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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28 고멜을 사랑한 호세아(호세아)

당근과 채찍의 목적은 같다.(호세아 2:14-23)

by TwoTalents 2023. 8. 18.

제목 : 당근과 채찍의 목적은 같다.

 

본문 : 호세아 2:14~23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말씀 :

호세아 4번째 말씀이다.

지난 본문까지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통해 이스라엘의 타락과 그들을 향한 심판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기까지 분노하셨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 이외 다른 우상을 두는 것으로 영적인 음란을 저질렀다.

그러한 그들을 향해 더 이상의 자비는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내용이 급반전된다.

이스라엘이 벌인 영적 매춘으로 인하여 도저히 가라앉지 않을 것만 같았던 하나님의 분노였다.

그런데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는,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바뀌게 된다.

오늘은 이 부분을 나누어 볼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타이르신다.

본문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앞서서 채찍을 들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스라엘을 달래시는 것이다.

본문의 타일러는 히브리어로 파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번역대로 타이르다의 뜻이 있고, ‘꾀어내다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연인을 상대로 유혹할 때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해 남편을 배신한 아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관점으로 볼 때, 아내를 다시 찾으려는 남편의 애정 어린 유혹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 관계 회복을 위해 선택하신 장소는 거친 들, 바로 광야이다.

본문의 거친 들은 같은 단어가 23절에서 광야로 번역되어 있다.

그렇기에 광야로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 광야를 자기 백성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장소로 선택하셨을까?

광야는 힘든 곳이다.

광야는 메마른 곳이고, 황무지이며, 척박한 땅이다.

하지만 광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가장 뜨겁게 함께했던 곳이다.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곳이다.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아서 긴 시간을 방황해야 했지만.

힘든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연단 받고 성장했던 곳이 바로 광야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오직 하나님 외에는 의지할 것이 전혀 없었던 곳.

오직 주님만이 이스라엘의 도움이 되셨던 곳.

오직 주님만이 길 잃은 자들에게 빛을 비춰주셨던 곳.

오직 주님만이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던 곳.

바로 그곳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이스라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싶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곳 광야에서 다시 회복될 이스라엘을 약속하신다.

본문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희망을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고통이 소망으로 바뀌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골 골짜기는 이스라엘의 실패를 의미한다.

여호수아 당시 아간이 욕심으로 범죄하였고, 그것으로 이스라엘은 아이성전투에서 패배하고 만다.

패전의 원인이었던 아간은 돌에 맞아 죽게 되었고, 그 돌무더기가 있는 곳을 아골 골짜기라고 불렀다.

더 자세한 내용은 여호수아 7장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어쨌든 그렇게 개인과 민족의 실패를 상징하는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을 실패와 죽음에서 성공과 생명으로 회복시키실 것을 전하시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마치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질 것을 전하신다.

그리고 이곳은 곧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회복됨을 의미한다.

본문 16,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본문은 언어 유희적인 표현이다.

바알은 주인이란 의미가 있다.

그러니깐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나의 남편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고, 더 이상 나의 주인이라고 부르지 않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내 바알, 즉 나의 주라고 부르지 않고 내 남편으로 부르는 것으로 바알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게 하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부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억에서조차 사라지게 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쨌든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바알을 동일시했었던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풍요의 신인 바알에게 풍요를 구했던 것처럼, 하나님께도 풍요를 구했었다.

하지만 회복된 이스라엘은 바알에게 풍요를 구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풍요를 구하는 일도 없게 될 것이다.

바알에게 구하지 않을 것이며, 바알에게 구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스라엘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본문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이스라엘을 자연으로부터 안전하게 할 것이며, 다른 나라, 즉 인간과의 전쟁도 사라지게 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주권자이시고, 모든 나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회복은 영적 간음으로 어긋났던 영적 혼인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 19, 20.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아내인 이스라엘의 음란했던 과거는 씻어내어지고 청산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남편과 아내의 관계, 혼인 관계가 시작될 것이다.

