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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예루살렘을 향하여, 로마를 향하여...(사도행전 20:1-6)

by TwoTalents 2023. 1. 15.

제목 : 예루살렘을 향하여, 로마를 향하여...

 

본문 : 사도행전 20:1~6

1.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 비모라

5.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말씀 :

바울이 에베소에서 순조롭게 사역을 하던 중에 새로운 비전을 품게 된다.

그것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로마에까지 이르기를 작정한다.

그런데 이 비전을 품고 준비하던 중에 에베소에서 바울로 인하여 소동이 일어나고 말았다.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 때문에 자신의 수익이 줄어든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사람들을 선동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바울이 아니라 바울의 동역자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폭도들에게 고초를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바울은 흔들렸고, 소동을 일으킨 자들을 향해 직접 나아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동료들이 바울을 진정시켰고, 바울은 그들과 함께 일단 소동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바울의 걱정과는 달리, 소동은 에베소 서기장의 예상치 못했던 도움으로 교회에 아무런 피해 없이 마무리되었다.

고린도에서 바울에게 일어났던 제3자를 통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에베소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고린도에서는 바울이 위기에서 벗어났었고, 에베소에서는 바울의 동역자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이다.

바울은 이 체험을 통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에베소 교회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체험한 것이다.

이것은 에베소의 성도들에게도 귀한 체험이다.

얼마 후에 바울이 떠나고 자신들과 함께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함께하시기에 담대함으로 믿음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이 놀라운 체험이 있고 난 뒤에 이제 바울은 새롭게 품은 비전, 새로운 소명을 진행한다.

본문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바울은 소요가 끝나자 제자들을 불러 그들을 격려한다.

에베소 교회는 소요를 통해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였다.

이제 가이오, 아리스다고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세상과 맞설 것을 격려했던 것이다.

이렇게 에베소 성도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바울은 마게도냐를 향해 떠나게 되었다.

마게도냐로 가는 여정 중에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교회를 세웠던 도시들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곳의 교회를 다시 방문하게 된다.

본문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이 시기에 바울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에 세워진 교회 공동체를 재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재방문한 교회에서 여러 말로 제자들을 권하였다고 한다.

본문의 은 헬라어로 로고스를 사용하고 있다.

로고스는 기독교에서 아주 중요한 단어이다.

말씀, 설교, 교리 등을 의미하는 단어이고,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말씀’, 로고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바울은 재방문한 교회에서 단순히 안부를 묻고 교제를 나눈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본문의 권하고는 헬라어로 파라칼레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훈계하다라는 뜻을 가지는데, 성도들이 말씀에 대해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바르게 고쳐주었다는 것을 의미하다.

바울은 다시 방문한 교회에서 그들의 상황을 듣고, 어려움이 있다면 믿음의 조언도 했을 것이고, 혹시나 오해하고 있는 말씀이 있다면 다시 풀어서 가르쳤던 것이다.

그러니깐 말씀에 대한 재교육이 이루어진 것이다.

여정의 중간에 방문한 것이기에 긴 시간 동안 깊은 가르침을 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재교육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렇게 각 도시를 방문하면서 헬라에까지 이르게 된다.

본문의 헬라는 그리스지역을 의미한다.

그러니깐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아가야 지역이 바로 헬라이다.

특히 본문에서 헬라라고 표현된 지역은 고린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당시 헬라 지역, 즉 아가야 지역의 수도가 고린도이기도 하고,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을 관계적으로 살펴볼 때, 정황상 바울은 이때 고린도를 방문한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고린도는 이전에 바울에게 큰 위기를 주었던 도시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바울은 이곳에서 대적과 맞닥뜨리게 된다.

본문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바울은 고린도에서 석 달을 머물게 된다.

학자들은 고린도에서 머문 석 달 동안 로마서를 기록했다고 보고 있다.

어쨌든 바울의 체류가 길어지자 고린도의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바울을 그냥 놔둘 수 없어서 바울을 해하려고 공모를 꾸미게 된다.

본문의 공모는 헬라어로 에피불레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생명을 노리는 음모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고린도의 유대인들은 단순히 바울을 쫓아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바울을 아예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바울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의 노선을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는 것으로 변경했던 것이다.

아마도 유대인들이 바울의 행선지를 알고 바울을 해하고자 길목에 매복을 했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바울은 빠른 노선인 해상길을 포기하고 훨씬 돌아가는 육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 때문에 바울이 유대인의 음모가 무서워서 도망가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바울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자들이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바울이 단순히 자신의 목숨을 지키겠다는 이유만으로 도망치듯 노선을 변경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바울에게는 주어진 소명이 있다.

