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묵상(신약)/41 마가복음 묵상(II)

기적의 이유.(마가복음 6:45-56)

by TwoTalents 2023. 12. 18.

 

이미지 출처 - 출판사 '부키'

 

제목 : 기적의 이유.

 

본문 : 마가복음 6:45~56

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53.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54.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56.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묵상 :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신다.

본문 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아마도 예수님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의 과도한 열정을 걱정하신 것 같다.

혹여라도 예수님을 당장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서 로마를 전복시키자는 주장이 일어날 것을 경계하신 것 같다.

그래서 서둘러 제자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무리를 흩으신다.

그러고 난 다음 예수님은 산으로 오르시게 된다.

본문 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홀로 기도하시는 모습은 마가복음뿐만 아니라 나머지 복음서에도 자주 등장한다.

예수님은 당신이 곧 하나님이시지만,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기에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다.

특히 지금과 같이 놀라운 이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을 때는 반드시 기도함으로 자신을 다스리셨다.

 

기도를 마치신 주님이 홀로 뭍에 계셨다.

그런데 그때 주님의 제자들이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을 보게 되신다.

본문 47, 48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또다시 바람 때문에 배가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이 힘겹게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을 보시고 주님은 그들을 안심시키려고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나아가셨다.

아마도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보면 지난번에 풍랑을 잠잠하게 하셨던 일이 생각이 나서 제자들이 안심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이 너무나도 뜻밖의 것이었다.

본문 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예수님을 보고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소리를 치며 유령을 본 것처럼 공포에 떠는 것이다.

너무 어둡고 정신이 없어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의 모습은 알아봤지만, 물 위를 걷고 있으니깐 당연히 유령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어쨌든 제자들은 진정되지 않았고 더 무서워하게 되었다.

이런 제자들을 향해 주님은 안심할 것을 말씀하신다.

본문 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제자들이 진정하지 못하니깐 예수님께서 직접 두려워 말고 안심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물 위에서 제자들이 타고 있던 배 위로 오르시게 된다.

본문 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그제서야 바람은 그치게 되었다.

제자들이 여전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왜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풍랑 속에서 여전히 두려워했던 것일까?

지난번에 바다도 잠잠하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했지 않는가?

진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해서일까?

본문 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도 풍랑 속에서 여전히 두려워했던 것은 그들의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바로 앞에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남자만 오천 명이 되는 인원을 먹이시고도 열두 광주리를 남겼는데.

그 기적 같은 일에 동참한 사람들이 바로 제자들인데.

제자들이 그 일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둔해져서 주님을 보고도 두려워하며 소리를 쳤다는 것이다.

 

마음이 둔해졌다는 표현은 불신자들을 나타낼 때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 표현대로라면 제자들이 마음으로 믿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왜 마음으로 믿지 못하였는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 뭘 깨닫지 못했는가?

바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의 참 의미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 사람들을 모으거나, 인기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음을 보게 된다.

오히려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경계하셨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이유는 사랑 때문이었다.

평생을 병 때문에 고통받았던 이들을 향한 긍휼.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소외되었던 이들을 향한 자비.

목자 없는 양같이 방황하는 이들을 향한 인자.

그러한 주님의 사랑하심이 그들을 고치시고, 그들을 일으키시고, 그들을 가르치시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것은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스스로 증거하시기 위함이었다.

주님 때문에 쫓겨나게 된 귀신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을 향해 살아계시니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였다.

예수님은 당신이 메시아가 맞는지 궁금해하는 세례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7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주님의 이적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명확하게 알게 해 주는 증거인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계속해서 경험하고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좁은 생각, 선입견, 잘못된 지식이 그 마음을 둔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이 땅에서 세워질 새로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분으로 착각하고 있다.

 

제자들을 구하시고 바다를 건너간 예수님은 또 다른 무리를 만나게 되신다.

본문 53~55.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남자의 숫자만 오천 명이라는 대규모 사람들이 예수님의 능력을 목격하였다.

이제 주님의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동네에 펴지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와 주님을 만나려고 하였다.

본문 56.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그런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주님의 옷에 손을 대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병은 모두 고침을 받았다.

이것은 아마도 혈루증을 앓았던 가버나움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지고 고침을 받았던 일이 사람들 사이에 소문으로 퍼졌기 때문일 것이다.

말로 듣기도 하고 고침을 받은 사람을 직접 보기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졌음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나음을 받았다.

하지만, 이 믿음은 예수님을 향한 메시아적 믿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병을 낫게 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은 믿었지만.

실상 그 병을 낫게 하는 능력의 예수가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예수님의 신분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이다.

 

적용 :

예수님의 능력에 열광하고 그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 주님을 따르는 신앙은 8, 90년대 기복신앙과 같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기복신앙은 구원과 천국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 땅에서 병이 낫고, 이 땅에서 복 받고,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에는 열광하지만, 정작 그분이 누구시며,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오셨는지는 별 관심이 없다.

기복신앙에 빠진 자들은 아니라고 얘기하지만...

그 말은 거짓말일 뿐이다.

 

이 기복신앙이 사람들을 교묘하게 속이면서 세련된 모습으로 변형된 것이 오늘날의 성공신학’, ‘긍정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땅에서의 삶도 너무나 중요하다.

이 땅에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으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 삶으로 주님을 전해야 한다.

주님의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는 것으로 억울하고 눌린 자들에게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희망과 용기를 주어야 한다.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답게 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믿는 자들이 가장 먼저 최선을 다해 실천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렇더라도 우리의 목적은 이 세상에 있지 않다.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나님의 향기를 드러내며 살아야 하지만, 우리가 꿈꿔야 할 곳은 주님 계신 천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성공하려고 무리할 필요가 없다.

이 땅에서 잘 되려고 편법을 할 필요가 없다.

이 땅에서 출세하려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하거나 뇌물을 바칠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 원하신다면 믿는 자가 이 땅에서도 잘될 수 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복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

마치 이 땅이 천국인 양, 이 땅에서 잘되려고 무리하고, 편법을 저지르고, 아부와 뇌물로 자신의 손을 더럽히고, 경쟁자를 모함하는 것으로 기도하는 입술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된 불의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라고 포장까지 한다.

 

계속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나의 연약함이다.

나의 부족함이다.

전혀 대단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전혀 대단하지 않기 때문에, 한순간 정신이 나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조건 붙잡으셔야 한다고 고백한다.

나의 두 손을 꽉 잡으시고 주님 뒤가 아니면, 아무 곳에도 갈 수 없게 하시라고 그렇게 기도한다.

 

아버지 하나님.

어떤 시련이 와도, 어떤 유혹이 와도.

내 입술이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하소서.

내가 손해를 봐도, 혼자 바보 같아도.

내 모습이 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하소서.

내 믿음의 결국이 무엇인지 잊지 않는 내가 되게 하소서.

정직하시고, 신실하시고, 그 모습 그대로 나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야고보서 3:10~12]

 

설교가 아닌 개인의 묵상입니다.

💒온라인교회, '사람이교회'와 함께하기 원하시는 분은 아래 메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saramichurch@naver.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