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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28 고멜을 사랑한 호세아(호세아)

큰 예배당이 진짜 하나님의 영광인가?(호세아 5:1-7)

by TwoTalents 2023. 10. 30.

제목 : 큰 예배당이 진짜 하나님의 영광인가?

 

본문 : 호세아 5:1~7

1.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 이라

2.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

3.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4.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5.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6.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7.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말씀 :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은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오히려 즐거워하며 행하였다.

그들이 행했던 부끄러운 일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그에 따른 잘못된 제사였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러한 부끄러운 일, 즉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에 대해 경고한다.

그리고 이러한 죄악을 주도적으러 행했던 지도자들을 비판한다.

 

먼저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한다.

본문 1.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

 

본문에서 말하는 이스라엘 족속들은 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장로들 혹은 상류층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 공동회의에 참석하는 각 지파의 대표로 보는 것이다.

공동 번역에서는 이 부분을 예언자들로 번역하고 있다.

대표성을 가진 지도자란 말이다.

그러니깐 호세아는 제사장과 왕족, 그리고 각 지파의 지도자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사회적 지도자들에게 심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

이 지도자들로 인해 이스라엘 전역이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의 미스바와 다볼은 요단강 동편과 서편의 각기 한곳을 지정하면서 북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킨다.

지도자들이 이스라엘 전체를 올무와 그물에 걸리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는 전쟁에서의 패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고 백성들이 묶이고 포로가 될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지도자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인가?

본문 2.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

 

지도자들을 향해 패역자라도 부르고 있다.

본문의 패역자는 히브리어로 세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옳은 데서 떠남’, ‘’, ‘모반자’, ‘돌아서는 것등의 의미가 있다.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하는 것,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 즉 배교자, 배신자를 뜻한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살육죄에 깊이 빠진 것이다.

우상에 빠져 생명을 경시하고, 그 생명을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지도자들의 이런 모습으로 인해 이스라엘 전체가 죄악에 빠지게 되었다.

본문 3.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본문의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한다.

본문을 우리나라에 빗대어 말하면 배달의 민족은 내가 알고 대한민국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이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깐 이스라엘의 음행과 더럽혀짐을 주께서 아시고 이스라엘은 숨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지도자들의 죄악을 시작으로 이스라엘 전체가 음행하였고 더러워졌다는 말이다.

이런 음행으로 인해 더러워진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도 못하게 되었다.

본문 4.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이스라엘은 음행으로 인해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는커녕 오히려 더 멀어지게 될 뿐이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우상을 함께 섬겼다.

그리고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에게 구하였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구함에서 그들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던 것이다.

호세아를 시작하면서 나누었는데, 호세아가 활동하던 시기는 여로보암 2세가 왕으로 있던 시기이다.

여로보암 2세의 통치하는 동안 북이스라엘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 시기에 북이스라엘 초기 전성기 때의 영토를 거의 회복했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번영했던 시기이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볼 때, 풍요의 신인 바알에게 제사하고 구했더니 진짜로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이다.

진짜로 물질적으로 풍성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바알을 찾고, 바알에게 제사하며, 바알에게 구하는 것이다.

영적, 육체적 음란한 행위는 멈춰지지 않고, 끊임없이 강함과 부유함을 구하였다.

그러니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과는 당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과 멀어지니 하나님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예 하나님을 모르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도 이스라엘은 교만에 빠졌다.

그들의 부유함, 그들의 강대함이 그들을 교만하게 했던 것이다.

본문 5.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세속의 성공이 이스라엘을 망쳐버렸다.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에게 구하는 음행을 저질렀는데도 이스라엘은 부유하게 되었다.

강대국으로 번영하였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지 간에 나라는 부강해졌다.

그러니 자신들의 잘못된 길을 돌이킬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들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더욱 교만해졌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모습은 남유다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남유다 눈에도 북이스라엘의 세속적 성공, 그들의 번영이 좋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을 따라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북이스라엘도 남유다도 하나님 앞에서 넘어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떠나시고 다시 일으키지 않으실 것이다.

본문 6.

 

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이스라엘이 양 떼를 바치고, 소 떼를 바치면서 제사를 올려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떠나셨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제물을 바치고, 아무리 많은 제사를 올려도 모든 것은 헛수고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을 떠나셨다.

제사를 받을 대상자가 떠났는데, 그 제사를 받지 않겠다는데, 제사를 드려봐야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이스라엘은 그들이 성공이라고 여겼던 기업과 함께 망하게 될 것이다.