음란과 부정, 간음과 배신이 아닌 공의와 정의, 은총과 긍휼로 진실한 관계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때, 이스라엘은 진정으로 남편 되시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될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이루어질 풍요로움을 말씀하신다.

본문 21, 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앞서서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로 인해 자연과 나라와 사람과의 관계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회복 자체가 온 땅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회복된 관계는 모든 땅을 풍요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실지라도 완전하게 버리지는 않으신다.

오히려 버리셨던 이스라엘을 향한 회복의 메시지를 선포하신다.

본문 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1장 말미에서 회복을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랑하는 아내 이스라엘의 회복을 다시 한번 선언하시는 것이다.

로루하마에서 루하마로암미에서 암미.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며, 당신의 백성 아니라던 말씀을 거두시고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 백성이라고 이르시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회복시키신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며 감사와 다짐의 고백을 하여야 한다.

더 이상 바알들에게 눈을 돌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선포하고, 다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러시는 것일까?

그러니깐 영적 간음을 저지른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말씀하셨다가 다시 말을 바꾸어 회복을 말씀하시느냐 말이다.

우리는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고백한다.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고백한다.

그런데 호세아에서는 심판을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어서 관계가 회복될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다시는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실 것처럼, 자기 백성이 아니라고까지 말씀하셨는데.

어느새 긍휼을 말씀하시고, 여전히 당신의 백성이라고 전하신다.

왜 이러시는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는 달리 사실은 변덕스러운 분이 신가?

자신의 기분에 따라 말 안 들으면 이렇게 말씀하시고, 말 잘 들으면 다르게 말씀하시는 그런 하나님이신가?

 

오늘 말씀의 제목이 당근과 채찍의 목적은 같다이다.

당근과 채찍은 말에게 상으로 먹이는 당근과 엄격한 체벌, 즉 채찍질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하는 관용어이다.

1800년대부터 영국에서 유래한 관용어라고 하는데.

달리는 말이든 짐을 싣고 나르는 말이든, 그 용도에 맞게 잘 활용될 수 있도록 당근도 먹이고 채찍을 가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깐 경주마가 잘 달릴 수 있도록 상황에 따라 당근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채찍을 가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는 짐을 나르는 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결국 당근과 채찍의 원래적인 목적은 같은 것이 된다.

 

사람과 동물을 대상으로 똑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근과 채찍이 주어지는 목적성을 이해함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목적을 깨닫는 것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 역시 같은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호세아 2번째 말씀을 나누면서 심판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의 심판은 결국 깨달음과 회개, 그리고 회복에 있다는 사실을 나누었다.

떠났던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와서 다시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회복의 말씀을 주시는 것의 목적도 이와 같다는 말이다.

심판을 통해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다시 함께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회복의 말씀을 통해 깨닫고 변화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심판을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을 말씀하시는 것은 변덕스러운 하나님의 본성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을 이루기 위해 심판과 회복, 즉 당근과 채찍이라는 방법을 모두 사용하시는 것이다.

결국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스라엘을 변화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진정으로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이다.

당근 받은 것 자체에 너무 들떠 있다든지, 채찍 때문에 좌절만 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나에게 주어진 당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내가 받은 채찍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묵상하고, 찾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당근과 같은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있고, 채찍과 같은 불행이 닥칠 때도 있다.

그때마다 일희일비하며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당근과 채찍 자체에만 매몰되어 하나님의 뜻을 놓치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마치 이전에 당근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채찍으로 때렸다고 해서 나를 향한 마음이 변하셨다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신실하신 하나님, 변함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근과 채찍으로 한결같은 뜻을 전하고 계신다.

그것은 남편 되신 하나님과 언제 어느 때라도 함께하는 것이다.

즐거울 때도, 슬플 때도, 당근이 넘치는 풍성함 속에서, 채찍과 같은 괴로움이 연속되는 날들 속에서도.

늘 언제나 한결같은 주님과 함께하기 위해 나 역시 한결같은 모습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참된 깨달음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힘쓰고, 신령과 진정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는 우리이길,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이길.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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