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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구약)/01 창세기 묵상(I)

이삭은 죽고, 에서는 떠났다.(창세기 35:23-36:8)

by TwoTalents 2023. 4. 1.

이미지 출처 - 갓피플

 

제목 : 이삭은 죽고, 에서는 떠났다.

 

본문 : 창세기 35:23~36:8

23.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24.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25.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요

26.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28.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29.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1.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2.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3.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맞이하였더니

4. 아다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고

5. 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태어난 자들이더라

6.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7.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8.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묵상 :

야곱의 아들들이 소개된다.

이 소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셨던 민족에 관한 약속의 기틀이 마련됨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아곱의 아버지 이삭의 죽음에 관한 네러티브가 등장한다.

기록에는 없지만,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후 아버지 이삭과 몇 번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이삭의 말년에는 잠깐이라도 함께 거주한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튼 나이 많은 이삭은 180세를 일기로 육신의 삶을 마무리한다.

본문 28, 29.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이삭의 일생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무난한 삶이었다고 평가한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에 비해 굴곡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이해할 수 있으랴.

이삭만이 가지고 있었던 가슴 시린 아픔을.

 

이삭이 어려서 때 그는 이복형 이스마엘에게 놀림을 당했었다.

젊어서는 어처구니없게도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다.

중년이 되어서는 온전히 의지하고 믿었던 어머니가 냉정한 아비보다 일찍 돌아가셔서 유일한 안식처마저 잃게 되었다.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아내 리브가를 맞나 간신히 결혼하였다.

더 늦게 얻은 쌍둥이 에서와 야곱은 장자권 때문에 서로 다투다가 원수가 되어버렸다.

그 때문에 작은아들 야곱과는 생이별해야 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이삭의 삶이 평안했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상대적인 관점일 뿐, 아무도 그가 가진 내면의 아픔은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이삭은 자신의 아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이겨 냈을지도 모른다.

비록 자신을 진짜로 죽이려 했던 아버지이지만, 그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경험하게 되었다.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하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자신을 살리시고, 자신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어린양을 직접 보게 하셨다.

아픈 경험 속에서도 더 큰 사랑으로 함께하신 하나님을 믿었고 의지했을 것이다.

그렇게 백 팔십 년의 인생을 살았던 이삭이 이제 열조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삭의 마지막은 반목할 수밖에 없었던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을 다시 한번 하나 되게 하였다.

두 사람은 함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20여 년 만에 화해했던 것이 변함없음을 재확인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 이삭의 죽음 뒤에 형, 에서는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

이제 야곱과 에서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세의 규모가 커져 버렸다.

그로 인해 형, 에서가 먼저 그곳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본문 6~8.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에서는 모든 가족과 재물을 챙겨서 세일산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그런데 에서는 야곱을 다시 만났을 때, 이미 세일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본문은 에서가 세일로 옮기는 것을 다시 말하고 있다.

아마도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살았던 헤브론과 세일 두 곳을 오며 가며 살았던 것 같다.

야곱도 없는 집에 아버지 혼자만 두고 완전히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아버지 이삭의 죽음으로 인해 이제는 헤브론에 남아있는 자신의 모든 재물과 식솔을 이끌고 완전하게 세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삭의 죽음과 에서의 떠남으로 이제 가나안의 약속은 오롯이 야곱에게 주어진 것임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순간이다.

야곱은 스스로 큰 노력을 했었던 사람이다.

형에게서 장자권을 구매하려고 팥죽으로 거래를 했었다.

아버지에게서 장자의 축복을 받아내려고 어머니와 작당하여 사기를 쳤다.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얻으려고 14년이나 노예처럼 일을 하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평화롭게 온전히 이루어진 일은 없었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일은 빗나갔고, 반목이 생겼으며, 가족이 속고 속이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오히려 야곱이 모든 힘을 뺏을 때, 꽉 쥔 두 손을 벌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이루어 주셨다.

야곱이 완전히 지쳐서 스러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약속의 땅에서 이루어질 모든 약속이 야곱에게 속해 있음을 확인시켜 주셨다.

 

야곱은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했었다.

그는 서둘렀고 기다릴 줄 몰랐다.

그런데 서두른 만큼 오히려 더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방황하였다.

물론 하나님의 일에 인간은 성실하게 반응하여야 한다.

하지만 주권자, 주도자는 결단코 하나님이어야 한다.

내가 주도하는 순간, 모든 일은 뒤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야곱이 스스로 많은 힘을 주었을 때, 그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완전히 엎드려져 하나님께만 의지했을 때, 주님의 그에게 용기를 주셨고 함께하심을 말씀하셨다.

야곱은 그 모든 것을 삶의 실패와 성공을 통해 철저하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어떠한가?

개인적인 일은 물론 교회 일과 같은 공식적인 일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는 기도를 올린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긴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솟아나는 나의 판단을 완전히 내려놓기가 힘들다.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은데.

분명히 저것이 맞는 것 같은데.

 

나의 하찮은 경험, 나의 미천한 지식, 나의 어쭙잖은 정의감.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보다 앞서려고, 서두르려고 할 때, 스스로도 깜짝 놀라며 다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아직도 완전히 자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지 못한 어리석은 종의 모습.

 

아버지, 하나님.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내려놓게 하소서.

오늘보다 내일 간절히 나의 십자가를 지게 하소서.

그렇게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묵묵히 따르게 하소서.

오늘도 변함없이 깨닫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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