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치는 자의 소리/59 행동하는 믿음-야고보서(I)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야고보서 1:9-11)

by TwoTalents 2023. 8. 6.

 

제목 :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본문 : 야고보서 1:9~11

9.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말씀 :

오늘은 야고보서 3번째 시간이다.

야고보서 19~11절을 본문으로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믿는 자들이 마땅히 자랑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구원받음을 자랑하여야 한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를 위해 준비된 천국을 자랑해야 한다.

이러한 것이 바로 복음이다.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하고 자랑하여야 한다.

이것은 믿음 안에서 우리에게 명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교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또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형제, 자매이지만, 또한 세상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다.

같은 하나님을 믿으며, 같은 소망을 품고 있지만.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의 상황과 자신의 여건에 따라 세상에서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삶을 살고 있다.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 안에도 부자가 있고, 가난한 자가 있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자가 있고, 그렇지 못한 자가 있다.

이렇게 믿음의 사람들도 세상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럼에도 동일한 말씀으로, 동일한 자랑을 말하고 있다.

오늘은 믿음의 사람이 자신의 환경, 조건, 여건, 상황과 상관없이 한결같이 자랑해야 하는 것에 대해 전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자랑하는가?

어떤 것을 드러내 놓고 뽐내고 싶어 하는가?

비교 우위에 있는 것, 내가 남들보다 나은 것, 좋은 것, 뛰어난 것을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돈 많은 부자라면 자신의 부를 자랑할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라면 그 권력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나 이런 사람인데하면서 자랑질을 할 것이다.

공부를 잘하면 자신의 똑똑함을 자랑할 것이고, 운동을 잘하면 뛰어난 재능을 과시할 것이다.

이렇게 자신에게 있는 남다름을 직간접적으로, 여러 모양, 다양한 방법으로 자랑할 것이다.

겸손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겸손은 타인을 존중하면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지, 자신의 남다름을 완전히 감추고 자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

믿는 자는 무엇을 어떻게 자랑해야 하는가?

본문을 통해 야고보 장로는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본문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먼저 야고보는 낮은 형제에게 자신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말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낮은 형제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

본문의 낮은은 헬라어로 타페이노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권력이 없는’, ‘물질적으로 궁핍한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깐 낮은 형제들은 곧 가난한 형제들이다.

당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이런 상태였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셨을 때도 가난한 자, 병든 자, 죄인 된 자들과 함께하셨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낮은 자들, 가난한 자들이 복음에 향한 간절함으로 변화 받아 교회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가족에게도 외면당하는 일이 흔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자 중에서도 가난하고, 비참한 자 중에서도 비참한, 낮은 자중에서도 낮은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향해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시 세속의 기준에서 볼 때도, 가장 낮은 자이며, 가장 가난한 자라고 할 수 있는 그들에게 높음을 자랑하라는 것이다.

앞으로 높아질 것을 자랑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미 높아진 것을 자랑하라는 말이다.

 

분명히 낮은 형제인데, 이미 높은 자라는 말이다.

이것은 세상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높음이다.

세상 기준에서 낮은 형제들인데,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이미 높은 형제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그의 아들을 믿으며, 구원받아 천국을 소유한 그들은 이미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높은 자가 되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시험과 고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시험 속에서 온전히 기뻐하며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낸다면.

그 인내가 믿음으로 인정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높은 자가 되는 것이다.

세속의 기준에서 내가 낮은 자라고 해서 부끄러워할 것 없고, 주눅들 필요도 없다.

세상의 창조주가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

내 아버지의 기준은 세속의 그것과는 다르다.

낮은 나를 믿음 안에서 높이신 주님을 자랑하고 찬양한다.

 

또한, 야고보는 이렇게 말한다.

본문 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본문의 부한 자를 불신자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주장은 낮은 형제와는 다르게 형제라고 표현하지 않고, 그저 부한 자라고 말한 것에 근거를 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한 자를 불신자로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

일단 야고보서의 수신자를 신자와 불신자 모두로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전체 내용상, 이 편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졌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유대인 신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자들이었지만, 이방인 성도 중에서는 부유한 자들이 있었다.

야고보는 신자와 불신자를 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 한대로 같은 그리스도인이지만 다른 상황, 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상황 중에서 자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 중의 부한 자에게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말한다.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부한 자는 높은 자에 가깝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어떤 이유로 인해 낮아지게 될 것이다.

