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누구를 위한...?(사사기 20:1~48)

by TwoTalents 2020. 3. 18.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누구를 위한...?

 

본문 : 사사기 20:1~48

1.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2.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 명이었으며

 

48.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은 모두 다 불살랐더라

 

말씀 :

지난주에 우리는 극도로 타락한 이스라엘과 그 속에서 고통당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에 대해 나누었다.

오늘은 이 이스라엘이 얼마만큼이나 제멋대로였는지를 나눌 것이다.

 

지난주 말씀의 마지막 내용은 한 레위인이 죽은 자신의 첩의 시신을 열두 조각으로 쪼개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보냈는데, 그것으로 모든 이스라엘이 충격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오늘은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한곳에 모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본문 1, 2.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 명이었으며

 

요단강 동편은 물론 서편의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모이게 되었다.

그만큼 이 사건은 그들에게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각 지파의 대표들만 모인 것이 아니라 40만 명이라는 군사들이 이미 동원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들이 벌써 전쟁을 염두에 두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아직 하나님께 전쟁의 가부를 질문하지 않았다.

 

모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시체 조각을 보냈던 레위인에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다시 한번 이야기를 듣기 원한다.

본문 4~7.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하니라

 

레위인의 이 보고는 큰 틀에서 보면 사실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세부사항을 빠트리고 이야기하였다.

레위인은 자신만 살겠다고 아내를 불량배들에게 내준 일, 그러고도 아내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은 일, 간신히 문 앞까지 와서 스러져 있는 아내를 인식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을 방치한 일 등등.

자신이 책망받을 수 있거나, 아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은 모두 생략해 버린 것이다.

당사자가 말을 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듣는 대로만 사건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베냐민을 향한 분노가 극대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레위인은 자신이 아내의 시체를 조각냈던 엽기적 행각이 어쩔 수 없었던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문제라며 확대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전쟁을 염두하고 모인 이스라엘은 레위인의 증언을 통해 그것을 확증하게 된다.

본문 8~11.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 이르되 우리가 한 사람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말며 한 사람도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말고 우리가 이제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를 뽑아서 그들을 치되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백 명에 열 명, 천 명에 백 명, 만 명에 천 명을 뽑아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준비하고 그들에게 베냐민의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가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 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

 

이스라엘은 제비를 뽑아 가장 먼저 베냐민을 공격할 지파를 선발한다.

그리고 각 지파에서 1/10을 함께 선발해서 먼저 전쟁을 치를 지파를 위해 양식을 준비하게 하였다.

사사기에서는 보기 힘든 이스라엘 전체의 협력이 착착 이루어지고 있다.

베냐민 지파는 레위인 개인의 원수에서 어느새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전쟁을 결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선은 말로써 협상을 시도한다.

이스라엘은 베냐민을 향해 범죄인을 인도할 것을 요구한다.

그들을 징벌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의도를 내비친다.

본문 12, 13.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다니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행이 어찌 됨이냐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들 곧 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은 먼저 심각한 악행을 주지시킨다.

그러면서 범죄한 불량배들을 넘겨주기를 원하였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가 이 요구를 거절한다.

아마도 베냐민에게 이스라엘 연합군의 요구는 협박으로 들렸을 것이 분명하다.

레위인은 베냐민 지파에게도 아내의 시체 조각을 보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이미 이 사건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연합군은 베냐민 지파를 총회에 부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40만 명이나 되는 군사를 이끌고 들이닥친 것이다.

이건 누가 봐도 협박이고, 누가 봐도 이미 전쟁을 치르겠다고 작정한 모습이다.

베냐민 지파는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체적으로 처벌하겠다는 제안도 하지 않는다.

본문 14.

 

도리어 성읍들로부터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라

 

오히려 연합군에 맞서 싸우기를 작정해 버리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한발 물러서면 그들은 앞으로 형제들의 노예처럼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전쟁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가 이런 결정을 한데에는 전쟁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 15, 16.

