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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권력자 앞에서...(사도행전 26:24-32)

by TwoTalents 2023. 7. 16.

제목 : 권력자 앞에서...

 

본문 : 

24.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 다

26.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 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30.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 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말씀 :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고소당했던 바울은 로마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것으로 재판이 일단락되었다.

이제 당시 유다의 총독이었던 베스도가 바울의 죄목을 밝힌 보고서와 함께 바울을 로마로 이송하여야 했다.

그런데 베스도에게 곤란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딱히 바울의 죄목으로 특정 지을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로마법에 저촉되는 것이 없었고,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종교적인 부분에서도 큰 문제점을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베스도는 당시 팔레스타인 북부의 왕이었던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 바울의 고소 건에 관해 설명하고 자문을 구하게 된다.

아그립바는 당시 유일한 유다의 왕이면서 유대인의 풍속과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의 승인으로 성전과 관련된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베스도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아그립바가 바른 조언을 해줄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총독 베스도가 주관하는 자리에서 바울은 팔레스타인 북부 지역의 왕, 아그립바와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아그립바를 포함한 접견장의 모든 사람에게 스스로를 변명하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의 변명, 바울의 복음 전파가 끝나고 난 후에, 그것을 들은 총독 베스도와 팔레스타인 북부 지역의 왕 아그립바의 반응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먼저 베스도는 바울의 말을 듣고 이렇게 반응한다.

본문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베스도는 바울을 향해 미쳤다고 크게 소리쳤다.

베스도 입장에서는 바울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베스도의 이런 반응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유대교를 모른다면 이것은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인들도 바울이 전한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았지 않은가?

말씀을 맡았다는 유대인들이 부활의 복음을 전한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다.

죽이려고 모함하고 날조까지 했었다.

하물며 하나님도 모르고, 말씀도 모르는 이방인에게는 바울의 말이 미친 소리로 들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베스도가 격한 반응을 보이지만 바울은 침착하게 베스도의 반응에 다시 응대한다.

본문 25~27.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먼저 바울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힌다.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전한 것의 진실 여부를 아그립바에게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다.

아그립바가 바울의 개인적인 회심 사건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모를 수가 없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아무도 모르는 동네 구석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비록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라는 촌 동네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스라엘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죽으시고 부활하신, 빛과 같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성전과 관련된 모든 권한과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 유대 종교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아그립바가, 한 때 큰 이슈가 되었던 예수님과 관련된 일들을 모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아그립바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예수의 사역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을 모를 수가 없다는 말이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며 대답을 요구하자 이제 아그립바가 반응한다.

본문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아그립바의 이런 반응이 긍정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부정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오늘은 부정적인 것으로 볼 것이다.

그러니깐 아그립바는 바울의 말을 듣고 황당해하면서 기분이 나빴다는 말이다.

바울에게 자신을 변호하라고 불러놨더니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거기다가 아그립바를 향해 예수의 일도 알고, 예수를 믿는 자들이 모여 교회가 된 것도 당연히 알고 있다고 말한다.

아그립바가 듣기에는 지금 바울이 자신을 가스라이팅하려는 것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니깐 아그립바의 판단력을 흐리게 해서 바울이 원하는 대답을 얻게 하려고 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변호를 빙자하여서 아그립바를 전도하려는 수작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아그립바의 느낌이 어느 정도 맞는 것이었다.

가스라이팅은 아니더라도 바울이 작정하고 복음을 전한 것은 분명했다.

본문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바울은 아그립바의 지적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전도하려는 것이 맞는 말이다.

바울은 말이 많든 적든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그립바 뿐만 아니라 지금 접견장에서 바울의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있다.

모두가 예수님을 믿게 되기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지금 자신이 모함받아 죄수로 결박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의 처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을 소망하며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된 자신처럼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바울의 변명, 바울의 복음 전파에 총독 베스도는 바울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그립바 왕은 자신을 조종하며 전도하려는 것에 기분이 나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의 발언은 끝이 났고, 이제 사람들은 모여서 회의를 한다.

본문 30, 31.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베스도는 암만 생각해 봐도 바울이 공부를 너무 많이 하다가 미친 것 같다.

