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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28 고멜을 사랑한 호세아(호세아)

심판하시는 이유.(호세아 5:8-15)

by TwoTalents 2023. 11. 21.

 
제목 : 심판하시는 이유.
 
본문 : 호세아 5:8~15
8. ○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9. 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폐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반드시 있을 일을 보였노라
10. 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같이 부으리라
11.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도다
12.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13.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 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14.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15.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말씀 :
지난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경고하셨다.
그러면서 전쟁을 암시하시는 말씀을 하셨다.
오늘 본문에서는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 사이에 일어날 전쟁에 대해 말씀하신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문의 배경을 주전 733년에 있었던 시리아 에브라임의 전쟁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아람과 동맹을 맺고 팽창하던 앗수르에 대항하였다.
그때 남유다에게도 동맹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남유다가 이를 거절한다.
그래서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남유다를 먼저 침공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남유다는 앗수르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그러니깐 북이스라엘도 남유다도 위기가 닥쳤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닥친 위기를 이웃 나라와의 동맹으로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물론 국가 외교 차원에서 동맹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하나님께 질문하고 응답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 모습이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주전 733년에 있었던 전쟁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전쟁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임은 분명하다.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경계 지역에서 전쟁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본문 8절.
 
“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접경 지역에서 나팔을 불었다는 것은 두 나라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있을 것을 의미한다.
오늘 본문이 대체로 해석이 까다로운데 8절의 해석도 애매하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베냐민 지역이 침략받았다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베냐민을 선두로 침략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서두에 말 한대로 오늘 본문의 배경을 주전 733년에 있었던 시리아 에브라임의 전쟁으로 본다면 베냐민 지역이 침략받는 것을 맞을 것이다.
 
어쨌든 앞서 말 한대로 전쟁은 하나님의 징계임은 분명하다.
본문 9절.
 
“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폐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반드시 있을 일을 보였노라”
 
이 전쟁으로 인해 에브라임은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란 있을 수 없다.
전쟁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고통을 준다.
그렇기에 전쟁의 승패와는 상관없이 북이스라엘은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징계는 북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유다 역시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다.
남유다의 상황도 북이스라엘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진노가 남유다에 임하게 되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문 10절.
 
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본문의 ‘경계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족들에게 주신 기업을 표시한 것이다.
이것은 모든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스라엘 각 지파, 각 가족에게 기업을 주신이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이 경계표를 반드시 지켜야 했다.
신명기 19장 14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
 
신명기 27장 17절.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그런데 유다의 지도자라는 작자들이 이 말씀을 어겼다.
이것은 탐욕과 욕심에 의한 것이다.
탐욕으로 하나님을 무시하였고, 욕심으로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자신들의 배를 채우려고 한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향해 진노를 물 같이 부으시겠다고 경고하신다.
 
이어서 북이스라엘이 징계받는 이유도 말씀하신다.
본문 11절.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도다”
 
본문의 ‘사람의 명령’은 번역본에 따라 조금 다르게 번역되어 있다.
대체로 ‘우상’이나 ‘헛된 것’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어느 것이든 에브라임, 즉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따랐고, 그것을 좋아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학대를 당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탐욕과 욕심으로 가득한 남유다와 하나님이 아닌 헛된 우상을 따랐던 북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문 12절.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북이스라엘은 우상을 통해, 남 유다는 탐욕과 욕심으로 자신들의 원함을 얻고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헛된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트리실 것이다.
잠시 잠깐 가시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상과 탐욕으로 얻게 된 것은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
좀 먹은 것 같이, 썩어지는 것 같이 아무리 자신이 지키려고 해도 결국은 사라지고 없어질 뿐이다.
 
이처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가장 큰 죄악은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권력을 의지하려 하였다.
본문 13절.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본문의 ‘야렙 왕’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싸움의 왕’이 된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보다는 당시 앗수르 왕의 별칭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는 듯하다.
(Ex - 애굽의 바로, 블레셋의 아비멜렉)
어쨌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 자신들의 위기를 깨닫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아닌, 세계의 강대국을 선택하는 어처구니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눈에 보이는 그들의 강한 힘이 자신들을 보호하고 회복시켜 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이 믿고 의지했던 세상의 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구원할 수 없었다.
결코 그들을 보호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에브라임과 유다를 벌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본문 14절.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께서 사자와 같이 에브라임과 유다를 찢어버리실 것을 선언하신다.
어떤 것도 벌하시는 하나님의 손에서 에브라임과 유다를 건져낼 수 없다.
하나님은 도우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도우시는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기에 심판의 하나님이 되셨다.
 
에브라임과 유다의 실패와 패망은 경제력이나 군사력의 약함에 있지 않았다.
그들의 실패는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도우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위기가 닥쳤는데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는 우상에게 절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강대국의 힘을 따랐고, 그것을 즐거워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무시했고,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고, 말씀을 어기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였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과 유다를 치시기를 작정하셨던 것이다.
전쟁으로 에브라임을 황폐하게 하셨고, 말씀을 어기는 유다에게 진노를 물 같이 부으셨다.
우상에게 절하면서, 강대국에게 머리 숙이면서….
그것으로 이루어 놓았다고 믿었던 모든 것을 좀과 같이 썩이는 것 같이 사라지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신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호세아에게 간음한 아내를 다시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영적으로 간음한 아내, 이스라엘을 여전히 사랑하셨다.
그들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시는 것이다.
그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의 이유를 이렇게 밝히신다.
본문 15절.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외면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 이상 이스라엘을 돕지 않으실 것이고, 그들에게 위기가 닥쳐도 보호하지 않으실 것이다.
유다는 우상에게 절하며 위기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에브라임은 앗수르와 같은 강대국에게 고개 숙이며 보호받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외면하면서까지 의지했던 우상과 세상의 힘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할 때….
하나님을 배반하며 자신들이 추구했던 것들이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의지할 것 없이, 모든 것을 잃게 되었을 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을 간절히 구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다시 구하게 되는 이유는 고난에 의해서인 것이다.
이스라엘의 고난은 하나님의 작정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에브라임과 유다를 심판하셨다.
그들을 괴롭게 하셨다.
이스라엘이 의지한 모든 것이 헛되다는 사실을 낱낱이 밝히시며 이스라엘이 깨닫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깨달은 이스라엘이 돌이키게 될 것을 기대하신다.
우상과 세상 권력의 헛됨을 알게 된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을 기대하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황폐하게 하신 이유, 좀과 썩이는 것 같게 하신 이유, 젊은 사자와 같으셨던 이유, 심판하시는 이유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저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를 하나님의 작정하심으로 믿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실패는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기다리심이라고 믿고 있다.
한국교회가 위기와 실패 속에서 지금껏 의지했던 모든 것, 하나님을 외면한 채 의지했던 그 헛된 것들이 단연코 헛된 것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믿고 있다.
이제 우리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구하여야 한다.
우리가 의지했던 우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좀과 같이 썩어지게 될 세속의 헛된 영광에 집착하지 말고….
믿는 자에게 준비된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여야 한다.
 
주께서 보이시는 위기 앞에서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더 자주 모이고, 더 많이 거두고, 더 높이 쌓으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사탄이 권세 잡은 세상에서 의로운 교회가 핍박받는 것이라고 사기 치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먼저 만지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이들이 깨닫고 물질에게서 돌이킬 수 있기를, 세속의 성공에서 돌이킬 수 있기를, 높아지고 싶은 욕망에서 돌이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한국교회의 위기와 고난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우리가 무엇을 깨닫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결국 이 고난으로 인해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수 있기를….
구하는 우리의 간절함에 주께서 응답하실 수 있기를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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