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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신약)/41 마가복음 묵상(II)

봐도 모른다.(마가복음 8:1-26)

by TwoTalents 2023.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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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봐도 모른다.

 

본문 : 마가복음 8:1~26

1.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묵상 :

다시 한번 예수님의 놀라움이 드러나는 사건이 발생한다.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이 또다시 일어나게 된 것이다.

계속해서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굶주린 상태이다.

본문 1~3.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굶주린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이미 사흘이나 주님과 함께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멀리서는 단순히 거리가 먼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표현은 이방 땅, 이방 민족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된 방법이다.

오병이어 때와는 달리 본문의 사건에서는 정황상 이방인들이 많이 동참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사람들을 굶긴 채로 보낼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당혹스러워한다.

본문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제자들의 반응이다.

오병이어 사건 후에 얼마나 지났을까?

제자들은 아무런 발전이 없다.

그들의 대답은 흡사 오병이어를 모르는 사람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흔들림이 없고, 여전히 능력의 주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지난번처럼 제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소량의 음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시고, 남기시는 놀라운 기적을 다시 일으키신다.

본문 5~8.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이번에 남은 조각은 일곱 광주리이다.

주님의 능력을 여전히 차고 넘치는 놀라움이다.

이날에 함께한 사람들은 사천 명이었다.

본문 9, 10.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한 사천 명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앞서 말 한대로 이번에는 꽤 많은 이방인들이 섞여 있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경험했던 이적들을 이방인들이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계속 등장한다.

이번에도 이스라엘 안에서 일어났던 오병이어의 기적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칠병이어의 기적으로 다시 일어나게 된 것이다.

복음의 확장, 구원의 확장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방인들 사이에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후에 바로 이스라엘의 불신앙이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바리새인들이 또다시 예수님께 시비를 거는 것이다.

본문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힐난한다.

그러면서 예수를 시험하며 하늘에서 오는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이들이 구하는 표적을 믿음을 위한 표적이 아니다.

예수를 시험하고, 곤란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신다.

본문 12, 13.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예수님은 그들에게 표적을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시고는 그냥 그들에게서 떠나 버리신다.

왜 그러셨을까?

이미 그들에게는 수많은 표적이 주어졌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소문을 들었었고, 때로는 직접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은 보고도 믿지 않았다.

귀신을 쫓아냈더니, 귀신 대장의 힘을 빌려 그랬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그들에게 지금 표적을 보인다 한들 그것이 표적이 되겠는가?

애초에 믿지 않겠다고 작정을 한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표적을 보인단 말인가?

9번의 기적을 보고도, 1번의 트집으로 생떼를 쓸 인간들이다.

더러운 똥은 그냥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 자리를 떠나시며 제자들에게 외식으로 가득 찬 바리새인에 대해 경고하신다.

본문 14, 15.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누룩은 악과 거짓 가르침, 위선 등을 상징한다.

바리새인들의 이중성에 대해 경고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만다.

본문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아까 남은 일곱 광주리의 떡을 놓고 온 것이 기억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떡을 찾고 있다고 생각해 버린다.

답답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신다.

본문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내가 지금 먹을 떡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냐?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

바보냐? 왜 이렇게 아둔하냐?

 

주님의 이 말씀을 오늘날의 공격적 표현으로 하자면 야잇 병신들아!! 생각을 좀 해라. 머리는 장식이냐?”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책망을 여기서 멈추지 않으신다.

더 노골적으로 제자들을 질책하신다.

본문 18~21.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앞서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라고 헛소리할 때도 참으신 주님이시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되지도 않는 주장으로 신경을 건드리더니, 그들의 누룩과 같은 썩어빠진 외식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시는데, 이놈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남긴 떡 찾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대로 열을 받고 말았다.

아까 제자들에게 하고 싶으셨던 말씀까지 다 하시는 것이다.

도대체가 뭐 하는 인간들이기에 오병이어를 경험하고도 의심하고, 칠병이어를 경험하고도 떡이 없음을 걱정하고.

눈이 있어도 못 보고, 귀가 있어도 못 듣고, 머리가 있어도 기억을 못 하고.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 인간들인지 제자들이 한심할 따름이다.

 

이런 답답함 속에서도 예수님의 사역은 계속 된다.

베새다에 이르러 사람들이 데리고 온 맹인 한 사람을 고쳐 주시다.

 

바리새인과 같은 대적자들의 모함도, 제자들과 같은 동역자의 무지도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멈출 수가 없다.

계획하신 대로 십자가를 지시고, 그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을 때, 대적자들은 예수님의 표적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적용 :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원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당황해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참으로 당황스럽다.

오병이어가 기껏해야 며칠 전의 일일 텐데, 이들은 아무런 경험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을 한다.

도대체 제자들은 왜 이렇게까지 깨달음이 없는 것일까?

 

바리새인들은 애초에 예수를 적으로 간주하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에 대해 고발할 거리를 찾아야 하고, 사람들에게 예수가 가짜라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10, 100번의 이적이 중요하지 않다.

단 한 번의 실수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적을 봐도, 놀라운 가르침을 들어도 아무런 깨달음이 없다.

 

제자들은 애초에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새로운 이스라엘의 왕으로 모셔야 한다.

예수님의 인지도는 이미 엄청나게 올라갔다.

이제는 한가하게 가난한 사람들과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

그 사람들이 굶거나 말거나 빨리 로마를 뒤엎고 이 땅에서 새로운 나라를, 완전한 자유의 이스라엘을 일으켜야 한다.

제자들은 이적을 봐도, 놀라운 가르침을 들어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무런 깨달음이 없다.

 

바리새인들이나 제자들이나.

봐도 모르는 것은 매 한 가지이다.

 

나는 어떠한가?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제자들의 무지가 나에게는 전혀 없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세워진 나만의 잣대가 나를 교만하게 하고, 주님을 더 깊이 알지 못하는 무지로 이끌고 있지는 않은가?

 

영적 기억력을 높여야 한다.

영적 이해력을 높여야 한다.

그것으로 주님 보이시는 표적을 표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한다.

그 표적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그 표적의 깨달음으로 오늘을 승리하며 살아가야 한다.

 

말씀이 나의 영적 기억력을 높일 것을 확신한다.

말씀이 나의 영적 이해력을 키울 것을 확신한다.

오늘도 겸손함으로 말씀을 받아, 주님의 놀라운 뜻을 깨달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아버지 하나님.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1~3]

 

 

 

설교가 아닌 개인의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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