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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28 고멜을 사랑한 호세아(호세아)

내 백성이 아니다.(호세아 1:1-9)

by TwoTalents 2023. 7. 19.

제목 : 내 백성이 아니다.

 

본문 : 호세아 1:1~9

1.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 씀이라

2.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 니라

7.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말씀 :

호세아는 12 소선지서의 첫 번째 책이다.

호세아의 주제는 다른 선지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것을 풀어가는 방법은 아주 특이하다.

호세아의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직접적인 도구로 사용된다.

그런데 원래 있던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유추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상황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학자에 따라 호세아의 상황이 실제 상황이다’, 혹은 아니다라는 엇갈린 주장은 있다.

우리는 기록된 텍스트를 통해 실제 상황이라는 전제로 말씀을 나눌 것이다.

 

호세아의 전체적인 메시지는 여호와를 떠나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심판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호세아는 이렇게 시작된다.

본문 1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소선지서의 선지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호세아도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이다.

그런데 특이하게 남유다의 왕들을 더 많이, 더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왜 그런지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는데, 그것을 지금 나누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호세아서가 남유다에도 어떤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해 보인다.

 

어쨌든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의 시대 때,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활동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때를 B.C 753년 경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조선 중기 때쯤이다.

 

아모스, 이사야, 미가, 요나 등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것으로 본다.

여로보암 2세 때의 북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는 안정적인 시대였다.

일단 그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랬다.

하지만 종교적으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여호와의 말씀이 호세아에게 임하게 된다.

본문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사람인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그녀와 함께 음란한 자녀까지 낳으라고 하신다.

이 말씀이 이해되시는가?

주님의 이 말씀은 선 듯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다.

그것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본성, 음란함을 싫어하시는 하나님의 본성을 생각할 때,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사람에게, 당신의 사역자에게 일부러 음란한 여인과 결혼을 하라니...

이것은 분명히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잠시 언급한 대로 이 부분을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하거나, 호세아에게 주어진 꿈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선지자와 음란한 여인의 결혼을 통해 하나님께서 드러내려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음란함이었다.

북이스라엘이 이렇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음란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음란함은 여호와를 떠난 것에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 끊임없이 이방 민족의 신을 동경하였다.

이방 민족의 발전된 문화와 군사적 힘이 그들의 신에 의한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앞에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늘 한쪽으로는 이방신을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향해 음란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본문의 음란은 자눈이라는 히브리어로 간통을 나타내는 말이다.

간통이 뭔가?

자신의 남편이 있는데, 아내가 있는데 다른 남편, 다른 아내와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까지 한 배우자를 배신하는 행위이다.

지금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그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과 백성의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다른 신, 이방 신을 향해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말씀하시려고 호세아에게 특이한 결혼을 명령하신 것이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낳게 된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 당신의 뜻을 전하신다.

본문 3~5.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첫 번째 자녀는 아들이다.

그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이스르엘이라고 지어주셨다.

 

이스르엘은 북이스라엘 동부에 위치한 도시의 이름이다.

그런데 이곳은 이스라엘의 잔혹성이 드러났었던 도시였다.

예후가 이스르엘에서 반란을 일으켜 왕을 죽이고 자신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나봇의 포도원을 불법으로 빼앗았던 일도 이스르엘에서 일어났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르엘에서 일어났던 피가 당시 북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던 예후의 왕가에도 임하게 하실 것을 경고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라는 표현은 북이스라엘의 군사력이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앞서 밝힌대로 호세아가 활동했던 여로보암 2세 때는 북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 안정되었고, 군사적으로도 막강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막강한 정치력과 군사력을 믿고 의지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고, 그것은 종교적인 타락을 초래하였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믿고 있는 군사력을 꺾어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실제로 여로보암 2세 이후 북이스라엘의 국력은 쇠약해졌고, 다음 왕인 스가랴 이후로 예후 왕조는 단절되게 된다.

 

이렇게 호세아의 아들의 이름을 통해 예후 왕가를 향한 심판을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그의 딸의 이름으로 당신의 뜻을 전하신다.

본문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지어주신다.

