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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신약)/41 마가복음 묵상(II)

가슴 아픈 순간.(마가복음 14:1-11)

by TwoTalents 2024. 1. 1.

이미지 출처 - 123RF

 

 

제목 : 가슴 아픈 순간.

 

본문 : 마가복음 14:1~11

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0.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묵상 :

예수님을 잡으려는 흉계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도저히 하나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즉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결탁을 한 것이다.

본문 1, 2.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그런데 이들이 명절, 바로 유월절이 다가오므로 이날은 피하여 예수를 잡자고 결의한다.

이들이 유월절을 피하는 이유는 명절이면 온 이스라엘의 백성이 모두 모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있는 사람들도 다수 있다.

혹시라도 그들로 인해 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우려는 사람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민란을 싫어하는 로마의 눈치를 보고 있을 뿐이다.

만약 민란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당연히 로마에 빌붙어 살고 있는 자신들에게 책임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로마제국이다.

 

뒤에서 이런 계략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주님을 한 여인이 찾아오게 된다.

본문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가는 이 여인이 누구인지 밝히고 있지 않다.

다만 다른 복음서를 통해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일 것으로 추측한다.

어쨌든 이 여인은 예수님께 오자마자 자신이 들고 온 나드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게 된다.

유대에서는 귀한 손님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전통적으로 행해 왔던 일이다.

그런데 이 여인이 깨뜨린 나드 한 옥합의 가치 상당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모습을 오히려 좋지 않게 보기도 하였다.

본문 4, 5.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이 여인이 예수님께 부은 옥합의 가치는 300데나리온 이상의 것이었다.

당시는 1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노동자의 1년 임금과 막 먹는 가치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여인을 향해 300데나리온 이상이 되는 향유를 허비하고 있다고 책망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난한 자를 도울 수도 있었다며 자기 의를 드러내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스승인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여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있다.

삼백 데나리온의 혜택을 예수님이 받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여인을 책망한다는 것은 거부감 없이 여인의 행동을 받아들이고 있는 예수님을 함께 책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예수님은 책망하는 이의 행동을 제지하신다.

물론 이것은 주님이 기분 나쁘셔서 그러시는 것은 아니다.

본문 6,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이 여인이 예수님 당신에게 좋은 일을 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신다.

책망하던 이가 얘기했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제도 이 여인을 책망할 이유가 될 수 없다.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일이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예수님을 향한 섬김을 멈추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이 여인은 가난한 이들을 돌아보았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 놀라운 정의를 내리신다.

본문 8, 9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 여인이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예수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붙잡히시고 죽게 될 것이다.

제자들에게 누차 그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을 믿지도 않았고, 깊이 생각지도 않았다.

그런데 한 여인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다는 것은 이 여인이 제자들보다도 더 깊이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만약 그랬다면 이 여인이 행동은 예수님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 설사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동을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서 기억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죽음이 훈훈하게 준비되는 중에 주님을 잡기 위한 음모는 더 깊은 단계로 이어지게 된다.

본문 10, 11.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 기름 부은 여인을 책망했던 사람으로 여겨지는 사람.

바로 가룟 유다가 자신의 스승을 넘겨주려고 대제사장들을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모종의 계약을 마친 뒤에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줄 기회를 찾게 된다.

이 부분은 너무나도 가슴 아픈 부분이다.

이것은 예수님 입장에서도, 가룟 유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메시아로 따르던 사람에 의해 넘김을 당하시게 된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어 세우신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다.

예수님은 가장 가까이서 함께했던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관계와 가르침의 결과가 실패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스승을 팔아넘기고 있다.

몇 년을 그와 함께했다.

스승이 보이신 놀라운 능력에 흥분하며 그를 메시아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왕으로 믿었었다.

스승이 주 능력으로 귀신도 쫓아보고, 병자도 낫게 해보았다.

가룟 유다는 스승을 너무나도 사랑하였다.

그런데 그런 스승을 재물 때문에 반목하고 원수들에게 팔아넘긴 것이다.

 

배신당한 예수님에게도, 배신하는 가룟 유다에게도 이 시간은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순간이다.

 

적용 :

가룟 유다는 단순히 예수님을 좇았던 사람이 아니다.

그도 다른 제자들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던 사람이다.

예수님이 따로 세우신 열두 명의 제자 중 하나였다.

그는 세리 마태가 있음에도 회계를 담당할 정도로 우수한 인력이었다.

그도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능력과 가르침을 가장 가까이에서 체험하고 목격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예수님을 배신하게 된다.

원수들에게 주님을 넘긴다.

그것도 은 30에 말이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많은 믿음의 경험을 했지만, 예수님을 배신하여 도적이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가룟 유다의 배신은 모든 이들에게 큰 충격으로 남는 것이다.

 

가룟 유다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누구라도 가룟 유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예수님 가까이 있었는지, 어떤 신앙적 경험을 했는지, 주님의 이름으로 무슨 능력을 행하였는지.

이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는 언제라도 주님을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랑 은 30에 그리스도를 팔아넘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믿는 이들은 결코 자신의 믿음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주님 안에서 경험했던 놀라운 신앙의 체험이 나를 지킬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 체험은 단지 내 믿음의 근거를 제시했을 뿐이다.

믿음의 체험이 나를 예수께로 인도했다면,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 믿음을 견고해 다져나가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가르치시는 동안에도 자기 생각, 자기주장, 자기 의로 가득 찼던 가룟 유다와 같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주님의 말씀 앞에 겸손함으로 무릎 꿇어야 한다.

 

나는 어떠한가?

설교를 하면 할수록 그것을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된다.

분명 예전보다 익숙해지고 성경에 대해서도 많은 지식을 쌓였을 것인데,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 이유는 주님의 말씀을 알면 알수록 상대적으로 초라해지고 낮아지는 나의 모습 때문이다.

같은 본문의 말씀을 읽어도 예전과는 다른 깊이의 깨달음이 주어진다.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착각했던 지난날의 모습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주님은 나를 부끄럽게 하시려고 더 깊은 깨달음을 주신 것이 아님을 확신한다.

말씀 앞에서 언제나 겸손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깨달음을 엎드려 받아야 함을 잊지 않게 하시려는 주님의 사랑임을 믿고 의지한다.

내가 말씀 앞에 낮아지고 낮아질수록.

주님은 깊고 깊은 깨달음으로 나와 함께 하신다.

 

아버지 하나님.

말씀하시는 아버지.

오늘도 말씀하시고, 낮아지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선포하게 하소서.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와 같이 담대하게 선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5]

 

 

설교가 아닌 개인의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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