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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신약)/41 마가복음 묵상(II)

네 가족에게 알리라.(마가복음 5:1-20)

by TwoTalents 2023. 11. 27.

이미지 출처 - Angry Birds

 

제목 : 네 가족에게 알리라.

 

본문 : 마가복음 5:1~20

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묵상 :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하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무사히 바다 건너편에 이르게 된다.

본문 1, 2.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그런데 이곳은 거라사인의 지방이었다.

사본에 따라 이름이 조금씩 달라서 이곳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 학자들은 이곳을 데가볼리라 불렸던 열 개의 도시 중 하나였던 가다라로 생각하고 있다.

그곳은 독립적인 정부가 있는 곳으로 주로 이방인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다.

 

예수님의 일행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무덤 사이를 배회하는, 귀신들린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본문 2~5.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마가의 설명만으로도 이 사람의 상태가 아주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이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귀신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고, 심지어 쇠사슬로 묶어 놓아도 그것을 깨뜨려 버리는 괴력을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갑자기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큰 소리로 부르짖는 것이다.

본문 6, 7.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마가복음에 소개되었던 모든 귀신들이 그랬듯이 거라사인 광인의 영혼을 지배했던 귀신도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래서 귀신이 예수께 나아와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말 것을 간구한다.

 

그런데 그 귀신이 그렇게 했던 이유는 이미 예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본문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았듯이, 예수님도 귀신의 정체를 바로 아시고 사람에게서 나올 것을 명령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간구하는 귀신의 이름을 물어보신다.

본문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예수님의 질문은 귀신은 자신의 이름을 군대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이름이 군대인 이유는 그 수가 많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본문의 군대는 레기온이란 단어로 로마 군인의 단위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3000~6000명 정도의 규모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한 사람의 몸속에 적어도 천 단위의 수의 귀신들이 몰려 들어있다는 말이 된다.

한 종류의 귀신만으로도 사람은 죽음을 오가게 된다.

이런 거라사인 광인의 상태는 성경 전체에서도 최악의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자기소개까지 마친 군대 귀신은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지 마시기를 간구하며 예수님께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본문 10~12.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마침 근처에 있던 돼지 떼에게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시라는 것이다.

아마도 귀신들은 거라사인 광인에게서 나오게 되면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몸속으로는 들어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이스라엘 민족이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돼지 떼에게 들어 갈 테니 허락하시라고 요청을 하는 것이다.

귀신들의 속성은 파괴에 있다.

어차피 더 이상 인간에게 들어갈 수 없다면, 돼지에게라도 들어가서 그것들을 파괴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예상된다.

 

어쨌든 예수님은 귀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신다.

본문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예수님의 허락을 받은 군대 귀신은 원하던 대로 돼지 떼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돼지 떼의 수가 거의 이천 마리나 되었다.

적어도 군대 귀신은 이천 종류 이상이었음을 알게 한다.

군대 귀신의 파괴 본능은 여지없이 드러나고 이천 마리나 되는 귀신들린 돼지 떼는 바로 비탈로 질주하여 바다에서 몰살해 버린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셨지만, 그 돼지 떼를 몰살시킨 것은 분명히 군대 귀신이라는 것이다.

 

돼지를 치고 있던 사람들은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도망치듯 마을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게 된다.

본문 14, 15.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돼지를 치던 이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사건이 발생한 현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들은 대로 돼지 떼는 보이지 않고, 무덤 사이에서 귀신들린 채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사람이 멀쩡해 져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거기다가 귀신 들렸던 자가 직접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다.

본문 16, 17.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귀신 들린 자가 온전해진 것은 놀랍지만, 그것이 자신들과 크게 상관있는 일은 아니다.

문제는 자기들의 돼지들이 몰살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사실이 황당하고, 화가 났으며, 답답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상받을 방법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향해 그곳을 떠나기를 간구한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다시 배에 올라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신다.

