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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28 고멜을 사랑한 호세아(호세아)

다 잃게 하신 사랑 - 다 잃어봐야 정신차리지….(호세아 3:1-5)

by TwoTalents 2023. 8. 25.

제목 : 다 잃게 하신 사랑 - 다 잃어봐야 정신차리지...

 

본문 : 호세아 3:1~5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3.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말씀 :

호세아 다섯 번째 말씀.

오늘 말씀의 제목은 다 잃게 하신 사랑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부수적인 제목, 즉 부제를 달아보았다.

부제는 다 잃어봐야 정신 차리지.’이다.

원제목은 하나님의 입장을 나타내는 말이다.

부제는 사람을 향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다 잃게 하셨고, 그것이 왜 사랑인지?

그리고 사람은 뭘 잃어서 어떻게 정신을 차린다는 것인지?

오늘은 이 내용을 나누어 볼 것이다.

 

지난 호세아 네 번째 말씀에서 당근과 채찍에 관해서 얘기했다.

당근과 채찍의 목적은 같은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목적과 반대로 그들을 타이르고 달래는 목적도 같은 것이라고 나누었다.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든, 아니면 달래고 타이르시든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회복되어 남편 되시는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것이었다.

 

이제 3장으로 넘어와서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모습과 방법이 다뤄지고 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영적 간음을 저지른 이스라엘을 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고 계심을 전하신다.

본문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음란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신다.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섬겼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이 건포도 과자를 즐겼다고 말씀하신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유튜브에서 호세아 3장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래서 여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았다.

그런 중에 많은 사람들이 알만한 유명한 사람의 설교를 시청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본문 1절을 이스라엘이 하찮은 과자 하나 때문에 하나님을 배신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담과 하와를 언급하면서 그들이 하찮은 과일 하나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말하였다.

그렇게 내리는 결론이 사람은 아주 하찮은 것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하는 어리석은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해석은 참으로 표면적인, 수박 겉핥기식의 해석이다.

그냥 건포도 과자만 본 것이다.

그리고 선악과를 다른 과일과 다르지 않은 그저 과일 하나로 본 것이다.

 

본문에서는 건포도 과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건포도 과자가 어떻게 사용되었으며, 그것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건포도 과자는 우상에게 드려졌던 제물이다.

그러니깐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듯이, 이스라엘이 다른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영광을 돌리며 제사를 올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포도 과자는 감각적인 맛으로 인해 쾌락과 풍요로움을 상징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건포도 과자로 다른 신에게 제사를 올리면서, 자신들에게 풍요로우면서도 쾌락적인 삶이 주어질 것을 기대한 것이다.

단순히 과자 하나 먹자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더 풍요롭게 잘 살고 싶고, 더 쾌락적인 삶을 살고 싶은 욕심에 벌어진 일이다.

그래서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다.

역시 선악과 사건도 그냥 과일 하나 먹고 싶어서 저지른 죄가 아니다.

하와가 왜 선악과를 따 먹었는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아닌가?

뱀이 뭐라고 유혹했는가?

창세기 34, 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와는 단순히 맛있는 과일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같이 될 수 있다는 그 말에 솔깃해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다.

눈이 밝아지고 싶은 욕심, 그래서 하나님과 같게 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단순히 과자 하나 때문에, 과일 하나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한단 말인가?

버리지 못한 이스라엘의 세속적 욕심이 하나님 앞에서 영적 매춘 행위를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이스라엘, 그러니깐 하나님을 배반하고 영적 간음을 저지른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참으로 놀라우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러한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 또 한 번 호세아의 가정을 사용하신다.

지난번에는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라고 하시더니,,,

이번에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외도한 그 여인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학자는 본문에 등장하는 음녀가 된 그 여자가 고멜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여자로 번역된 이솨에 정관사가 없다.

고멜을 지칭하는 표현이 없이 그냥 여자라고만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고멜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고멜이 아닌 다른 여자로 보고, 그녀를 호세아의 두 번째 여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 내용을 살펴볼 때, 본문의 여인을 고멜이 아닌 다른 여인으로 보게 되면 그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그렇기에 우리는 본문의 여인을 1장에서부터 등장했던 고멜이라고 인정하고 계속 말씀을 나눌 것이다.

