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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 (사사기 4:1~3)

by TwoTalents 2019. 10. 7.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

 

본문 : 사사기 4:1~3

1.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2.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3.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 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말씀 :

오늘의 이야기는 여성 사사인 드보라와 이스라엘의 군대 장군인 바락의 이야기이다.

읽은 본문은 41~3절이지만, 4장 전체를 본문으로 해서 말씀을 나눌 것이다.

 

지난주에 나누었던 사사 에훗이 죽고 난 후에 이스라엘은 또다시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다.

그 죄악으로 이스라엘이 시련을 겪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하솔을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을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야빈 왕은 철 병거가 구백 대가 있을 정도로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것으로 20년이란 시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힌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고난을 겪어야지만 하나님을 찾는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들이 힘드니깐 그제서야 하나님을 찾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짖는다.

하나님은 이런 잘못된 신앙으로 구하는 것도 참고 들어주실 만큼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여 선지자인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신다.

그런데 드보라는 이전의 다른 사사들과는 다른 리더십을 보여준다.

사사기 4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이전에 나누었던 사사들은 주로 전쟁이나 결투를 하는 모습으로 사사의 직분을 감당했었다.

그런데 여 선지자이며 사사인 드보라는 재판을 하는 행정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고려하시고 그것에 맞게 임무를 수행하게 한 것임이 분명하다.

남성 사사였다면 하솔왕 야빈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지금,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치렀을 것이다.

하지만 드보라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이스라엘 군대 장관으로 세우게 된다.

46, 7.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락이라는 인물에게 이스라엘 군대를 총괄하도록 맡긴다.

그리고 그가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의 군대와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고, 승리하게 될 것을 예언한다.

 

이 바락에 대해서도 지난주에 나누었던 삼갈처럼 의견이 분분하다.

삼갈이 사사가 아닐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 바락이 사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깐 사사기 4장의 시대는 여성 사사 드보라와 남성 사사 바락이 공동으로 사역을 했던 시대라는 것이다.

삼갈을 사사로 인정하는 이들은 바락이 사사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4장의 기록으로 보아 드보라가 단독 사사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바락은 여성 사사인 드보라를 대신해서 전쟁을 위해 세워진 장군일 뿐이라는 것이다.

바락이 사사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 직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바락도 드보라처럼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이다.

사사였던 드보라가 바락을 세운 것이 아니다.

드보라는 분명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락에게 명령하셨다고 밝히고 있다.

바락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이다.

 

어쨌든 드보라에게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전달받은 바락은 이렇게 반응한다.

4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이 바락의 대답을 놓고 학자들 사이에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 번째는 바락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전하는 드보라의 말에 바로 응답하지 않고 주춤했다는 것이다.

겁을 먹었는지, 아니면 의심을 했는지.

내가 가겠나이다라며 바로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사사인 드보라에게 당신이 같이 가면 나도 가겠다고 조건을 달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드보라가 9절처럼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바락 니가 원한다면 내가 같이 가겠다.’

그런데 니가 바로 순종하지 않고 머뭇거리고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의 영광은 너에게 있지 않다.’

전혀 예상치 못한 한 여인이 승리의 영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야빈의 군대 장관인 시스라는 바락이 아닌 야엘이라는 여인의 손에 죽게 된다.

421.

 

그가 깊이 잠드니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드보라의 예언처럼 된 것이다.

 

그런데 저는 이 해석을 거부한다.

그러니깐 바락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머뭇거리고 바로 순종하지 못해서, 조건을 달고 부르심에 응답한 것 때문에.

시스라를 죽이는 최종 승리의 영광이 야엘이라는 여인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해석은 지극히 인간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관점에서 나온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적의 대장인 시스라를 물리치는 영광.

그것으로 마지막까지 완벽한 승리를 이끄는 영광

그 영광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

백성들은 결국 누구를 칭송하게 되느냐?

이 관점으로 해석을 한 것이다.

바락이 까불다가 이 영광을 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사기 4장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시스라를 죽였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복적인 죄를 범하는 이스라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나님을 찾는 그들을 외면치 않으셨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보는 반대적인 해석에 동의한다.

앞서 밝힌 대로 바락이 사사든 아니든, 그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이다.

사사 드보라가 부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콕 집어서 부른 하나님의 사람이다.

우리가 구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살펴볼 때, 자기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책망하셨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사람을 부르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겸손해서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함께하심으로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준비가 된 사람인 것이다.

8절을 다시 읽어 보겠다.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이 부분은 바락의 머뭇거림도, 불안해서 조건을 다는 것도 아니다.

바락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드보라에게 전쟁에 동행할 것을 제안한 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드보라를 통해 자신을 세우셨지 않는가.

앞으로 치르게 될 실제 전쟁에서도 당연히 드보라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드보라의 동행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동행, 하나님의 뜻을 한 번 더 확인하고 구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바락의 요구에 드보라의 대답은 이러했다.

역시 9절을 다시 읽겠다.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드보라는 주저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당연하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전쟁에 갈 것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사사다

여성이라 직접 전쟁을 지휘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너에게 분명히 전달할 의무가 나에게 있다.’

이런 뉘앙스의 대답이다.

 

그런데 여기서 드보라가 예상치 못한 예언을 하나 한다.

 

너도, 나도 전쟁에 참여하지만, 정작 적의 장군인 시스라는 너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죽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 여인의 손으로 그를 멸하실 것이다.’