바울은 그 소명을 반드시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지혜롭고 올바른 선택을 했던 것이다.

지난번 에베소에서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붙잡혔을 때.

그때 사람들을 향해 뛰쳐나가려고 했던 바울을 제자들이 말렸던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믿음의 사람들 열정과 담대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만 있다면 오히려 위험하다.

열정과 담대함이 있어야 하지만 그와 함께 말씀을 동반한 지혜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세상을 향한 우리는 비둘기와 같이 순결해야 한다.

하지만 바보여서는 안 된다.

순결한 것과 순진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성도는 험악한 세상에서 순결함을 지키면서 그들을 이겨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뱀 같은 지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뜨거운 열정과 담대함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모함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께서 주시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바울은 최선의 선택을 하였고, 새롭게 선택한 노선으로 계속해서 여정을 이어나갔다.

바울의 여정은 결국 예루살렘과 로마를 방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주에도 나누었듯이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것은 기근으로 힘들어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구제헌금을 전달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있었다.

오늘 본문에는 이것을 위해 함께 동행하게 된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본문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각 지역 교회를 대표하는 7명이 바울과 함께했던 것이다.

이들은 각각의 교회에서 모은 구제헌금을 예루살렘 교회로 전달하기까지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다.

바울은 자신이 직접 구제헌금을 관리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나 오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각 교회의 헌금을 그 교회가 임명한 대표에게 맡기고 관리하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목회자들이 깊이 묵상해봐야 할 부분이다.

 

믿는 자가 물질에 자유하다는 것은 내가 돈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필요한 만큼 사용할 수 있는 많은 재물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말이다.

믿음의 사람이 물질에 자유하다는 것은 물질에 종속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예수의 피라는 엄청난 값으로 죄가 사하여 졌고, 그것을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 더 많이 가지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어쨌든 예루살렘을 위한 구제헌금은 당연히 기근으로 힘들어하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를 구제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이 구제헌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효과가 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에 본이 된다는 것이다.

바울이 모은 구제헌금을 통해 구제에 관한 교훈을 전해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에 대한 실제적인 모범을 보인 것이다.

두 번째는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교회의 일체를 이룰 수 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한 형제, 자매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이 일을 반드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바울은 함께 동행하게 된 7명의 대표들만 드로아로 먼저 보낸다.

본문 5, 6.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왜 그들만 따로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런데 7명의 교회 대표들을 먼저 보내고 바울은 빌립보에서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와 합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바울과 누가는 빌립보에서 무교절을 보내고 닷새 만에 드로아로 가서 7명의 교회 대표들과 함께 했던 것이다.

 

이렇게 마게도냐와 아가야, 그리고 예루살렘과 로마를 향한 바울의 여정은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었다.

 

바울이 가고 있는 예루살렘과 로마를 향한 여정은 분명히 성령으로 인한 작정함이었다.

사도행전 19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이것은 성령을 통해 받은 소명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이 여정은 순탄하지 않다.

성령의 능력으로 바다가 갈리고, 높은 산이 무너지고, 원수는 물러가고, 천사들이 영접하는 그런 길이 아니었다.

오히려 복음 때문에 소동이 일어났고, 믿음의 동료가 사람들에게 붙잡혔으며, 대적들은 모함하고, 같은 유대인들에게 외면당하였다.

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여도 돌아오는 것을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음모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울은 이 여정을 멈출 수 없었다.

대적들의 위협을 피해 미련스럽게 먼 길을 돌아서 가더라도 반드시 가야만 했다.

?

바울은 지금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로마를 향해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의 여정을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질 하나님 나라, 그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무엇을 목적으로, 어디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가?

주님께 소명을 받고, 주 안에서 비전을 품었다고 하더라도.

만약 우리가 세상과 똑같은 영광, 세속과 똑같은 성공을 꿈꾸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교회에 이름만 등록되었을 뿐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한다.

날 위해 준비하신 아름다운 천국을 소망하여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기 때문에 정직한 패배가 슬프지 않은 것이다.

아름다운 천국을 소망하기 때문에 신실한 실패가 기쁜 것이다.

한낱 이 땅에서의 성공을 위해 천국 시민으로서 가진 자존심을, 품위를 훼손하지 않았다는 것에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을 꿈꾸고, 로마를 꿈꾸고, 천국을 꿈꾸었던 바울처럼.

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우리이길, 사람이교회 공동체 이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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