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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가이사에게 상소하다.(사도행전 25:1-12)

by TwoTalents 2023. 7. 16.

제목 : 가이사에게 상소하다.

 

본문 : 사도행전 25:1~12

1.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4.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6.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8.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12.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말씀 :

오늘 본문은 가이사랴에서 열리는 바울의 두 번째 재판을 그리고 있다.

전임 총독이었던 벨릭스는 바울에게 금전적인 요구를 했었다.

하지만 바울이 총독에게 뇌물을 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벨릭스는 유대인들의 마음이라도 얻고자 바울을 그대로 감금해 두었다.

그리고는 그 상태로 총독에서 물러나 로마로 돌아가 된다.

그러니깐 바울의 재판은 어떤 판결이든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였다.

바울은 확정되지 않은 형을 살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이런 중에 벨릭스에 이어 후임 총독으로 베스도가 부임한다.

베스도는 총독으로 유다를 장악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부임 삼 일 만에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유다의 유력자들을 만나는 등 공격적인 정치 행보를 하게 된다.

그러던 중에 유대인들의 고소로 바울의 재판까지 주관하게 된다.

본문 1, 2.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부임 삼 일 만에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도시인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이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그리고 유력인사들과의 만남을 가진다.

총독으로서 통치를 위한 정치적인 기초를 다지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기회를 유대인 지도자들이 놓치지 않는다.

자신들을 찾아온 베스도에게 가이사랴에 갇혀있는 바울을 다시 고소한 것이다.
지난 재판이 있은 지 2년이 지났다.

재판 후에 2년이 지났지만, 바울에 대한 고소 건에는 그동안 추가적인 증거나 증인을 더 이상 내세우지 못했다.

추가적인 증인이나 증거가 있었다면 바울이 그대로 가이사랴에 구류되어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변화 없이 2년 동안 구류된 상태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그런 중에 총독이 바뀌고, 바뀐 총독이 자신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자 예루살렘으로 직접 방문한 것이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이때가 바울을 잡을 수 있는 기회이다.

자신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원하는 신임 총독에게 그것을 빌미로 그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부탁을 하는 것이다.

결론 나지 않았던 바울의 재판을 재개하자는 것이다.

 

고발과 재판이 있은 지 2년이 지났지만, 유대인들은 여전히 바울에 대해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바울을 죽이려는 마음도 여전하다.

본문 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바울을 다시 고소하면서 이번에는 가이사랴가 아닌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재판하기 원했던 것이다.

이는 재판에 있어서 가이사랴 보다는 예루살렘이 자신들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더 실질적인 이유는 본문의 기록대로 예루살렘으로 호송되는 바울을 매복하였다가 암살하기 위함이었다.

바울을 암살하고자 하는 계획은 이미 2년 전에 있었고, 실패했었다.

다시 바울에 대한 2차 암살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아무리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한다고 하더라도, 재판만으로는 바울을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더 이상의 증거도, 증인도 확보하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그나마 가짜 증인들의 기억도 희미해져 버렸다.

그러니 재판으로 이긴다는 것은 2년 전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재판을 빌미로 돌아오는 바울을 중간에서 죽여버리자는 것이다.

 

그런데 신임 총독인 베스도가 유대 지도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본문 4, 5.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베스도는 바울에 대한 고소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바울의 재판을 예루살렘에서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바울이 가이사랴에 있는 것과 자신도 곧 가이사랴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마 자신의 영향력이 확실하게 작용하는 곳에서 재판을 진행하고 싶었던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신임 총독에게는 피지배국의 수도인 예루살렘보다는 총독이 머무는 가이사랴가 더 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계획은 다시 한번 실패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바울이 구류되어 있는 가이사랴로 가서 재판을 진행해야만 했다.

 

어쨌든 유대인들은 다시 가이사랴고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바울의 재판이 다시 벌어지게 되었다.

본문 6, 7.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1차 때와 마찬가지로 고소인들의 고발로 재판은 시작된다.

그런데 역시 1차 때처럼 유대인들은 바울의 죄를 증명하는 데 실패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2년이 지났지만, 추가된 증거도 증인도 없는 상태이다.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없는 사실을 꾸며서 말하다 보니, 증언의 앞뒤가 맞지 않고, 설득력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기억이 희미해진 고소인들의 진술은 논리적으로 더 부실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단지 많은 유대인들이 재판에 참석하는 것으로 수적인 압도감과 위압감만 줄뿐이다.

 

어설픈 유대인들의 고소에 대해 바울은 당당하게 자신을 변호한다.