 

만약 이 부분을 바락이 신경 썼다면 한 번 더 머뭇거리는 것이 맞다.

그러다가 그럴 바에야, 부르심에 응하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바락은 드보라가 함께한다는 대답을 듣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확신한 것이다.

그는 곧바로 전쟁 준비를 착수한다.

410.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만 명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가장 심하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납달리 지파와 인접해 있었던 스불론 지파에 전통을 보내서 군사 만 명을 모집한 것이다.

그리고는 드보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다볼 산으로 올라간 것이다.

 

바락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조건이나 내거는 무모한 짓을 하다가, 자신이 취할 수 있었던 영광을 한 여인에게 빼앗겨 버린 어리석은 장수가 아니다.

드보라의 예언처럼, 하나님의 전쟁을 선포한 드보라나 이스라엘 군대를 지휘하며 하나님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바락 자신에게 최종의 공로와 영광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어차피 영광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러한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나아간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다.

10절에서 보았듯이 그는 자신에게 영광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도 최선을 다해 전쟁 준비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사기 412~16절의 기록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믿고,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을 치른다.

왜 이 전쟁이 어려운 전쟁이고, 바락이 목숨을 건 전쟁인가?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는 철 병거 구백대를 몰고 왔다.

사사기를 처음 시작할 때, 사사기가 어느 시대라고 말했는지 기억나는가?

이 시대는 청동기 시대이다.

민족 대부분이 청동기를 들고 전쟁을 치르던 시기였고, 이스라엘의 무기도 청동기이다.

그런데 야빈의 군대는 철 병거를 거느리고 왔던 것이다.

그야말로 당시로써는 최강의 군대이다.

이것은 칼을 든 사람이 총 든 사람과 싸우는 것이고, 소총부대가 탱크부대와 전투를 벌이는 것과도 같은 모양이다.

이렇게 열세가 뻔한 전쟁에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 붙잡고 나아갔던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전쟁을 바락은 순종함으로 승리하게 된다.

그리고 적군의 대장인 시스라가 철 병거를 버려두고 걸어서 도망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아넣게 된다.

하나님께서 승리하신 전쟁인데, 인간적인 눈으로 계산하면 바락의 공로가 95% 이상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스라가 하필 도망간 곳이 여인 야엘의 장막이었고, 야엘은 엉긴 우유를 시스라에게 마시게 함으로 그를 안심시키고 잠을 재우게 된다.

그리고 자고 있는 그를 말뚝으로 죽이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속된 말로 뭐라고 표현하는가?

죽 쒀서 개 준다라고 말한다.

재주는 곰이 부렸는데 돈은 왕서방이 버는 것이다.

 

이 사실을 확인한 바락이 그것 때문에 화를 내거나, 야엘을 책망하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드보라와 함께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의 승리를 축하하고,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5장 전체가 바로 드보라와 바락이 부르는 승리의 듀엣 송이다.

이 노래의 중간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사사기 524~27.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우유를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고 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일꾼들의 방망이를 들고 시스라를 쳐서 그의 머리를 뚫되 곧 그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도다 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야엘을 책망하거나, 자신의 영광을 가로챈 것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임을 밝히며 칭찬하고 높여 준다.

이것은 바락이 어떤 인물이며, 어떤 심령으로 전쟁에 임했는지를 알게 해 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애초에 바락에게는 자기의 영광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중요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위기의 이스라엘을 사랑하시어 구원의 손길을 내미시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 일에 자신을 부르신 것을 확인하고 감사하며 순종했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바락을 통해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승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영광이나 칭찬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시는 은혜일 뿐이다.

혹시라도 나에게 아무런 공로가 없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고, 나에게 주신 사명이 확실하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언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제가 한마음교회에서 5년 이상 10년 정도 사역을 한다고 했을 때.

제가 있는 동안 올바른 말씀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설교를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감사하게도 그로인해 성도님들의 신앙이 말씀 중심으로 잘 세워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지거나 교회 재정이 늘어나는 것 같은 눈에 보이는 특별한 부흥은 없다.

그리고 무슨 시설을 시작한다거나, 동네 동장이나 시장이 참여하는 눈으로 확인되는 큰 행사 같은 것을 한 적도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적인 목회와 상관없는 잡다한 일들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그 상태에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서 내가 전근을 간 것이다.

그리고 후임 사관님이 전근을 왔는데, 말씀도 말씀이지만 여러 활동에 열정적인 분이 한마음교회로 부임을 하신 것이다.

이미 말씀으로 잘 양육된 한마음교회 성도님들과 활동적이고 열정적인 후임 사관님이 합이 잘 맞아서 그때부터 교회가 여러 일들을 치르게 되고.

주변에도 많이 알려지면서, 예배 참석 인원도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김성연 사관이 10년 동안 있으면서 아무것도 못 했는데, 후임 사관이 1~2년 만에 다 이루어 냈네.

저 친구 대단하네.

 

이렇게 되도 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제가 10년 동안 다져 놓은 밭에서 후임이 열매를 다 따먹어도 상관없다.

저에게는 본영 사람들의 인정, 주위 사람들의 인정 이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내 삶의 이유이고, 목적이고, 근거이다.

저는 바락의 심령도 이러했음을 확신한다.

더불어 한마음 신앙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령이 이렇게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 마음이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마음이며 참 소명임을 기억하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우리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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