 

그 때에 그 성읍들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 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칠백 명인데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

 

전쟁에 대한 자신감으로 특공대와 같은 700명의 용사를 베냐민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의 왼손잡이는 사사 에훗과 같은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인위적으로 왼손을 훈련해서 양손을 다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용사 중의 용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을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베냐민과 연합군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결국 전쟁이 시작되고 만다.

본문 17, 18.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40만이라는 숫자는 거의 모든 이스라엘 군사가 다 동원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레위인의 자기중심적인 보고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해서 전쟁을 치르게 한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스라엘은 이미 전쟁을 확정하고 왔다.

그들은 당연히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이없는 결과가 일어나고 만다.

본문 19~21.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이스라엘 사람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베냐민 지파와 이스라엘 연합군의 1차전에서 베냐민 지파가 승리한 것이다.

연합군은 대패하고 만다.

이 전쟁을 종교적 측면에서 볼 때, 분명히 베냐민 지파의 잘못이 크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징계의 도구인 연합군이 제대로 된 것도 아니다.

연합군에게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 문제점을 깨닫고 고쳐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도구로 제대로 사용될 수가 없다.

그래서 애써 냉정함을 지키고 전열을 다시 갖춘 다음, 이 전쟁에 대해 다시 한번 하나님께 기도하게 된다.

본문 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애초에 이스라엘은 전쟁에 대해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었다.

전쟁을 기정사실로 해서 4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왔다.

그런데 20배에 가까운 군사력을 가지고도 1차 전쟁에서 대패하고 만다.

이제야 이 전쟁의 가부를 하나님께 질문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기 기분, 자기 기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승리를 응답하시지도 않았다.

 

어쨌든 나름, 기도하고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한 이스라엘 연합군은 다음날 바로 베냐민 지파와 2차 전쟁을 치르게 된다.

본문 24, 25.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만 팔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그런데 2차전에서도 연합군이 패배한 것이다.

만 팔천 명이라는 많은 군사가 베냐민 지파의 칼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쯤 되자 연합군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이 전쟁의 근본부터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본문 26~28.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벧엘에 이르러서 울며 여호와께 기도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질이 다른 기도이다.

1차전 패배 후에 흘렸던 눈물이 그저 슬픔의 눈물이었다면, 이번 2차전 패배 후 흘리는 눈물은 그래도 회개의 눈물이다.

전쟁에서 2번이나 패배한 후에 무언가를 깨달았던 것이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께 질문함에 있어서 자신들의 생각이나 주장을 배제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된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을 때, 비로써 하나님은 승리의 응답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연합군은 오히려 지난 1, 2차 전쟁보다 더 신중한 자세를 취하게 된다.

자신들이 숫자가 많다고 베냐민 지파를 얕잡아 보지 않는다.

이번에는 오히려 베냐민 지파가 교만에 빠지게 된다.

본문 31, 32.

 

베냐민 자손이 스스로 이르기를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 하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르기를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 길로 꾀어내자 하고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들의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서 전열을 갖추었고 이스라엘의 복병은 그 장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더라

 

1, 2차전의 승리로 인해 3차전 역시 같은 형국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방심하고는 연합군의 유인책에 말려들고 만다.

자신감에 넘쳐났던 베냐민 지파는 그만 자신들의 근거지인 기브아를 비워놓고 도망치는 연합군을 좇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연합군의 함정이었다.

본문 33~35.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들의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서 전열을 갖추었고 이스라엘의 복병은 그 장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더라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만 명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치열하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백 명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자신들이 이기는 줄 알고 앞만 보고 돌진하던 베냐민 지파를 향해 뒤에서 연합군의 복병이 들이닥친 것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협공에 베냐민은 무너지고 만다.

당일에만 25,000명의 베냐민 용사가 죽임을 당하게 되는 대패를 한 것이다.