그 낮아짐을 자랑하라는 말이다.

부유한 자라 할지라도 믿음으로 인한 핍박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원래 가졌던 사회적 지위와는 상관없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낮은 자와 동일한 고난을 감당하여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야고보는 이렇게 부자이면서도 믿음 때문에 낮은 자와 동일하게 되는 것을 자랑하라고 말하고 있다.

왜인가?

그것은 앞서 말 한대로 세상 기준으로 낮은 자들이지만, 그들이 환난 중에 기뻐하며 인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 인내가 믿음으로 인정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높은 자가 되기 때문이다.

부한 자들은 세상 기준에서 높은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예수를 향한 믿음 때문에 세상 기준에서 낮은 자처럼 되었다.

그런데 믿음 때문에 낮은 자가 되어버린 이들이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진정으로 높은 자인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낮아지는 것을 자랑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상 기준에서 인정하는 부와 높음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풀의 꽃이 영원하지 않듯이 사람이 아무리 부자이고, 아무리 높은 권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이 땅에서만 해당될 뿐이다.

30, 40, 아니 50, 그렇게 부와 권력, 명예를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아무리 긴 시간이라 할지라도, 영원이라는 시간 앞에서는 그저 하룻밤에 피었다 지는 풀의 꽃과 다를 바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부와 권력이 주는 안전감에 속고 있다.

마치 영원히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것으로 착각에 빠져 있다.

하지만 부와 권력은 이 땅에서의 안전밖에 지켜주지 못한다.

그나마 그것마저도 완벽하게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결코, 부와 높음이 그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야고보는 이렇게 말한다.

본문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야고보는 이사야 407절 말씀을 인용하며, 중동지역의 자연 현상을 바탕으로 부하기만 한 자들의 쇠잔함을 설명한다.

중동지역은 일교차가 크다.

그래서 시원한 밤에는 여러 가지 꽃들이 피게 된다.

하지만 낮이 되면 뜨거운 열기로 인해 꽃은 말라 시들어 버린다.

부한 자들의 쇠잔함이 이와 같다는 말이다.

하룻밤 피었다 시드는 꽃처럼 부자의 쇠잔함은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해가 뜨면 당연히 뜨거움에 꽃이 시들듯이, 부자의 쇠잔함은 피할 수 없이 정해진 일이다.

이는 세상에서의 모든 부자가 다 이렇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그저 부자이기만 한 자들을 향한 말이다.

 

결국 야고보 장로가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미 말씀의 서두에 밝혔듯이 믿는 자의 자랑은 하나님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여건과 환경의 따라 자랑거리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낮은 자나 높은 자나, 가난한 자나 부한 자나.

오직 우리의 자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으로 인한 우리의 자녀 됨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야고보 장로는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믿는 자들에게 낮아도, 높아도, 가난해도, 부해도 오직 주님께서 높이신 것, 주님께서 낮추신 것을 자랑하라고 강조하는 것인가?

그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뜬금없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앞부분과 연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상 야고보서 11~11절까지는 한 단락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의 내용과 함께 연계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야고보서 11~11절까지를 정리해 보면.

야고보는 시험을 당할 때 기뻐하라고 말하였다.

기뻐함으로 인내를 이루라는 것이다.

혹시 시험 중에 기뻐할 수 없다면, 하나님께 시험을 이기고 기뻐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시험의 이유에 대해서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오늘 본문에서는 두 마음으로 인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의 흔들림, 그들의 유혹당함을 전제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야고보 당신 그리스도인들의 시험은 물질적인 부에 관한 것이었다.

낮고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이 높고 부자인 믿음의 형제들을 보면서 부러워했던 것이다.

세상의 높은 자들, 세상의 부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높음과 부를 동경했던 것이다.

그들의 자랑을 들으면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말씀의 제목처럼 세속을 부러워하다가 믿음이 지고 만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가장 좋은 것을 가졌음에도, 높음이나 재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랑거리가 있음에도.

그것을 제대로 자랑하지도 못하고, 위축되어 바보처럼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뒤에 감추고 맘몬을 향해 부러움의 눈을 돌렸던 것이다.

