을 치를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때, 하나님의 응답은 유다 지파가 선두로 전쟁에 나가는 것이었다.

유다 지파는 이 말씀에 순종하였다.

대신 자신들과 함께 거주하는 시므온 지파가 전쟁에 함께 해줄 것을 요구한다.

시므온 지파도 유다 지파의 요구를 받아들여 함께 전쟁을 먼저 치르게 된다.

이렇게 다시 시작된 이스라엘의 정복 전쟁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게 된다.

 

오늘 본분은 유다, 시므온 연합 지파가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르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본문 17.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유다와 시므온이 스밧이라는 곳을 공격한다.

스밧이 지금의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유다, 시므온 연합군은 이곳에서 승리하고 가나안 족속을 철저하게 진멸한다.

그들이 스밧을 어느 정도로 철저하게 진멸하였는지는 이후에 지어진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다.

스밧을 점령한 연합군은 그곳의 이름을 호르마로 바꾸게 된다.

호르마의 뜻이 완전히 파괴하다이다.

스밧에 관한 것을 하나의 남김도 없이 완전하게 파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모세 때부터 가나안을 정복할 때, 이방 문화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쫓아낼 것을 명령하셨다.

여호수아가 후계자가 되었을 때도 하나님의 그 명령은 변함이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가 수차례 나누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상으로부터, 배교하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깐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스밧에서의 승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유다, 시므온 연합 지파의 순종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뒤에 다른 말이 없다.

정복하고 스밧의 이름을 완전히 파괴하다로 바꾼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승리 후에 좀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스밧을 점령한 유다는 다른 성읍을 향해 계속해서 전진한다.

본문 18.

 

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본문에 등장하는 가사, 아스글론, 에글론은 당시 블레셋 지역의 5대 성읍으로 꼽히는 곳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도시인데 그곳을 차례차례 점령해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복이 순탄하지 못한 부분이 드러나게 된다.

본문 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와 함께하셔서 산지에 거하는 이방 민족을 다 쫓아낸 다.

그런데 골짜기에 거주하고 있는 이방 민족을 쫓아내는 것에는 실패해 버린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들이 철 병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서술한다.

사사기 당시는 세계사적으로 청동기 시대이다.

이스라엘 민족 역시 청동기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던 때이다.

그런데 가나안 땅의 일부 족속이 이미 철기로 무기를 제작해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유다 지파가 철 병거를 가지고 있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한 것이 이해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본문의 쫓아내지 못하였으며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을 히브리 원어 성경에서는 로 레호리쉬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쫓아내지는 못했는데, 능력이 없어서 쫓아내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능한데, 할 수 있는데, 능력이 되는데 고의로 쫓아내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였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스라엘은 이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소리를 지르는 것만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트렸다.

하나님 말씀 안 들었다가 그 작은 아이 성에서 패배하고 도망가는 일을 경험하기도 한다.

아니 이후의 수많은 전쟁에서 하나님과 함께하심으로 인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가나안 정복을 지금 차근차근히 해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그 승리를 주신 하나님보다, 골짜기 가나안 족속의 철기로 된 무기가 더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지레 겁을 먹고 그들을 쫓아내려고 시도도 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것이 용납될 수가 없는 일이다.

그 수많은 기적과 같은 전쟁을 경험하고도 이러고 있는 것은 일부러 이러는 것이라고 볼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데, 그 누구보다 강하신 하나님이신데....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의 철 병거 앞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접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승리를 하고도 완전한 승리가 아니다.

찝찝한 승리 되어 버린다.

엄밀히 따지면 승리도 아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만 이러는 것이 아니었다.

본문 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베냐민 자손도 이러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본문의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19절의 쫓아내지 못하였으며랑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깐 베냐민 지파도 능력이 되고, 할 수 있는데 고의로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부스 족속도 철 병거를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 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쫓아내라고 하신 그 말씀에 바르게 순종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아주 무서운 것이었다.

21절 하반절은 이렇게 말한다.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고 예루살렘을 완전히 정복한 때가 다윗 시대 때이다.

그러니깐 처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순종하지 않은 것으로 말미암아 300년이 넘는 시간을 이방인들과 함께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냥 함께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함께하는 내내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의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계속해서 방해 거리였으며, 이스라엘을 넘어뜨리려고 했고.

하나님을 향한 배교의 이유가 되었다.

340여 년의 사사기 역사가 배교와 징계, 회개와 회복이라는 한심한 사이클을 반복하는 이유가 바로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이방의 잔재 때문인 것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계속되는 승리, 하지만...’이다.

이 제목의 의미가 느껴지는가?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승리했다.

외관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들을 잘 정복해 가는 것만 같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복 과정에서, 승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향한 작은 불순종들이 나타나고 말았다.

그 불순종은 결국 다윗이 등장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넘어뜨리는 쓴 뿌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승리했기 때문에 뒤에 이어지는 작은 불순종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90% 차지했으니깐 10% 정도는 남아 있어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착각이었다.

이스라엘의 참된 승리는 가나안 족속에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승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도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 사역을 통해 우리가 무언가를 남겼다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승리일 수 없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참된 승리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그리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변함없는 순종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면 그것이 참된 승리인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주라 시인하는 신앙공동체의 모든 분들이 가능한 결과에서도 과정에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이 보기에 아름다운 승리를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여서 주님과의 관계가 어긋날 수 있는 작은 여지를 남기지 않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우리를 승리로 이끄는 것임을 믿고 의지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 믿음으로 승리하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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