그때, 군대 귀신에게 붙잡혔다가 온전하게 된 거라사인의 광인이 예수님을 따라가기를 청하는 것이다.

본문 18, 19.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자신을 따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이 부분이 상당히 독특한 부분이다.

이전 사역을 살펴보면 아직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계속 숨기고 계신다.

귀신에게서 해방된 사람, 중한 병에서 치유를 받은 사람.

그 사람들에게 아무에게도 그 일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다.

그런데 이 광인에게는 오히려 예수님을 따를 생각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이 놀라운 사실을 알리라는 것이다.

이 광인은 실제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가 사는 곳으로 나아가 자신이 겪은 놀라운 일을 전하게 된다.

본문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왜 이렇게 하셨을까?

왜 이전과는 다르게 이 광인에게는 놀라운 사실을 전하라고 하셨을까?

 

이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한다.

이곳은 거라사인의 성이다.

정확한 명칭과 위치에 대해 조금씩 다른 의견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당시에 이방인들이 점유하여 살고 있었던 열 개의 성, 데가볼리 중 하나라는 것에 생각이 일치한다.

그러니깐 귀신 들린 광인은 이방인이었고, 돼지 떼를 치던 이들도 이방인이었으며, 놀라서 쫓아와 예수님께 나가라고 했던 사람들도 이방인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간주했기 때문에 돼지를 치는 일은 당연히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복음서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이방을 향한 복음 전파가 되는 것이다.

마가복음의 마지막은 예수님께서 만국을 향해 복음 전파하라는 명령으로 끝을 맺는다.

그 시작이 되는 부분이 바로 이곳, 거라사인의 성인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입단속을 시키셨던 것은 아직 주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그 일들을 빌미 삼아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이 서둘러 예수님을 잡고자 하는 것을 경계하신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이방인에게는 그럴 이유가 없다.

거라사인의 광인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자기 고향에 남아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더 크게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비록 사람들에게 쫓겨나 그곳을 떠났지만, 거라사인의 광인은 그곳에 남아 예수그리스도를 전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일어날 복음의 시작을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가장 먼저 자신의 가족에게 주님을 전하는 것이었다.

 

적용 :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에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한 부류는 거라사인 광인이다.

그는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고 곧바로 그를 따르려고 한다.

어차피 가족들도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고, 실제로 살아있으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살리신 예수를 따라나서려고 했던 것이다.

또 한 부류는 예수님의 능력에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것보다 잃어버린 자신들의 돼지 떼를 먼저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이 시간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마지막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고, 증거를 보고도 자신들의 재산이 손해 본 것에 분노하여 예수를 쫓아 버렸다.

 

물론, 거라사인 광인은 자신이 직접 체험을 한 것이고, 자기 몸에서 귀신이 축출되는 긍정적인 체험이었지만, 그에 반해 돼지 떼의 주인들은 간접 체험이었으며, 자신들의 돼지 떼가 몰살해 버리는 너무나도 부정적인 체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응이 다르게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이 변명은 되지 않는다.

 

물질에 대한 집착, 세상 삶은 욕심은 인간의 눈을 가린다.

진리를 보고도 그것이 진리인 줄 모른다.

예수님의 이적을 보고도 잃어버린 자신의 돼지 떼를 걱정하게 한다.

연약한 인간으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우리를 구원하지는 않는다.

 

나는 어떠한가?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진리를 묵상하고 나누는 동안, 나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다 보니 감당해야 할 손해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그나마 남은 것까지 모두 포기하고 계속 예수를 따르려고 하고 있는가?

얼마 되지도 않는 손해에 분노하고 그것에 집착하며 주님을 내 마음에서 쫓아내고 있는가?

 

주님.

나의 아버지.

오직 위의 것을 구하게 하소서.

위에 것을 위해 아랫것을 포기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로새서 3:1~4]

 

 

설교가 아닌 개인의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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