 

로루하마긍휼이 없다’, ‘은혜가 없다라는 뜻을 가진다.

하나님께서도 본문을 통해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북이스라엘을 향한 긍휼, 은혜, 용서가 더 이상은 없다는 말씀이다.

이제까지 이스라엘이 잘못을 저지르면,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셨다.

그리고 징계 후에 선지자를 보내어 징계의 이유를 알게 하셨다.

그때 선지자의 선포를 들은 이스라엘은 회개하였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이 이루어졌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 없는 반복을 하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배교, 즉 영적 간음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에 반해 남유다에 대해서는 다른 말씀을 하신다.

본문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남유다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을 전하신다.

하지만 그 구원은 이스라엘 민족이 의지하고 있는 활이나 칼과 같은 무력적 힘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주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좀 뜬금없다.

한창 북이스라엘의 음란과 징계에 대해 전해지는 과정에서 갑자기 나타난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편애는 아주 부자연스럽다.

본문 1절에서도 북이스라엘보다 남유다의 왕들을 더 자세하게 기록한 것에 대한 나름에 해석이 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이 부분도 여러 해석이 있다.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원래 한민족이라는 것이다.

서로 반목하고 왕도 다르고, 전쟁도 치르지만 원래 같은 민족이다.

이들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야곱의 아들들이 시조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함께 나온 가족이다.

저는 북이스라엘을 향한 분노를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여전히 긍휼히 여기시는 모습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암시하고 계시는 것으로 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호세아서를 계속 나누면서 다시 한번 언급하도록 하겠다.

 

어쨌든 더 이상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할 북이스라엘과 여전히 긍휼함 속에 있을 남유다를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호세아의 셋째 자녀의 이름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전하신다.

본문 8, 9.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셋째의 이름을 로암미라고 지어주신다.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첫째를 통해 이스라엘의 죄악을 상기시켰던 하나님께서 둘째를 통해 죄악된 그들에게 더 이상의 긍휼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셋째를 통해 아예 이스라엘이 당신의 백성이 아니라고 선언을 하시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가 확실하게 깨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이제는 남남이라는 말이다.

거기다가 앞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실 생각도 없으시다고 못을 박아버리셨다.

 

호세아의 결혼과 고멜의 출산이라는 특이한 방법으로 하나님께는 당신의 뜻을 전하셨다.

그런데 그 메시지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바알을 받아들였다.

여호와 하나님을 이방신과 함께 섬긴다는 것은 명백한 영적 간음이고 음란이라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호세아가 활동했던 여로보암 2세의 시대는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안정적인 시대였다.

북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또 한 번의 전성기였다.

그런데 그런 안정적인 시기에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 엉망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오늘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왔다는 것..

범죄하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고 용서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지만, 지금 내가 하나님을 바로 믿고 있지 않다면, 그 모든 것이 그저 헛된 일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야곱의 자손이면 뭐 하는가?

하나님이 아닌 바알에게 머리를 숙인다면 그는 영적으로 음탕한 자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 아니라고 외면하실 뿐이다.

 

우리는 북이스라엘이 이렇게까지 영적으로 망가진 시기가 어떤 시기였는지에 대해서도 기억해야 한다.

몸과 마음이 평안한 시대였다.

특별한 어려움 없이 마음에 여유가 있었던 시대였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 여유로움을 엉뚱한 것에 쏟은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보이고 눈을 돌린 것이다.

이러한 북이스라엘의 모습이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안정적이고, 부족함이 적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영적으로도 그런가?

그 어느 시대보다 쉽게 성경을 소유할 수 있고,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설교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말씀에 목말라하고 있다.

없어서 부족한 것이 아니라, 차고 넘쳐도 나를 채울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

이미 우리의 눈은,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가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가장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오늘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가 어리석은 우리를 깨닫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보다 우선이 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기억하는 우리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커다란 건물, 넓은 예배당, 수 많은 사람들, 넘치는 재정, 성공했다고 칭송하는 세속의 칭찬...

이런 것에 속지 않는 우리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의 긍휼을 기억하며, 오직 주님만이 내 마음 최고의 자리에 계시는 우리이길,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이길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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