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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복음에 한결 같은 바울.(사도행전 26:1-23)

by TwoTalents 2023. 7. 16.

제목 : 복음에 한결 같은 바울.

 

본문 : 사도행전 26:1~23

1.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4.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다 아는 바라

5.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 하는 것이니이다

8.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21.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말씀 :

한결같다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아실 것이다.

한결같다는 말은 시작과 끝이 똑같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로 이 한결같다는 말은 긍정적으로 사용된다.

물론 나쁜 쪽으로 한결같을 수도 있다.

변함없이 이기적이고, 변함없이 세속적일 수 있다.

그런데 부정적인 모습이 아니라면, 긍정적인 모습이 변함없이 유지될 수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참으로 신뢰할 수 있는, 믿을만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오늘은 복음에 한결같았던 바울, 복음을 전하는 일에 변함없이 열심을 내고 최선을 다하는 바울에 대해 나누어 보려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더라도 변질되지 않은 복음을 전하였던 바울의 한결같음을 얘기할 것이다.

 

재판의 판결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로마로 이송이 결정된 바울은 총독 베스도의 부탁을 받은 당시 팔레스타인 북부의 왕이었던 헤롯 아그립바 2세 앞에 서게 되었다.

베스도는 유대인의 종교와 풍속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아그립바에게 로마로 보내게 될 바울에 관한 보고서에 대해서 도움을 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의 유일한 왕이었던 아그립바와 죄수였던 바울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 본문은 아그립바 앞에서 스스로 변호하는 바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바울과 아그립바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본문 1~3.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아그립바는 베스도의 말을 듣고 바울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바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 원하였다.

바울은 변호하기에 앞서 자신이 아그립바 앞에서 변호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고백한다.

지금 이 자리는 재판의 판결을 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단지 로마로 이송하기 전에 아그립바를 통해 종교적인 판단에 도움을 받기 위한 자리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유대의 종교와 풍속에 해박한 아그립바 앞에서 변호할 수 있게 된 사실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아부가 아니다.

아그립바가 잘 아는 만큼 바른 판단을 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바울은 아그립바를 향해 자신의 신앙적 배경에 대해 먼저 설명한다.

본문 4, 5.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바울은 자신의 종교적 배경이 바리새인임을 밝힌다.

이는 자신이 유대교에 적대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나는 고신이야, 나는 감리교야 이런 식으로 출신 교단을 얘기하면 그 사람의 신앙이 어떤 배경에 있는지 대충 짐작한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자신의 신앙적 배경이 바리새인임을 밝히는 것으로 유대인의 풍속을 잘 알던 아그립바가 바울이 어떤 신앙을 가졌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장 엄격한 바리새인 출신인 바울이 유대교에 적대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제까지 재판을 받았고, 지금도 스스로를 변호해야만 하도록 만들었던 유대인의 고소가 합당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본문 6, 7.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과 이스라엘의 소망을 언급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부활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 즉 부활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소망을 의미한다.

이것은 거의 모든 이스라엘의 소망이다.

바울을 고소하는 것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이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부활을 믿었으며, 그 부활을 소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소망하는 부활에 관한 것 때문에 자신이 고소당했다는 것이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고소당한 표면적인 이유는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이었다.

바울이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을 모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런 거짓말까지 하면서 바울을 고소한 이유가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바울의 영향력이 커지니깐 위기감을 느끼고 질투심이 생긴 것이다.

그러니깐 결국은 부활 때문에 고소당하게 되었다는 바울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바울은 이렇게 부활을 화두로 던지면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질문한다.

본문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본문의 접견장에 모인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학자에 따라 거의 모든 사람이 이방인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비슷하게 섞여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바울은 지금 부활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으로 이어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한 전제를 깔아 놓은 것이다.

 

바울은 부활이 쉽게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본문 9~12.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바울 자신도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앞서도 밝혔듯이 바리새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부활을 믿었다.

그런데 바리새인인 자신이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관념적으로는 부활을 인정하고 믿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부정했다는 말이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부활을 주장하는 이들을 오히려 핍박했던 것이다.

그냥 핍박한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에게 권한을 위임받아서는 외국으로까지 달려가서 부활을 증거하는 이들을 붙잡았었던 사실을 고백한다.

