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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신약)/41 마가복음 묵상(II)

부스러기 은혜도 나에겐 크다.(마가복음 7:24-37)

by TwoTalents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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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부스러기 은혜도 나에겐 크다.

 

본문 : 마가복음 7:24~37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묵상 :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은 숨겨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되신다.

본문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두로갈릴리 북서쪽에 위치한 이방 도시이다.

예수님은 그곳에 가셔서 조용히 한 집에 머무시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미 그곳에도 예수님의 소문이 퍼졌던 것이다.

 

이때 소문을 들은 한 이방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오게 된다.

본문 25, 26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마가는 그녀를 헬라인이었고, 수로보니게 족속의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실제로 헬라인, 즉 그리스인은 아니다.

당시 세계 공용어였던 헬라어를 사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는 수로보니게 족속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페니키아를 말하는 것인데, 지금의 시리아를 일컫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의 평행절에서는 이 여인을 가나안 여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아무튼, 이 이방 여인에게는 어린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귀신에게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여인은 딸의 고침을 받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녀는 가장 겸손한 자세를 취하여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너무나 낯설다.

이것은 이 여인에게뿐만 아니라, 마가복음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본문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지금까지 보여 주신 사랑의 예수님은 온데간데없다.

예수님은 자신의 발아래 엎드린 여인을 집에서 기르는 개와 같은 급으로 비교해 버리신다.

그러시면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줄 수는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대답은 상당히 당혹스럽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뜻 보기에는 거절처럼 들리지만, 주님의 말씀은 거절이 아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복음전파의 순서를 명시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상태가 어떻든지 그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들이다.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먼저 복음이 먼저 전파되어야 한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 복음이 전해진 후에 사마리아와 이방의 땅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복음이 전파되는 순서이다.

예수님은 이 이방 여인에게 기다림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굳이 개를 비유로 하실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 유대인 사이에서는 자신들의 우월감을 표현하면서 상대적으로 이방인들을 향해 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꼭 이런 표현을 하실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주장은 뒤로하고, 다른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과격한 표현은 이 이방 여인의 믿음을 오히려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본문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님의 말씀도 당혹스러웠지만, 그에 대한 이방 여인의 반응도 너무나 놀라운 것이다.

그녀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해 버린다.

자신은 이방인이 맞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는 개가 맞다는 것이다.

그녀는 예수님 앞에서 자존심 같은 것 세우지 않는다.

지금 그녀를 도울 수 있는 것은 헛된 자신의 자존심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며 순종인 것이다.

이방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이 다 맞는데, 개들도 때로는 상 아래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음으로 자녀들과 함께 먹을 때도 있음을 살펴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주저함 없는 인정과 거침없는 간구에 예수님 역시 머뭇거리지 않으시고 바로 응답을 해 주신다.

본문 29, 3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복음전파의 순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방 여인이 주장한 예외적 상황도 실제로 있는 일이다.

맞는 말인 것이다.

예수님은 간절한 믿음으로 올바른 간구를 하는 그 여인에게 즉시 응답하여 주셨고, 그녀의 딸은 그 즉시 바로 고침을 받게 되었다.

유대인에게서도 보기 힘든 기이한 이방 여인의 믿음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두로 지방에서 나오셔서 전에 방문하셨던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게 되신다.

이곳에서도 주님은 병자를 고치시게 된다.

본문 32~35.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이 치유 기적은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독특한 사건이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으로 듣지 못하여 말이 어눌한 사람을 고치시게 된다.

예수님은 병자의 양 귀에 손가락을 넣고, 침을 뱉어 손으로 그의 혀에 대시는 행위를 하신다.

말씀만으로도 가능하실 주께서 굳이 이런 행동을 취하신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능력이 주술적이고 미신적인 행위에 의해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모습을 보이셨지만, 결국 주님의 신적 능력이 병자를 낫게 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도 자신의 이름이 전파되는 것을 경계하신다.

본문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욱 많은 이들에게 전파되었다.

이런 모습은 결코 긍정적이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예수님의 참 의미를 여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능력이 좋은 사람, 이적을 행하는 사람으로만 기억했기 때문이다.

본문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인정하고, 그것을 칭찬하는 것 이상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자신들이 놀라고 있는 이런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가 과연 누구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기적의 이유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이심을, 세상을 구원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자꾸만 주님의 그 능력으로 로마를 뒤엎을 수 있다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적용 :

수로보니게 족속 여인의 믿음이 나의 뇌리를 때린다.

그녀는 자신이 목표한 것에 집중하였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무릎 꿇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였다.

그 말씀을 인정하였고, 또한 진실을 말하며 다시 한번 주님께 간구하였다.

자존심이 아니라 믿음을 내세웠고, 반박하기보다는 인정함으로 간구하였다.

그녀는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였지만, 주님의 부스러기 은혜마저도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구원하는 놀라운 은혜였다.

 

나는 어떠한가?

나의 자존심은 정체성을 지키는 가장 큰 무기이면서 또한 가장 큰 십자가이다.

 

믿는 자로서, 주님의 종으로서.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 앞에서 나는 자존심을 꼿꼿이 세우려고 노력한다.

그따위 것에 넘어간다는 것은 40년 넘는 내 신앙의 자존심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돈 앞에서, 재물 앞에서 고개 숙이지 않는 나의 자존심은 나를 지키는 가장 큰 무기이다.

물질 앞에서 목이 곧은 사람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나를 지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런데, 자존심은 내 십자가이기도 하다.

용납, 용서, 그리고 사랑.

사랑이라는 것을 지키려고 할 때, 때로는 나의 자존심이 걸림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원래 이루어져야 할 주님의 뜻에 집중하여, 하찮은 나의 자존심 따위는 내버릴 수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이 쉽지 않다.

많이 내려놓고, 많이 버렸지만,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는 나의 자아는 상처받으려 하고, 공격하려 한다.

 

하지만, 오늘도 나를 다듬으시고, 내일도 쪼개실 주님을 믿기에 부족한 모습으로 주님의 뒤를 묵묵히 따르려고 결심한다.

 

아버지 하나님.

내 모습 이대로 주님께 가오니, 주여 받아주소서.

내 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가복음 10:21~22]

 

설교가 아닌 개인의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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