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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이스라엘의 악행 (사사기 6:1~10)

by TwoTalents 2019. 10. 9.
이미지 출처 - 웰빙미디어

제목 : 이스라엘의 악행

본문 : 사사기 6:1~10
1.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2.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3.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4.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5.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6.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7.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8.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하여
9.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10.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 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말씀 :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스라엘의 악행’이다.
우리는 사사기를 나누면서 이스라엘이 반복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것을 보게 된다.
오늘 본문의 시작도 이스라엘이 하나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악행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하나님을 분노하게 했는지 그것을 나누어 보려고 한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귀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본문 1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는 가운데 악을 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본문에 앞서서 사사 드보라와 바락의 시대를 통해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평안함을 유지하였다.
이 평안함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해서 누릴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다.
평안함 속에서 언제 어느 때라도 그 평안을 허락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이름을 높여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은혜에 대한 유일한 보답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 평안함이 몇십 년 정도 계속되다 보니깐, 이스라엘 민족이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언제 고통당한 적이 있었냐는 듯이, 원래부터 이렇게 평안했다는 듯이, 감사한 것에 감사할 줄을 모르는 것이다.
감사만 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 눈앞에서 죄를 범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평안함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이다.
고난 중에서 찾았던 하나님을 평안함 속에서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면 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하나님을 다시 찾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난을 받아야 한다.
고통을 당하면 하나님을 다시 찾더라는 것이다.
지난주에 나누었던 것처럼, 고난을 겪어야만 하나님을 찾는 이스라엘의 못된 버릇, 이것을 고치지 않는 이상, 이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본문 1절에서 읽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이스라엘 민족이 미디안 족속에게 7년간이나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이러한 고난 중에라도 하나님을 바로 찾지 않는다.
본문 2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은 미디안이 자꾸 침략하고 괴롭히니깐 아예 산으로 도망을 가버리고 만다.
그리고 거기에 웅덩이도 파고, 굴도 파고, 산성도 만들어서 그곳으로 피신을 했던 것이다.
자기들 스스로 고난을 해결하려고 했던 것.
그런데 하나님의 징계를 사람이 노력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인가?
지금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악을 하나님께 회개하여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런데 회개를 할 생각은 않고 자기 생각으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해결이 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미디안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피해는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다.
본문 3~5절.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미디안의 괴롭힘은 집요하고 더 노골적으로 변하였다.
미디안의 괴롭힘으로 인해 이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먹고사는 것에 직접적인 문제가 생기게 된다.
미디안이 이스라엘의 토지 소산을 다 빼앗아 가버리는 것이다.
가축들도 하나도 남겨 두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니깐 그제서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찾았던 것이다.
본문 6절.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먹을 것이 없어지고, 삶이 궁핍해지니깐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기 시작한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지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고 찾는 것이 올바른 믿음에서 찾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고난과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중요성과 그분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아서 하나님을 다시 찾는 것이겠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스스로 미디안의 고통에서 피해 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고….
오히려 생활만 더 궁핍해지고….
가만히 있다가는 미디안의 칼에 죽거나,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거나 할 것 같으니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는 모양새이다.

어쨌든 이렇게 실컷 두들겨 맞고 나서야 하나님을 찾았는데….
이런 찾음에도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본문 7절, 8절 상반절.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 목전에서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징계를 하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징계가 단순히 죄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벌 받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이유는 앞서 1절에서 나누었듯이 하나님을 다시 찾게 하려고 그들을 징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들은 말씀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징계의 목적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울부짖음에 바로 응답하지 않고 한 선지자를 보내신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과 그 이유를 설명하시고 알게 하신다.
본문 8절 하반절 ~ 10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정확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살려 내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살리시고 보호하시고, 지금껏 함께하신 신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신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명 되신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저질렀던 죄악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밝히신다.
본문 10절 하반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스라엘의 가장 심각한 범죄가 바로 이것이었다.
가나안 땅의 신, 이방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런데 그 신들을 두려워한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버젓이 함께하시는데, 이방 신을 무서워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심각한 범죄였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 신을 두려워했다는 것에서 2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애굽을 물리치고 그 땅에서 인도해 내신 하나님이시다.
홍해와 요단강을 가르신 하나님이시다.
400년간 노예로 살면서 제대로 된 군대도 없었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치르는 전쟁마다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강하심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방 신보다 강하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다면, 이방 신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지 못하니깐, 이방 신이 더 강해 보이니깐 이방 신을 두려워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앞서 읽었던 8절과 9절을 통해서 당신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신 강하고 강하신 하나님임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이방 신을 두려워했다는 것의 두 번째 의미는 이방 신을 향한 경외이다.
본문의 ‘두려움’은 그냥 무서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본문의 ‘두려움’은 히브리어로 ‘야레’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의 뜻은 ‘두려워하다’, 그리고 ‘경외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경외하다’는 신을 향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고, 세우기도, 넘어트리기도 할 수 있는 신을 향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겸손히 머리 숙이는 것을 경외한다고 표현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 신을 이렇게 경외한 것이다.
하나님보다 미디안 족속의 신이 더 강한 것 같으니깐 하나님보다 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방 신을 경외하고 높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영적 간음이다.
질투의 하나님을 질투하게 만든 것이다.
우상 숭배를 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서 마땅히 이방 신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방 신들보다 강하심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이방 신을 두려워하고 경외할 필요가 없음을 분명하게 선언하시는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이방 신을 두려워하는 어처구니없는 죄를 범했던 것이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가 크다.
요한복음 16장 33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분명히 믿는 우리가 세상을 이겼다고 선언하셨다.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 복음을 믿는 우리 역시 세상을 이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다.
무서워할 것 없다.
주님보다 강하신 것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
주님의 놀라운 승리를 경험하고도 패배자처럼 무서워 떨고 있다.
주님보다도 돈을 더 두려워한다.
돈이 없으면 가난해져서 힘든 삶을 살 것이라고 무서워한다.
그래서 돈을 경외하며 돈과 함께하려고 목숨을 건다.
주님보다 세상 권력을 더 두려워한다.
권력에 빌붙어야 잘 살 수 있다고 믿으며, 불의한 권력이라도 힘이 있다면 따른다.
학생들은 주님보다도 학교 성적을 더 두려워한다.
성적을 올려서 좋은 대학가야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학원 보충 때문에 교회는 빠질지언정, 교회 캠프 때문에 학원 빠지는 일은 결코 없다.

부처님 불상 갖다 놓고 염불을 외거나, 동자신 걸어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것만이 우상이 아니다.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이다.

오늘 본문에서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애굽을 물리친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가장 강하시고, 가장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믿음의 신앙 공동체 여러분.
처음 나를 믿음으로 인도하셨던 주님을 기억할 수 있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생명으로 인도하신 놀라우신 주님을 기억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주님보다 강한 존재는 세상에 없다.
주님을 이기는 사상, 가치관, 이념, 배움, 가르침,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겸손함으로 경외하며, 주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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