본문 7.

 

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께 정조를 지키지 않았다.

우상에게 절하고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영적 음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사생아를 낳았다고 말씀하신다.

사생아는 정당하고 합법적인 결혼이 아닌 잘못된 관계에서 출생한 자녀를 의미한다.

본문의 사생아를 이방 종교의 제사를 따라 했던 타락한 부모들이 제의적으로 음행을 저지르고 출생한 자녀라고 보는 학자가 있다.

그러니깐 실제 자녀를 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영적 혼인 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자녀를 말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이 아닌 이방신, 즉 바알이나 아세라 등에게 구해서 얻게 된 것들.

실제로는 아니더라도 이스라엘이 그렇게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대표적인 것이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통해 이런 것들이 망하게 될 것을 경고한다.

새 달이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기업을 삼켜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본문의 새 달은 월삭을 말하는 것이다.

월삭은 매월 초하루를 지키는 절기로 모세 때부터 제정되었다.

그러니깐 이스라엘이 아무리 절기를 지키고 제사를 드려도 망한다는 것이다.

그 제사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잘못된 제사로 인해 그들이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과 함께 망하게 될 뿐이라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제사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전성기를 누리며 많은 제사를 화려하게 드렸다.

그런데 그 제사가 하나님과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제사를 받아야 할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 버리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을 떠나신 것인가?

왜 떠나셨고, 이스라엘이 정성껏 준비한 제사를 받지도 않으셨단 말인가?

그것은 그 제사가 잘못된 제사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제사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민족 지도자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음행을 저질렀다.

그것을 본받아 온 이스라엘이 영적 음란을 행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정조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바알을 함께 높였다.

하나님을 찬양한 입술로 바알도 찬양하였다.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바알의 방법으로 제사를 올렸다.

그러면서 때마침 누리게 된 나라의 전성기, 부와 권력이 이스라엘의 잘못된 제사를 더욱 부추기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교만하였고, 자신들의 잘못된 제사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정작 하나님을 조금씩 잊어버리게 되었고, 결국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화려했지만 잘못되었던 제사가, 이스라엘이 누렸던 믿음과 상관없는 부국강병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쳤고,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결국 망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보인 결과에 많이 집착한다.

물론 결과는 너무나 중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결과를 성공이라고 말하는 기준이 무엇이냐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잘못된 기준으로 일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세상과 똑같은 세속의 기준으로 교회 일을 평가하고 있다.

세속의 기준으로 교회 일을 평가하면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바꿔버리기도 한다.

세속의 기준으로 잘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일이라고 주장한다.

 

불법을 저지르고 세상으로부터 지탄받아도 큰 건물 멋있게 지은 결과를 얻었으니, 하나님께서 다 하신 일이라고 손뼉 치며 좋아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 많이 모으고, 헌금 많이 걷어서 재정 확보하고, 큰 건물 지어서 큰 교회 소리 들으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되어 버린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눈앞에 명예와 권력, 돈밖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고 뭐고 상관하지 않고 세속의 성공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여러분은 신앙인으로서 성공 여부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안타깝게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여로보암 2세 시대의 이스라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세속의 옷을 벗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세속의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소위 부흥한 교회의 목회자, 많은 사람이 모인 교회의 목회자를 하나님께서 쓰시는 성공한 목회자라고 자기들이 확정해 버린다.

세상 적으로 성공한 성도를 향해 믿음이 깊은 성도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말은 별개의 것이라는 말이다.

믿음의 사람인 우리의 성공, 그 성공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의 잘함과 못함의 기준이어야 한다.

 

큰 예배당이 건물로써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서 좋은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그 예배당의 크기와 상관없이 건축의 시작과 과정, 마지막 어떠했느냐를 보아야 한다.

그 시작은 하나님의 뜻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있었는지.

무엇보다 그 마지막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는지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마음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라고 떠든다고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실한 믿음을 허락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참된 지혜를 허락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진실한 믿음과 참된 지혜로 세속의 옷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참된 믿음의 성공을 분별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눈에 보이는 세속의 성공에 현혹되지 않고, 실제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인지를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결국 우리가, 사람이교회와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기준에서 성공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변함없이 영광되시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되었던 질문을 하며 설교를 마치려고 한다.

큰 예배당이 진짜 하나님의 영광인 것인가?

큰 예배당은 무조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인가?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실 것을 믿고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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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전 찬양 - 내가 무엇을 가지고 (원곡 : 조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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