본문 8.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바울은 변함없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사실 이 재판이 현대의 그것이었다면 바울이 특별히 노력해야 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바울이 죄가 있다면, 죄가 있다고 고소한 사람들이 증거나 증인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수사기관이 수사해서 바울에게 죄가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 입증을 법리와 합리로 판단해서 재판관이 판결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바울이 자신에게 죄가 없음을 증명한다거나 증거를 제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현대라면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바로 석방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임에도 2년씩이나 바울은 구류되어있었고, 또다시 같은 사안으로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재판에서 마저 아무런 증거와 증인은 없었다.

그러니 바울은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총독 베스도가 바울에게 뜬금없는 제안을 한다.

본문 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갑자기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 재판받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는 것이다.

처음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재판하자고 했을 때, 베스도 본인이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마음이 바뀌었는지 베스도가 직접 바울에게 예루살렘 재판을 말하는 것이다.

본문에는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처음 판단과는 다르게 어떤 이유에서건 바울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야 유대인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울을 강제로 호송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바울에게 의사를 물으며 유도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 시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자는 베스도의 제안을 거절한다.

본문 10, 11.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 대

 

예루살렘에서는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바울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암살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바울은 베스도의 제안을 거부한다.

그러면서 아예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를 해 버린 것이다.

로마 시민에게는 자신이 억울할 때, 가이사에게 상소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만약 로마 시민이 가이사에게 상소하게 되면 그는 반드시 로마로 가서 로마 최고 법정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했었다.

그러니 가이사에게 상소한 바울은 반드시 로마로 가서 로마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예루살렘으로 갈 필요가 없게 되었고, 대적들의 음모는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어 버렸다.

 

바울의 갑작스러운 상소에 총독 베스도는 배석자들과 상의하게 된다.

본문 12.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사실 베스도의 입장에서는 바울이 로마로 가서 재판받는 것이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베스도에게 바울은 참 골치 아픈 죄수이다.

이전 총독이었던 벨릭스가 완전하게 해결하지도 못한 곤란한 사건을 부임하자마자 떠맡게 된 것이다.

바울의 경우 고소인은 많지만, 그가 죄를 저질렀다는 명확한 증거도 증인도 없다.

증거와 증인이 없으니 그냥 풀어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필 바울이 로마 시민이다.

로마 시민인 그를 공정하지 못하게 죄가 명백하게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벌을 줄 수는 없다.

벨릭스와 마찬가지로 베스도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에 바울이 로마 가이사에게 상소했으니, 베스도에게는 옳다구나가 되는 것이다.

골치 아픈 사건에서 손을 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로마 시민인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 된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로마로 보내주면 되니깐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래서 베스도는 바울의 상소를 받아들이고 그대로 될 것임을 바울에게 전했던 것이다.

이렇게 바울은 로마를 향한 여정에서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말씀 마무리.

아무런 증거가 없고, 증인들의 증언도 신빙성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적들은 계속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에게는 억울한 위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바울은 자신의 소명을 잊지 않았다.

주께서 주신 로마를 향한 꿈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바울은 이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진실함과 정직함으로 위기에 맞섰다.

그는 공정하지 못한 재판에 그저 무기력하게 끌려가지 않았다.

당당하고 담대하게 자신을 변호하면서, 정당한 권리를 이용하며 대적들의 음모에 말려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로마에까지 가서 주의 복음을 증언해야 한다는 그 소명을 이루고자 주께서 주신 놀라운 지혜를 발휘한다.

그것은 바로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것이었다.

이제 바울은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히려 로마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로마로 가게 될 것이다.

가이사랴에서 로마까지의 거리가 대략 2,240km라고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약 320km라고 한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약 7배가 되는 거리가 된다.

이 거리를 바울 혼자서 혹은 바울의 선교팀만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지난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으로 많은 경험을 했던 바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로마로의 여정이 어려운 길임을 더 잘 알았을 것이다.

비록 죄수라 할지라도 로마 군인들과 함께 로마로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현명한 방법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다면, 그의 신분이 죄수면 어떻고, 왕이라 한들 뭐가 다르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 공동체 여러분.

바울은 주께서 주신 로마를 향한 소명을 이루기 위해 로마가 정한 세상 법을 이용하였다.

불법이나 편법이 아니라 법으로 정해진 정당한 권리를 합당하게 사용한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세상의 권력에 세상의 법에 호소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잡으려고 불법을 저지르는 이들 앞에서 진실한 모습을 합법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그들과 맞서 싸웠던 것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바울과 같은 지혜를 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우리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합당하게 법을 지키는 모습으로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을 이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렇게 합당하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모습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드러날 수 있기를 간절히 간구한다.

우리의 드러남이 세상에 복음의 씨앗으로 뿌려지고, 그 씨앗이 자라나 열매 맺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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