아그립바는 변명할 기회를 주었는데, 변명은 하지 자신을 가르치듯 말하면서 예수를 전하며 전도하려고 했던 바울이 건방져 보이면서 기분이 나쁜 상태다.

이런 상태라면 바울에게 불리한 쪽으로 결과가 나올법하다.

그런데 의외로 왕과 총독이 내린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바울이 미쳤던, 안 미쳤던 그것과는 상관없이.

일단 바울이 법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바울을 향해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었다고 결론 짓는다.

유대의 종교와 풍속을 잘 안다는 아그립바조차 전임 총독 벨릭스나 신임 총독 베스도와 마찬가지로 바울에게 적용할 죄를 찾지 못한 것이다.

? 처음부터 무리한 고소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바울을 고소한 유대인들의 말은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있지도 않았던 일을 거짓으로 꾸몄으니 증거도 없고, 증인도 없고, 그냥 고소인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바울이 성전을 모독한 적이 없다는 사실만이 확실해질 뿐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모함했다는 것만이 분명하게 드러날 뿐이다.

재밌는 것은 대제사장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바울을 고소했는데.

그 종교 지도자들을 임명할 권한이 있는 아그립바가 바울의 무죄를 확인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고소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그들을 임명한 아그립바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다.

 

아그립바는 바울의 고소 건에 대해 이렇게까지 말한다.

본문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아그립바는 바울의 무죄를 확신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않았더라면 재판은 벌써 무죄로 판결을 났을 거라고 말한다.

괜히 로마 황제에게 상소해서는 아무 죄도 없으면서 당장 풀려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아그립바에게는 그런 바울의 처지가 안타깝고 어리석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그립바가 미처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애초에 바울을 향한 고소 건은 그에게 진짜 죄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바울을 붙잡고 죄를 뒤집어씌우고, 흉악한 범죄자로 만들어, 그를 사형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기에 유대인들은 재판으로 잘 안 되니깐 바울이 이동하는 중에 죽여버리자는 암살 모의를 2번이나 진행했던 것 아닌가.

혹시 재판을 유리하고 마쳐서 석방되었다고 하더라도 유대 뒷골목 어딘가에서 테러를 당하거나 죽임을 당한 채로 발견되었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바울에게는 로마를 향한 소명이 있었다.

주께서 보이고 말씀하신 대로 로마에 가서 가이사가 보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소명이 었었던 것이다.

그 소명을 이루는 것에 자신의 신분이 죄인이냐 자유인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이건 로마에 가서 그곳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당장 석방되지 않는다고 그것을 억울하다고 할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는 것이었다.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것으로 로마 군인들과 함께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로마를 향한 여정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전파하게 될 복음을 소망했던 것이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바울의 무죄가 한 번 더 확인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오늘 본문의 주된 내용은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은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의 반응이다.

베스도의 반응은 바울을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모르고, 말씀도 모르는 베스도에게는 바울의 경험도, 그가 전하는 예수의 부활도 그저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불과했다.

아그립바는 바울의 말을 불편해하고 기분 나빠했다.

처음에 바울은 아그립바를 향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을 했었다.

그런데 결국은 가스라이팅을 하듯이 바울이 교묘히 자신의 생각을 조종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을 향해, 몇 마디 말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느냐면서 기분 나쁜 것을 그대로 드러냈던 것이다.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베스도와 아그립바 두 사람 모두 바울의 전도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복음 전파에 실패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바울은 어려운 중에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은 누명을 쓰고 죄수가 되어 억울하게 몇 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었다.

많은 자유가 주어졌다고는 하지만 죄수의 신분이 자유인과 똑같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변명의 기회가 있다면 누구라도 놓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왕이 와서 직접 들어주겠다는데, 어떻게든 자신이 무죄라는 사실을 나타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중요한 순간을 자신의 얘기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얘기로 채웠던 것이다.

자신을 풀어줄 권력이 있는 그들에게 아부, 아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도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전하였다.

