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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구약)/01 창세기 묵상(I)

인간은 상대적이다.(창세기 37:1-17)

by TwoTalents 202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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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인간은 상대적이다.

 

본문 : 창세기 37:1~17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12.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15.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17.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묵상 :

창세기 37장부터는 주인공이 야곱에서 그의 아들 요셉으로 바뀌게 된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그의 가족을 통하여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로 이어진 언약을 성취해 가신다.

 

오늘 본문은 요셉이 17세일 때, 가족의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본문 1~4.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야곱은 요셉에 대한 사랑이 특별했다.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이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4명의 부인 중에 가장 사랑하는 라헬로부터 얻은 아들이라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입히는 등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차별을 하고 만다.

요셉은 그런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했던 것 같다.

그는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 야곱에게 그대로 고자질해버린다.

이는 형들을 미워해서라기보다는 아버지를 사랑해서 그랬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형들은 요셉만 사랑하는 아버지의 차별로 인해 불만이 가득하다.

그리고 동생의 고자질로 인해 그를 미워하고 있었다.

이 가족은 당장이라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이 좋지 않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이 일어나고 만다.

본문 5~8.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꿈을 꾸게 된다.

그 꿈의 내용이 심상치 않다.

형들의 곡식 단이 자신의 곡식 단에 절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 들어도 형들이 요셉에게 절을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요셉이 굳이 이 꿈의 내용을 형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솔직히 형들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요셉을 싫어한다.

그의 얘기를 듣는 것도 그에게 얘기하는 것도 싫다.

? 혹시라도 실수하면 또 아버지 야곱에게 달려가 고자질을 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듣기도 싫은 꿈 얘기를 하더니, 그 내용이라는 것이 형들이 자기에게 절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형들은 더욱 분노하고 요셉을 더 많이 미워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난다.

본문 9~11.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이번 꿈에는 아예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요셉에게 절을 하는 내용이다.

형들이 다시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번에는 요셉을 그토록 사랑하는 아버지 야곱마저도 요셉을 꾸중하게 된다.

그런데 야곱의 꾸중은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시로써 아버지가 아들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형이 동생들에게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엎드려 절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가족의 위계질서를 허무는 것과 같다.

또한, 야곱은 형들의 분노를 알기 때문에 더욱 심하게 요셉을 꾸중하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형들이 요셉을 싫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 야곱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편애를 넘어 형들의 주인이 되는 요셉은 꿈은 형들의 분노를 더욱 가중 시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은 형들이 보란 듯이 요셉을 꾸중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야곱은 요셉의 꿈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그 이유는 야곱 자신도 경험이 했기 때문이다.

, 에서를 피해 도망갔을 때, 꿈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에게 주어진 꿈을 그저 가볍게 넘기지 못한 것이다.

 

요셉의 꿈으로 인해 그를 향한 형들의 분노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런데 그런 중에 요셉이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 형들에게로 나아가는 일이 벌어진다.

본문 12~17.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어느 날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세겜으로 야곱의 양을 치러 나간 형들이 양들을 잘 돌보고 있는지를 보고 오라는 것이다.

요셉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형들이 있어야 하는 세겜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세겜에는 형들이 없었다.

형들은 이미 다른 곳, 도단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요셉은 형들을 만나기 위해 세겜을 떠나 그들이 있는 도단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형들을 만난다.

언제나 아버지의 보호 아래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려,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며 미움을 받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요셉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아버지가 없는 곳에서 형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야곱의 사랑은 멀리 있고, 바로 앞에 형들이 분노만이 요셉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다음 본문에서 형들이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리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만다.

 

오늘 세 경우의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아버지 야곱은 마음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부인 라헬 앞에서도 그러더니 요셉에게도 마찬가지다.

너무 티가 날 정도로 차별하며, 요셉만을 편애하였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에 부응하였다.

그래서 그 또한 아버지 야곱에게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차별 받고 있는 자신의 형들을 향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아버지께 고자질했고, 거기다가 형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가감 없이 형들에게 떠들어 댔다.

형들의 감정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요셉이다.

형들은 아버지에게 차별받고, 동생에게 무시당하는 것으로 그 마음에 분노가 가득하였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그 분노를 해소할만한 그 어떤 방법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 모든 것들이 한 가족에게 있을 비극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요셉이 상인들에게 팔려서 애굽의 노예가 된 것은 단지 형들의 질투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

형들이 질투할 수밖에 없도록 야곱이 원인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요셉도 형들을 전해 배려하지 않는 것으로 나쁜 마음을 행동하게 하는 이유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형들이 잘했다거나, 그들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이 발생하는 것에는 그 일에 관계된 모든 이들이 유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타인의 상대성을 인정해야 한다.

나와 다른 그의 마음, 나와 다른 그의 상황, 나와 다른 그의 조건을 인정하고 배려해야 한다.

야곱이 조금만 더 절제함으로 자식들을 배려했다면.

요셉이 조금만 더 아버지를 사랑하는 만큼 형들을 배려했다면.

형들은 나이 드신 아버지의 마음과 아직 어린 동생의 마음을 조금만 더 배려했다면.

그 가족의 비극은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계획은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조금 더 가족을 배려할 수 있는 나이길 기도한다.

조금 더 이웃을 배려할 수 있는 나이길 기도한다.

조금 더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나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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