 

고멜은 그렇지 않아도 음란한 여자였다.

그런데 호세아는 그런 것 문제 삼지 않고 그녀와 결혼하였다.

고멜은 호세아와 결혼하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다시 음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다른 남자의 사랑을 받고, 그 남자를 사랑한 것이다.

이 문제는 1장에서보다 더 심각한 문제이다.

 

나랑 결혼 전에 음란했던 것, 당연히 기분 좋을 수 없다.

하지만 진정 사랑한다면 없었던 일로 해줄 수 있다.

앞으로 나와 결혼해서 나만 바라보고, 나만을 사랑하면서 이제라도 정결하게 산다면 기쁨으로 그녀를 맞이할 수 있다.

그런데 결혼 후에, 자녀를 세 명이나 출산했는데.

그런 다음에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그와 음행을 저지른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도저히 용서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것은 사랑으로 용납한 나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그런 고멜을 여전히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왜 그러시는가?

당신께서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을, 사랑으로 용서하신 하나님을 기만하고 있는 그 이스라엘을,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호세아와 고멜을 통해 그렇게 나타내시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힌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런데 호세아도 대단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이 갑갑한 명령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행에 옮긴다.

본문 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다른 남자와 바람나서 집 나간 여인을 찾으러 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일정한 값을 치르기까지 한다.

그동안 고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값을 지불하지 않고는 그녀를 데리고 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호세아의 입장에서 간통한 인간들을 고발해도 시원찮을 판이다.

그런데 몸값까지 내고 데리고 와야 했던 것이다.

고멜을 데려오기 위해 치른 값을 환산해 보면 30세겔이 된다.

30세겔은 당시 종의 몸값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추측이 가능한가?

지금 고멜의 상황이 종과도 같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외간 남자하고 바람나서는 남편 버리고 도망갔는데.

어쩌면 그녀는 새로운 남자와 사랑에 빠져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녀의 처지는 종과 같이 되어버렸다.

종의 몸값인 30세겔에 사고 팔리는 처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어쨌든 호세아는 값을 치르고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온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셨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녀를 데리고 오는 것으로 사랑을 실천하였다.

그런 다음 음란한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본문 3.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고멜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쾌락을 좇았던 욕망을 멈추고 생각하고 고민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호세아 자신도 고멜에게 관계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멜은 원래 호세아의 아내였다.

그리고 지금은 돈까지 지불해서 고멜을 다시 데리고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권리 같은 것 주장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 시간 동안 자신을 지켜 정결함으로 회복하라는 것이다.

그러니깐 호세아는 진정으로 고멜의 회복을 바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고멜을 데리고 온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호세아서를 보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하나님의 선지자인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라고 하셨는지?

또다시 음행을 저지른 여인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시는지.

거룩하신 하나님의 명령이라고는 이해하기가 힘든 부분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저는 이것을 하나님의 일방적인 명령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갈등하며 고민하고 있었던 호세아에게 확신을 주시며 자신의 사랑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주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호세아는 처음부터 고멜을 사랑했는데 그녀가 음란한 여인이었기에 선지자는 갈등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멜과의 결혼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결혼 후에 다른 남자와 바람나서 집 나간 아내이지만, 자녀들을 생각한다면 엄마는 필요한 존재이다.

무엇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에게는 그녀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배반했고, 음행을 저질렀기에 다시 데려오기를 망설였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음녀가 된 그녀를 계속 사랑하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이 말씀에 호세아는 갈등을 멈추고,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고멜을 다시 데리고 왔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지 이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와 고멜의 모습을 통해 전하려고 하셨던 당신의 사랑을 말씀하신다.

본문 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고멜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음란하였다.

하지만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고, 이스라엘이 회복되기를 바라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런 하나님의 사랑마저 무참히 배신하였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겼다.

다른 신에게 건포도 과자를 제물로 바치며 경배하였다.

자신을 사랑한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사랑했던 고멜처럼.