그렇기에 가장 소중한 것을 간직하고 있는 자신을 기억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낮은 자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을 자랑하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부한 자들, 부자인 형제들에게고 전한다.

만약 그들이 은연중에라도 부를 자랑한다면, 그들은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를 것이 없음을 경고한다.

부자임을 자랑한다는 것은 가난한 형제들을 실족하게 하는 죄악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942.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또한 물질을 자랑한다는 것은 돈을 하나님만큼이나, 아니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신다.

마태복음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물질에 마음이 가 있으니깐 그것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야고보는 오늘 피었다지는 들의 꽃과 같은 부유함의 허망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과감하게 낮아지고, 가난해질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믿음을 자랑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본문에 나타나는 야고보 장로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적어도 한국교회는 여전히 부와 명예를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자랑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부러워하며 그렇게 되겠다고 허망한 노력을 하는 이들도 너무나 많다.

 

개인적으로 간증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간증은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어떻게 믿음으로 구원받게 되었는지를 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의 간증은 그것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셨다가 주된 내용이다.

나의 사업이 성공하게 해주셨다.

내 아들이 좋은 대학 합격하게 해 주셨다.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게 해 주셨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 훌륭한 결혼식을 하게 해 주셨다.

이런 걸 간증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여 집사님의 아들이 서울 대학을 나왔다.

그래서 아들의 수준에 맞는 며느리를 얻고 싶으셨단다.

그래서 며느리가 연고대나 이화여대 출신이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간증을 들은 적도 있다.

이것이 간증인가?

이것은 간증이 아니다.

이것을 우리는 전문용어로 자기 자랑이라고 말한다.

예배 시간에 이런 소리가 간증이라고 발표된다면 심각한 신앙의 왜곡이 생기게 된다.

사업에 실패한 형제, 대학에 떨어진 자매, 시험을 망친 학생, 배우자를 못 만났거나 잘못 만난 사람들은 저주받은 사람들인가?

이들의 믿음은 다 엉망진창이라서 그런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혹시나 이런 자기 자랑을 듣더라도 시험 들지 말고, 흔들리지 마시기 바란다.

부러워하지 말자.

부러워할 것이 전혀 없는데, 부럽다고 잘못 생각하게 미혹하는 것이다.

그 부러움은 믿음의 사람을 지게 만드는 못된 생각이다.

아무리 믿음이라고, 간증이라고 주장해도 자기 자랑하면서 형제, 자매들을 실족게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주님께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더 낫겠다고 책망이나 받을 사람일 뿐이다.

오히려 진짜 자랑거리가 뭔지도 모르는 불쌍한 사람이다.

안타깝게,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봐 주어야 한다.

세속의 조건에서 나보다 부자인 사람, 나보다 권력이 큰 사람, 유명한 사람.

이런 사람들 쳐다보면서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란다.

풀의 꽃과 같이 금방 지나갈 것들이다.

 

교회 속에서 부자인 형제, 자매들은 결코 자신의 부를 자랑하지 말기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는 척 사람들을 속이지 말기 바란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이 말씀을 기억하며 오직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자랑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오늘 야고보를 통해 주어진 말씀은 야고보 당시 어느새 슬그머니 교회에 침투하여 물질을 동경하게 만든 세속의 가치관, 그 가치관 때문에 두 마음을 품었던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들을 향하여 낮은 자를 높이시고, 높은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을 자랑하라고 가르친다.

이 말씀은 이미 세속의 가치에 찌들어서 도저히 물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아 보이는 오늘날의 한국교회.

이 안타까운 한국교회에도 분명하게 주어져야 하는 말씀이다.

낮은 자는 높은 자를 부러움의 눈으로 쳐다보지 마시기 바란다.

높은 자는 자신의 높음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포장하면서 자랑하지 말기 바란다.

오직 우리의 자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임을 기억하자.

각자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환경, 조건, 여건, 상황과 상관없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자랑해야 함을 잊지 말자.

언제라도 어느 때라도 오직 주님을 자랑하는 우리이길.

허망한 부를 동경하는 마음, 헛된 자랑으로 가득한 입술을 멈추고.

오직 하나님만을, 그 사랑만을, 그 구원의 은혜만을 자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

 

💒'사람이교회'는 온라인교회입니다.

'사람이교회'와 함께하기 원하시는 분은 아래 메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saramichurch@naver.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