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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7 절기

[부활절] 아버지 하나님 (마태복음 27장 46절)

by TwoTalents 2024. 4. 7.

 

 

제목 : 아버지 하나님.

 

본문 : 마태복음 27장 46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말씀 :

지난 주간은 고난 주간이었다.

10년 전인 2014년 고난 주간에 대한민국 전체가 한 주간을 정말 슬픈 한 주로 보내야만 했었다.

2014416일 수요일 아침 848분경에 전 국민을 놀라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서해 해상에서 세월호라는 이름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여객선이 침몰한 것이다.

사고 당시 이 세월호에는 수학여행을 가고 있던 경기도 안산의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과 선원 30, 그리고 기타 일반승객 등 총 476명이 탑승하였다고 보도 되었다.

 

사고 후에 구조된 사람들은 탑승객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이들도 실제로는 구조된 것이 아니고, 승객들 스스로가 탈출한 것이었다.

선사의 관리 소홀과 잘못된 운영, 초반 구조의 부실, 정부의 사고 대책 미숙, 언론의 오보, 그리고 몇몇 정신 나간 사람들의 부질없는 선동 등이 이 가슴 아픈 참사를 더 크게 만들어 버렸다.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가 자칭 선진국이라는 한국에서 발생했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1, 2년 주기로 이런 사고가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그런데도 한국은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며, 한국의 안전 불감증과 무지를 꼬집기도 했었다.

몇몇 정치인들과 연예인들은 이 사건을 자신들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계기로 삼으려고 했었다.

그래서 쓸데없는 글을 개인 SNS에 올렸다가 오히려 네티즌들의 맹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고 직후 가장 중요한 것은 혹시라도 있을 생존자들을 빨리 찾고, 그들을 구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도 많고, 분주해 보이고, 소리는 높지만, 실제적인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전까지 그토록 무능하고 한심한 작태는 보지 못했을 정도였다.

 

이런 현실에서 분통이 터지고 울분을 터트리는 사람들은 바로 실종자들의 가족들이었다.

특히나 당시 사고에는 한 고등학교의 2학년 전체 학생들이 피해를 보았고, 그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생사도 모를 채 실종된 상태였다.

그 당시 아이들 부모님들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이 부모님들의 마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도 같았을 것이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혹시라도 살아서 어두운 배에 갇혀 무서워 떨고 있을 아들, 딸을 생각할 때, 이 부모님들이 온전한 정신이었겠는가?

할 수만 있다면, 자신들이 대신해서 그곳에 갇히고 싶었을 것이다.

요즘은 자녀를 대상으로 한 부모의 범죄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의 이야기다.

세상이 아무리 미쳐 돌아간다 해도, 아직은 부모님들의 아이를 향한 사랑이 가장 크고 깊다고 말할 수 있다.

 

17, 18년 동안 옥이야 금이야, 어디 다치기라도 할까봐 고이 키운 내 아들, 내 딸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해서도 아니고, 하지 말라는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학교에서 가라고 한 수학여행 갔다가.

여객선의 방송에서 위험하니깐 객실에 가만히 있으라는 그 말을 듣고, 안내 방송대로 구명조끼 입고 객실에 가만히 있다가.

그렇게 말 잘 듣다가 그런 참변을 당한 것이다.

이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한 일인가?

 

당시 저는 아이들이 갓 돌을 지난 시기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아이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그렇기에 18년 동안 함께한 자녀를 잃은 부모님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똑같지는 않더라도, 분명 이 부모님들이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하고, 분통이 터질지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중간중간 뉴스를 통해 피해 학생들의 엄마, 아빠의 인터뷰가 방송되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지만, 부모님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 아이는 꼭 살아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방송에서는 예전의 실례를 들면서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고 희망을 이야기했었다.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다리는 가족을 위해서 그게 맞다.

하지만.

실제로 전문가들은 이미 배 안의 사람들은 다 죽었을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가족 중에서도 이성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내려놓은 말들을 하였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희망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 아이는 살아 있을 거라고 믿고, 기도하며, 수색을 독려하고, 그렇게 기다리는 것이다.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 엄마와 아빠는 내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부모님의 마음인 것이다.

 

참 안타까운 것은 이제 10년 지났는데.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는데.

그럼에도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임자 처벌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고, 진상 규명을 하겠다던 정부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세월호 희생 학생들의 부모들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이들이 잊혀질까봐,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까봐 아이들을 위한 기억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당시 아내가 뉴스를 보다가 문득 저에게 질문했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했겠냐는 것이다.

어떻게 했겠는가?

똑같을 것이다.

당시 진도에서 반 실성한 사람처럼 되어버렸던, 그 부모님들과 똑같은 모습일 것이다.

아이를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고, 정부의 답답한 행태를 보며 화를 내고, 이 사건을 장난의 도구로, 자기 사업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악한 사람들을 보며 원망하고, 그러면서 다시 무섭고 외로움에 떨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며 눈물 흘렸을 것이다.

그리고 저 역시도 현실은 불가능할지라도, 결코 아이를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모두가 끝났다고 말해도 아빠인 저는 끝까지 희망을 품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부모의 마음이다.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의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질 때까지...