바울 자신을 고소했던 유대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부족함이 없이 열심을 보였던 바울이었다.

 

바울은 지금의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붙잡는 것에 그토록 열심이었던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간증한다.

본문 13, 14.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바울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정오, 즉 한낮이었음을 강조한다.

꿈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신이 가장 멀쩡할 때 일어난 일이다.

누군가가 히브리말로 정확하게 자신을 불렀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들은 언어가 히브리말이라는 것을 밝힘으로 그것이 관념이나 상징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한 메시지가 전달된 것이다.

바울은 드디어 그 목소리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밝힌다.

본문 15~1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지금까지 바울이 던진 모든 전제는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을 부르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 주께서 자신에게 주신 소명을 밝히기 위함이었다.

예수님과 바울의 만남은 너무나도 극적이면서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바울이었다.

그런 바울에게 갑자기 나타나 그의 이름을 부르시고는 느닷없이 소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니 바울에게는 오직 은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달리 생각해 보면, 바울이 처음에 변호할 때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 그리고 유대인의 소망과 관련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바울은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고,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지 않은가?

실재적으로 믿지 못했을지라도, 관념으로는 바리새인으로 부활을 믿고, 부활을 소망하며 기다렸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나타나셔서 잘못하는 것을 바로 잡으시고, 소명까지 주신 것이다.

앞선 14절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말씀에서 가시채끝이 뾰족한 막대기이다.

소가 엉뚱한 방향으로 갈 때 그 가시채로 찔러서 제대로 갈 수 있게 했었다.

다메섹에 나타나신 주께서 잘못 가고 있는 바울이 바로 가도록 찌르신 것이다.

 

어쨌든 바울은 자신이 복음 전파를 위해 유대인은 물론 이방인에게 보내졌음을 강조한다.

지금 그 자리에 모여있는 이방인들을 위해 바울이 그 자리에 서 있다는 말이다.

바울이 고소당한 것도, 그래서 죄수가 된 것도, 죄수로 지금 사람들 앞에 서서 변호하는 것도 모두가 자신에게 주목하고 있는 당신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소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하며 최선을 다하였음을 고백한다.

본문 19~21.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바울이 성전에서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몰매를 맞고, 고소까지 당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소명을 너무 열심히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기에 합당하고도 옳은 일을 하였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이기심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바울을 핍박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셨음을 고백한다.

본문 22, 23.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소명을 받은 뒤에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하셨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소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셨다.

그래서 바울은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모르는 모든 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죄수의 신분으로 자신에게 변호의 기회가 주어진 그 자리에서조차 그리스도의 복음,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며 자신의 변호를 마무리한다.

 

바울은 이렇게 늘 한결같았다.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후부터 변화된 모습으로 변함없이 복음을 증거하였다.

그는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최선을 다해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가난함도 부함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걸림이 될 것이 없었다.

신분이 낮은 자는 물론이고, 로마 천부장, 로마 총독, 유대의 마지막 왕 헤롯 아그립바 2세에 이르기까지.

그가 누구라도 복음을 들어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와야 하는 영혼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소망은 이제 로마를 향하고 있으며, 로마의 황제 앞에서라도 최선을 다해서 담대하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소명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였다.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리고 그 소명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갈라디아서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이런 마음으로 바울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결같은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였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주님과 동행하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의 소명을 감당하였고 주님이 신뢰하고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마지막을 맞이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사람이 한결같은 모습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울 역시 많이 어려웠고 흔들렸다고 스스로 고백하였다.

그렇기에 더욱 주님을 의지하였다.

자신이 하려고 하지 않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그렇게 한결같은 모습을 지켜나갔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한결같은 믿음을 지키기가 어려워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조차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더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바울보다 더 많이 주님을 찾고, 더 간절히 주님께 구해야 한다.

매일 매일 말씀으로 내 속을 채워야 한다.

세속의 것이, 거짓 가르침이, 잘못된 진리가 내 안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오직 주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내 안에 채워진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깨닫고, 말씀대로 살면서 주께서 원하시는 한결같은 믿음을 지켜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기를.

그런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혹시 연약하여 스러지더라도, 잠시 한결같지 못하더라도.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말씀에 따라 일어나 다시금 한결같은 믿음으로 주 앞에 설 수 있기를...

주님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한결같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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