철저하게 하나님을 기만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중에도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다.

그럴지라도 여전히 사랑하신다고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그저 사랑을 고백하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셨다.

호세아가 고멜에게 회복의 시간을 주었던 것처럼.

이스라엘이 깨닫고 회복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

그 방법이 바로 본문 4절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믿었던 모든 것, 그들이 의지했던 모든 것들을 거두어 버리셨다.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는, 나라 같지도 않은 나라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을 향한 제사를 멈춰버리셨고, 다른 신에게도 절할 수 없도록 하셨다.

에봇도 드라빔도 없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못하고, 우상의 소리도 들을 수 없게 하셨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그 어떤 보호도, 안식도, 평안도 누릴 수 없는 처지게 되게 하신 것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부분을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었던 암울한 시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라가 망하고 살던 곳에서 쫓겨나, 다른 나라의 노예 신세가 되어버린 암울한 시기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시기가 포로 기간이었든지, 아니면 다른 날들이었든지.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자신들을 지탱해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시기임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왜 이렇게까지 내몰았을까?

여전히 사랑하신다고 하시면서 왜 그들을 바닥까지 끌어내리셨을까?

왜 모든 것을 빼앗아버리셨을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그제서야, 그 지경이 되어서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본문 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자신들이 의지했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써 하나님만을 찾고, 하나님만을 의지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없게 되니깐, 붙잡을 지푸라기조차 없게 되니깐,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다.

본문에서 그들의 왕 다윗을 찾았다는 것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았다는 말이 아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왕으로 인정되는 다윗을 상징적으로 내세우면서 진정한 왕, 참된 왕을 갈망했다는 말이다.

,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통치를 구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경외하게 된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은혜에 이르게 될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제목이 다 잃게 하신 사랑이다.

이스라엘이 가진 모든 것을 잃게 하신 것이 왜 하나님의 사랑인가?

다 잃게 하셨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계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의지했던 모든 것을 잃게 하셔서 아예 엉뚱한 것을 의지할 수 없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계셔서, 하나님만이 보이셔서, 참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내 눈앞에 여러 길이 있었는데, 잘못된 모든 길을 갈아엎으신 것이다.

오직 한길, 참되신 하나님을 향한 길만을 남겨 놓으신 것이다.

그래서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도록 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잃게 하신 것은 강권적인 하나님의 사랑이다.

 

오늘 말씀의 부제가 다 잃어 봐야 정신 차리지.’이다.

많은 것을 가졌을 때는 그 모든 것에 바라보고 신경 쓴다고 정신이 없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의지한다고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당장 내 눈에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세속의 그것에 정신이 팔렸던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등한시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니깐, 더 이상 남은 것이 없으니깐, 나를 지켜주고 높여 줄 것만 같았던 재물, 권력, 인맥, 경력, 재능이라는 우상이 다 없어지니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이다.

그제서야 정신 차리고 내 앞에, 내 위에, 내 옆에,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찾고 바라보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저는 우리의 신앙이 본문의 이스라엘처럼 엉망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강권함으로 모든 것을 잃게 하실 수밖에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면.

사랑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잃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반드시 우리를 다시 찾으시길, 우리를 회복시키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다 잃게 하신 사랑으로, 다 잃어버린 우리가 정신 차릴 수 있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부족함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이 너무나 많고, 너무나 좋아서 그것을 놓지 않으려고, 하나님을 잡았던 손마저 놓아버린 것이다.

두 손 가득히 세속의 나의 것을 움켜쥐었던 것이다.

그것이 풍성해진 한국교회의 진정한 위기이다.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하시는데.

믿음의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 계속 경고하시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깨달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다른 신에게 건포도 과자를 바치는 것에 열심을 내고 있다면.

다 잃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한국교회에 임하시길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한국교회가 모든 것을 잃고 정신 차려서 다시 하나님만을 찾을 수 있기를, 하나님의 뜻만을 구할 수 있기를, 하나님의 말씀만을 들을 수 있기를, 하나님만을 신령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다 잃게 하셔도 다시 더 풍성하게 채우실 수 있는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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