세월호 희생 아이들을 잊지 않으며, 진실을 위해 노력하는 부모님과 관계자 분들을 응원할 것을 이 자리를 빌어 약속하고 다짐한다.

 

오늘 본문에서 이런 마음, 즉 포기하지 않는 부모의 마음을 보이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오늘 말씀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채 말씀하셨던 일곱 말씀 중에 네 번째 말씀이다.

본문을 다시 읽어 보겠다.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 말씀은 구약의 시편에도 등장한다.

시편 22편에서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시편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일부 학자들은 다윗이 이 시를 기록했을 때를 사울에게 쫓겼던 가장 위급한 시기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성경 배경으로는 사무엘하 2325절 이하의 내용이 된다.

하지만 이것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다윗은 어떤 커다란 고난 앞에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힘들어하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시고, 마치 다윗을 포기한 것만 같아 보였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2편과 같이 고백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편 22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포기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다윗은 기도의 응답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그리고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전망한다.

다윗은 가장 낮아지는 경험을 한 후에 또다시 높이 들려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 예수님은 이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셔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보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한다.

한창 죽어가는 판국에 옛날 왕의 말을 왜 인용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전하려고 하셨는지 의문이 든다.

 

오늘 본문만 읽어서는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순종해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는데, 그런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고, 포기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무나 다급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외치며 하나님을 두 번이나 애타게 찾으시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순간은 그렇게 단순한 시간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을 애타게 찾던 그 순간, 하나님마저도 자신의 아들을 외면했던 그 순간이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진행되는 시간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항거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그리고 완전한 영적 고독 앞에서 마지막 기운을 돋우어 성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 절규하셨다.

예수님의 이러한 부르짖음은 가장 필요한 시간에 오히려 완전히 버림받은 것과 같은 절대 고독을 느끼셨기 때문에 비롯되었다.

이것은 예수께서 당하시는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하고 무거운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원래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셨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셨다.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짊어지신 것은 순종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하나님은 예수님을 외면하셨다.

이것은 죄를 향한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이 얼마나 엄격하고도 무서운 것인가를 알게 해 준다.

하나님은 죄를 철저하게 싫어하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는 싫어하셔도, 그 죄 때문에 인간을 포기하지는 않으셨다.

인간을 사랑하시고 포기할 수 없었기에 대신해서 자신의 아들을 외면하셨다.

성부, 즉 아버지가 아닌, 죄악을 징벌하시는 심판의 하나님으로 임하셨다.

심판의 하나님으로 임하셔기에 예수님께서 죄인의 자리에서 육의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 아들을 외면하신 것이다.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철저히 포기하셨던 것이다.

인간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버리신 것이다.

 

이것은 성자 예수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을 위해 아들을 버리신 성부 하나님처럼 성자 예수님도 인간을 위해 자신을 버리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셨다.

자신의 죄가 아니라, 인간의 죄를 대신 지셨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셔서 그 말씀에 순종하신 것이다.

그 결과로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칭찬이 아닌 하나님의 외면이었다.

더 할 수 없는 절대 고독의 순간이다.

이 순간 예수님이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만둬도 된다.

당신의 무거운 짐을 버리셔도 된다.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대속의 죽임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인간 구원을 소망하시고 이루어 내셨다.

요한복음 1930절에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다 이루었다이다.

에구 내가 헛고생했네.’, ‘하나님이 시켜놓고 날 외면하네. 이건 사기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다 이루었다.’이다.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기에 인간과 똑같은 고통 속에서 십자가를 지셨지만.

자신의 죄도 아닌 남의 죄 때문에 억울한 죽임을 당하셨지만.

인간을 포기치 않으시고 끝까지 그 일을 감당하신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인류를 위한 구원을 이루어 내신 것이다.

그리고 누가복음 2346절을 통해 이생에서의 마지막 말씀을 하신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자신을 외면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외면을 이해하시고, 당연함을 인정하셨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두실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을 하나님께 부탁하셨다.

이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셨던 희생의 사랑이다.

이것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이다.

인간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신 신비한 사랑이다.

 

말씀을 마무리.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내 아버지,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맞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아바 아버지.

아빠, 아버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결단코 우리를, 나를 포기하시지 않으신다.

장자 되시는 예수님을 포기하실지언정, 어리석고 연약한 당신의 자녀들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서 아들을 버리셨다.

장자되신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세상 모든 자녀들의 죄가 해결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하려고 사랑의 확증을 보이셨다.

죽은 아들을 그 죽음에서 건져내신 것이다.

아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그 사랑의 확증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

그 사랑은 변함없으시고 오늘도 우리를,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10년이 지나도 희생당한 자녀를 기억하고, 그 자녀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세월호의 엄마, 아빠처럼.

200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앞으로도 당신의 아들이 다시 오시기까지 결코, 포기치 않으시는 놀라운 사랑이다.

그 사랑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포기 없으심을 기억하고, 우리 또한 주님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놀라운 사랑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을 닮은 포기 없는 사랑으로, 그 사랑을 전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이길, 포기치 않으시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아버지 하나님은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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