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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주의 뜻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사도행전 21:1-16)

by TwoTalents 2023. 2. 12.

제목 : 주의 뜻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

 

본문 : 사도행전 21:1~16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 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말씀 :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작별 인사를 마친 바울은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을 계속 이어가게 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믿음의 형제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을 멈출 것을 요구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니깐 대적들에 의한 방해가 아니라, 믿음의 형제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말리는 것이다.

오늘 본문이 이 내용을 담고 있다.

믿음의 형제들이 왜 바울의 길을 막으려고 했는지, 바울은 그들의 제지에 어떻게 반응했는지가 기록되어 있다.

오늘은 말씀을 통해서는 소명 받은 자와 그 소명을 믿음으로 후원하는 자들의 모습과 자세를 살펴보고 나눔을 가지려고 한다.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작별을 한 바울은 배를 타고 다음 여정을 이어갔다.

본문 1~3.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바울 일행은 밀레도를 떠나 고스, 로도, 바다라를 거쳐 마침내 두로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 두로에 짐을 풀고 이곳에서 일주일을 머물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서 성령의 감동을 입었던 형제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리는 것이다.

본문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두로에는 이미 교회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 교회는 바울의 전도로 이루어진 교회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흩어졌던 그리스도인들이 두로로 와서 교회를 형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어쨌든 두로의 형제들과 교제를 나누는 중에 그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면 그곳에서 핍박받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던 것 같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두로의 형제들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고난이 있을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바울을 말린 것이다.

만약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있었다면 그것은 두로의 형제들이 아닌 바울에게 직접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전에도 바울은 성령의 막으심으로 자신이 가고자 한 곳을 가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사도행전 166, 7.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이 당시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제지하셨다.

바울은 성령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로 가게 된다.

또 예수의 영이 비두니아로 가려던 바울의 길을 막으셨다.

그래서 바울은 비두니아가 아닌 드로아로 내려갔었다.

자신의 원함을 접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랐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본문에서도 성령의 뜻이라면 바울은 당연히 순종할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두로의 형제들이 만류해도 자신이 받은 소명을 멈출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두로의 형제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고난받을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것이 바울을 말리라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로의 형제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루살렘을 향하는 바울에게 핍박이 가해질 것을 알게 된 것은.

그것으로 바울을 위해 기도하게 하기 위함으로 봐야 한다.

본문 5, 6.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일주일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함께하였다.

하지만 바울과 두로의 형제들은 성령으로 인해 하나 됨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만류했다.

하지만 바울은 주께서 보이신 길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가려는 믿음의 의지를 확실하게 했다.

그렇기에 두로의 형제들은 바울을 위해 함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고난받을 바울을 포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도함으로 동참하고 바울에게 힘을 실어 주었던 것이다.

 

바울은 두로를 떠나 계속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

본문 7~9.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두로를 떠나 돌레마이에서 하루 묵었다가 가이사랴에까지 이르게 된다.

가이사랴는 전도자 빌립의 집이 있었던 곳이다.

빌립은 스데반이 순교한 후에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

그리고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다가 돌아가던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세례를 주었던 사람이다.

바울과는 나누고 교제할 것이 참으로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바울은 꽤 오랜 시간을 빌립의 집에 머물며 함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던 중에 유대에서 아가보라는 한 선지자가 바울을 찾아오게 된다.

본문 10, 11.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본문의 아가보는 사도행전 11장에서 천하의 흉년을 예언했던 그 아가보와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

선지자 아가보는 바울을 만나려고 일부러 가이사랴까지 찾아왔다.

그는 바울을 찾아와 바울이 어떤 모습으로 핍박받게 될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전하였다.

성령께서 말씀하시길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에게 붙잡히게 되고 그들에 의해 이방인에게 넘겨지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가보도 바울이 당할 핍박에 관한 메시지만 들었고 그것만 전하였다.

바울이 가는 길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아가보는 딱 거기까지의 역할을 수행하고 사라진다.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라 마라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성령의 말씀을 전하였고, 그다음은 성령의 인도와 바울의 믿음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가보의 구체적인 메시지가 전달되자 바울과 함께했던 동료들이 흔들리게 되었다.

본문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지금까지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던 동료들이 바울의 길을 만류하는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핍박의 메시지가 주어졌다.

거기다가 핍박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전해지니깐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이것은 바울의 소명을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를 만류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바울의 길을 막으시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가는 길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바울에게는 그 믿음을 강하게 하시고, 함께하는 이들은 바울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함인 것이다.

본문 13, 14.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함께했던 동료들까지 그 길을 만류하니깐 바울은 더욱 괴로웠다.

어쩌면 믿음의 의지가 흔들리는 최대의 고비를 맞이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끝내 바울은 처음 자신에게 주어진 주님의 뜻을 포기하지 않았다.

바울도 이미 알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당하게 될 핍박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놓고 자신의 얼굴을 다시 못 보게 될 것이라고 고백했던 것이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며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선언한다.

 

바울의 이런 모습은 예수님과도 너무나 닮아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때 베드로가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듯이 항변하였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베드로의 만류와는 상관없이 예수님께서 감당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베드로는 사람의 뜻으로 주님을 만류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으로 당신의 십자가를 감당하기로 작정하셨던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놀라운 믿음을 보였던 것이다.

 

바울의 동료들은 바울의 이런 믿음을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간구했던 것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바울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된다.

본문 15, 16.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바울의 곁을 지금까지 동행했던 동료들은 물론 가이사랴의 몇몇 제자들까지 함께해 주었다.

그들은 바울에게 닥칠 핍박을 알면서도 바울과 함께하기를 선택하였다.

분명히 위험한 길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바울처럼 확신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위해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려 했던 것이다.

 

말씀 마무리.

이미 자신에게 닥칠 고난을 알고 있었던 바울이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그 누구보다 바울 자신이 가장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바울에게, 그가 방문했던 지역의 형제들이 바울의 고난을 예견하였다.

한 선지자는 유대에서 일부러 바울을 찾아와 그가 당할 핍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지금까지 함께했던 동료들마저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한다고 바울을 설득한다.

모두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당장이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핍박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바울은 주께서 주신 소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바울은 형제들의 만류를 오히려 하나님의 독려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동료들의 만류를 꾸짖었다.

그러면서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라고 당당하게 선언했던 것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이 핍박받게 될 것을 알게 된 형제들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울을 만류하였다.

하지만 바울의 고백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바울의 고난을 알게 된 것은 그의 길을 막기 위함이 아니라, 핍박받을 바울을 위해 기도하기 위함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간구하였다.

그러면서 생명을 걸고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는 바울의 길을 피하지 않고 함께 나아갔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 공동체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가장 큰 뜻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찾고 깨달아야 한다.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나를, 외부의 핍박보다 내부에서 걱정하는 말들이 더 흔들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중에도 주님의 참된 뜻이 무엇인지를 기억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그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우리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혹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핍박에 스스로 들어가는 믿음의 형제, 자매가 있다면.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그를 흔드는 일이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인간적인 생각을 지혜인양 주의 뜻을 따르는 그를 만류하며 방해하는 어리석은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의 뜻을 위해 희생하는 그를 격려하고,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우리 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바울과 함께했던 믿음의 형제들처럼.

아버지의 뜻에 따라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사람이교회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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