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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신약)/41 마가복음 묵상(II)

죄를 사하러 오셨다.(마가복음 2:1-12)

by TwoTalents 2023. 11. 8.

이미지 출처 - 갓피플

 

제목 : 죄를 사하러 오셨다.

 

본문 : 마가복음 2:1~12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묵상 :

가버나움으로 예수님께서 돌아오셨다.

이 소문이 다시 사람들에게 들리고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모여들게 된다.

한 집에 모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람들이 듣고 있었다.

문 앞까지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복잡했던 그곳에서 희한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

본문 3, 4.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한 중풍 병자가 네 명의 사람에게 메워 예수님께로 나아오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 복잡한 관계로 예수님이 계신 집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그 집의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뚫고 중풍 병자가 누운 상을 그대로 달아 내린 것이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고, 집주인에게는 범죄와 같은 일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모습에서 믿음을 보셨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본문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의 이 말씀은 중풍 병자나 그 중풍 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이 기대했던 말이 아니다.

거기다가 당시로서는 상당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이들은 분명히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이렇게 무리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중풍 병이 낫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죄를 사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이 발언에 대해 바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된다.

본문 6, 7.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서기관들은 유대교 율법을 훈련받은 율법의 전문가들이다.

이들의 종교적 상식으로는 예수의 발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향해 신성 모독을 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신성 모독은 종교적으로 가장 사악한 범죄이다.

 

예수님은 이런 서기관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셨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며 하나의 질문을 던지신다.

본문 8, 9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좋지 못한 생각을 책망하셨다.

그러면서 중풍 병자에게 죄 사함을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쉬운 일인지를 질문한다.

 

표면적으로는 죄 사함을 말하는 것이 훨씬 쉽다.

왜냐하면,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풍 병자가 죽은 뒤에 본인이나 알 수 있는 문제이다.

그에 비해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는 것은, 그 자리에서 바로 진실 여부가 드러나는 것이다.

어쩌면 서기관들은 병을 낫게 할 능력이 안 되니깐 죄 사람을 말하면서 이 상황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려는 의도로 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죄를 사하는 것도, 중풍 병을 낫게 하는 것도 모두 어려운 일이다.

서기관들의 주장처럼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듯, 병을 낫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서기관들과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이렇게 선포하신다.

본문 10~12.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본문의 인자는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나타내실 때 자주 사용하시는 명칭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서기관들과 사람들에게 알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증거로 중풍 병자를 낫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자기의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령하신다.

중풍 병자는 자신이 언제 사람들에게 들려왔느냐는 듯이 바로 일어나 자신의 상을 들고 사람들 사이로 나가게 된다.

놀란 사람들은 이 신비한 일에 감탄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순서를 왜 이렇게 하셨을까?

그러니깐 왜 죄 사함을 먼저 말씀하시고, 그다음에 치유를 말씀하신 것일까?

만약 중풍 병자를 먼저 낫게 하시고, 다음에 죄 사함을 말씀하셨다면 서기관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신성 모독이라고 말하는 이가 없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 부분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만약 예수님께서 중풍 병을 먼저 낫게 하셨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의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중풍 병자가 침상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면서 그저 그 신기한 일을 서로서로 말하는 것에 바빴을 것이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 후에 그 현상에만 주목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는 장면이 여러 번 나타난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신기한 일을 보기 원했지, 무슨 뜻인지도 이해하기 힘든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죄 사람을 말씀하셨고,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고, 심지어 비판할 때, 중풍 병자를 고침으로써 과연 예수님에게 죄 사함의 권세가 있는지 없는지를 증명하시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짜 목적을 이루시고 증거하기 위한 하나의 사역이시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서이다.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 그들의 죄를 대신 감당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이다.

병을 고치는 것은 그 사람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진짜 목적을 먼저 이루시기 위해 죄 사람을 먼저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치유자시며, 위로자이시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구원자시라는 사실이다.

 

적용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잘못 아는 듯한 성도들을 볼 때가 종종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잘못 안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의 목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영혼들을 살리신 놀라운 희생이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인간의 성공을 위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땅에서 형통하고, 이 땅에서 부자 되고, 이 땅에서 높은 위치에 서게 되고.

복 받아서 사업 번창하고, 복 받아서 장수하고, 복 받아서 내 아이도 잘되고, 복 받아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어떤 목사가 설교랍시고, 기독교인이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 떠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면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잘못 믿고 있기 때문에 사업이 잘 안되는 것이고, 공부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설교한 미친 목사가 전병욱이다.)

 

기본적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기꾼의 말에 결코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돈 잘 벌게 하고, 건강하게 하고,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받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그런 하찮은 것 때문에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내놓고, 우리의 생명을 건지시려고 오신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사랑, 그 희생을 한낱 이생의 자랑을 위한 것으로 변질시키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나는 어떠한가?

예수님의 목적을 바로 알고, 알고 있는 만큼 바르게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가?

지금은 그렇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내 눈앞에서 예수의 이름을 팔아 잘 먹고 잘 사고, 승승장구하는 사기꾼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데.

삯꾼들을 향해 아멘’ ‘아멘하며 그들이 진짜 주의 종이라고 헛소리를 해 대는데.

나를 향해 순진하다고, 세상을 모른다고, 혼자만 잘났느냐고 비아냥대는데.

나는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나의 마음을 잘 지킬 수 있겠는가?

오늘도 말씀 앞에서 기도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고백한다.

 

사랑하는 아버지, 나의 하나님.

두렵고, 무섭고, 떨리기까지 합니다.

도저히 거짓을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부정함이 우는 사자와 같이 나를 덮치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함께하시고, 주님의 강한 팔고, 놀라운 능력으로 함께하여 주소서.

주 안에서 이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게 하소서.

살아계시고, 내 곁에 계시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6~39]

 

설교가 아닌 개인의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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