고관들을 향해 지금 묶여 있는 것을 제외하면 죄인인 자신처럼 되기를 소망한다고까지 말을 하는 것이다.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고위 관리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도 전혀 복음을 왜곡시키지 않았다.

순수한 복음 그대로, 그들이 들어야 할 복음 그대로를 전했던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그 어떤 첨가물도 섞지 않았다.

그러니깐 거짓말하지 않고, 진실만을 전했다는 것이다.

물론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그 복음을 듣는 이의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부분을 말씀으로 채울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거짓말로 채워서는 안 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진리의 말씀 되신 예수님을 거짓말로 포장한다면 그것으로 벌써 복음이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바울은 복음의 진실을 전하였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었다.

이제 자라나게 하실 이는 하나님이시다.

 

한국 교회의 역사를 보면 권력에 빌붙어서 그 권력에 아부하는 것으로 교회를 유지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어쨌든 불의한 쿠데타로 세워진 군사정권 앞에서, 그들에게 아첨하며 그 쿠데타를 정당화시키는 도구가 된 적이 있었다.

나라를 위한 조찬 기도회라며 독재자를 앉혀 놓고선 목사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닌 그 독재자를 높이는 일이 벌어졌었다.

박정희 때도 그랬고, 전두환 때도 그랬다.

박정희의 유신이 무너졌을 때, 한국 교회는 불의에 가담한 것을 괴로워하면서 회개한다거나 그러지 않았다.

회개하지도 않더니 같은 일이 반복될 때 다시 하나님의 공의를 포기했다.

오히려 유신 때의 단물을 경험하고는 전두환 때 똑같이 불의한 권력에 아부하며 동참한 것이다.

제 생각에, 이 사람들은 혹시라도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변함없이 신사참배를 할 인간들이다.

일본의 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며 영광 돌릴 인간들이다.

 

어쨌든 그런 아부의 노력으로 인해 많은 혜택을 받았고, 그 혜택이 대형교회를 이루는 것에 큰 역할을 했었다.

개인의 사업적 수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극대화 시키는 혜택이 분명히 있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당시의 목사들이 군사정권, 독재정권을 지지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봐야 한다.

주님을 향한 믿음이 크게 잘못되었거나 아예 믿음이 없는 자들로 봐야 한다.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내려오셔서 그 수모와 억울함을 감당하셨는지 전혀 모르는 인간들로 봐야 한다.

왜 천국은 가난한 자의 것이며, 왜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자들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 공동체 여러분.

오늘 우리는 권력자들 앞에 서서 당당한 모습으로 진실하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진리의 말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바울과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

저 사람의 권력이 나를 살릴 수 있다고 해서 그에게 아부해서는 안 된다.

복음을 그가 듣기 좋은 말로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그 죄를 인정하고 주님 앞에 나아오라고 외쳐야 한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은 진실을 전하지 않았다.

말씀을 전한다면서 권력을 향한 아부와 아첨으로 왜곡시켜 버렸다.

한번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난 독재자가 너무 무서웠을 수 있다.

저도 별반 다르지 않게 독재자에게 아부했을 것 같다.

그런데 두 번째는 좀 달라야 하지 않은가?

다시 나타난 독재자 앞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아부와 아첨만으로 일관한다는 것이 너무 어이없는 모습 아닌가?

그렇게 해서라도 큰 교회를 유지하며,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인가?

 

나 같았으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자주 말하는 것이지만 나는 무서움이 많고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다.

그런데 알면서도 불의를 저지르거나 거기에 동참하는 것이 싫다.

그래서 아마 저는 그냥 침묵했을 것 같다.

목회를 그만둬 버린다든지, 아니면 아예 외지로 가버린다든지.

어쨌든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은 참으로 비겁한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불의한 모습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 공동체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보인 바울의 모습은 목회자들에게만 모범이 되는 것이 아니다.

복음 앞에서 당당하고 진실한 모습을 지켰던 바울의 모습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먼저 말씀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우리 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깨닫게 된 옳음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어떤 권력과 권세가 나를 위협하더라도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진리의 말씀,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우리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침묵할지언정 거짓을 말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지금도 있을 수 있는 말씀의 왜곡을 분별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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