처음 모인 베냐민 군사가 26,700명이었다.

그렇다면 거의 몰살한 것으로 봐야 한다.

 

성경은 분명하게 이것을 하나님의 징계라고 밝히고 있다.

 

본문 36~41절까지는 연합군이 승리한 내용을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이다.

 

연합군에게 앞뒤로 공격을 받은 베냐민 지파는 광야로 도망하게 된다.

본문 42.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몸을 돌려 광야 길로 향하였으나 군사가 급히 추격하며 각 성읍에서 나온 자를 그 가운데에서 진멸하니라

 

그런데 연합군은 끝까지 추격해서 그들을 진멸하고 만다.

도망치다가 잠깐 쉬는 이들이 있으면 여지없이 도륙해버린 것이다.

본문 43, 44.

 

그들이 베냐민 사람을 에워싸고 기브아 앞 동쪽까지 추격하며 그 쉬는 곳에서 짓밟으매 베냐민 중에서 엎드러진 자가 만 팔천 명이니 다 용사더라

 

잠깐의 휴식도 허락지 않은 것이다.

이곳에서 죽임을 당한 베냐민 군사가 18,000명이었다.

베냐민 지파가 어디로 도망가던지 연합군은 끝까지 추격해서 진멸했던 것이다.

본문 45.

 

그들이 몸을 돌려 광야로 도망하였으나 림몬 바위에 이르는 큰 길에서 이스라엘이 또 오천 명을 이삭 줍듯 하고 또 급히 그 뒤를 따라 기돔에 이르러 또 이천 명을 죽였으니

 

이삭 줍듯이 이천 명을 죽여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전쟁 전에 기도하면서 베냐민 지파를 향해 내 형제라고 표현하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전혀 형제를 대하는 모습이 아니다.

이렇게 25,000명의 베냐민 사람이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런 중에도 베냐민 지파 중에 남은 자들이 있었다.

본문 47.

 

베냐민 사람 육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에서 넉 달 동안을 지냈더라

 

600명의 남자가 살아남아서 림몬 바위 부근에 연합군을 피해 숨어들어 간 것이다.

그런데 승리한 이스라엘 연합군은 전쟁에 승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본문 48.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은 모두 다 불살랐더라

 

도망간 600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 그러니깐 전쟁에 참여한 젊은 남자들 말고, 각 성에 남아 있었던 노인, 여성, 어린이들을 닥치는 대로 다 칼날로 쳤던 것이다.

그리고 베냐민의 성읍은 모두 불살라 버렸다.

지금 이스라엘 연합군은 베냐민 지파를 이방 민족 진멸하듯이 진멸하고 있다.

마치 가나안 땅에 처음 들어와 정복 전쟁을 버렸을 때,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을 전멸시키라고 하셨던 명령처럼, 같은 민족, 자신들의 형제인 베냐민을 그렇게 잔인하도록 죽이고 있는 것이다.

 

앞서도 밝혔듯이 베냐민은 범죄를 감싸는 것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의 징계를 위해 사용하신 도구도 영 시원치 않다.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징계의 역할을 처음에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뭔가 깨달음이 있으면서 제대로 역할을 감당하는가 싶었지만, 이내 이들은 이성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지나친 폭력으로 인해 베냐민이라는 한 지파가 완전히 사라져버릴 지경이 되어버리 것이다.

전쟁이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미쳐버렸던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오늘 살펴본 이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한 가정의 부부싸움으로 시작된 일이 한 지파를 괴멸시켜 버렸다.

이 전쟁이 억울하게 죽은 레위인의 부인을 위한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연합군이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죽은 여인에게 무슨 위로가 되는가?

우리는 사사기 19장부터 점점 더 깊은 타락으로 빠져드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확인하고 있다.

성경은 왜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을 미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다음 주는 사사기의 마지막을 나눌 것이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사사기를 통해 전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뜻을 이루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