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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선동한 자들과 선동된 자들.(사도행전 21:27-36)

by TwoTalents 2023. 3. 7.

제목 : 선동한 자들과 선동된 자들.

 

본문 : 사도행전 21:27~36

27.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30.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31.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33.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34.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35.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36.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말씀 :

오늘은 선동한 자들과 선동된 자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지난 말씀에서 나누었듯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 중에는 바울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었다.

그것은 오해한 것일 수도 있고, 악의적인 모략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로 인해 예루살렘을 방문한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바울과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이 하나의 방법을 제시했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서원한 네 명의 성도들이 있는데, 그들의 결례 비용을 바울이 대신 지불하는 것이었다.

서원자들을 돕는 것으로 다른 성도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율법을 지키는 사람임을 보여 주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제시된 방법은 올바른 방법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도 아니라고 말하였다.

오늘 본문을 통해 그것이 효과 없는 방법이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오순절을 맞이해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들었다.

그중에 아시아로부터 절기를 지내려고 온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 바울에 대해 적대감을 품고 있었던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본문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의 제안대로 바울이 서원자들을 도와 예루살렘 성전에 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적대적인 유대인들이 발견한 것이다.

이들은 이전에 자신들이 있던 곳에서부터 바울을 못마땅하게 여겼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무리를 충동하고 선동해서 바울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들이 사람들을 선동하는 방법은 변함이 없다.

진실이 아닌 왜곡된 말로 바울을 모함하는 것이다.

본문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이들은 바울이 유대인과 유대인의 율법을 비방하였다고 거짓말한다.

거기다가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성전은 이방인의 뜰을 제외하면 이방인들이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민감한 문제이다.

이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면서 바울이 이방인을 성전에 데려고 들어갔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너무나도 황당하다.

본문 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본문의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는 에베소 교회를 대표해서 예루살렘을 위한 구제헌금을 가지고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이다.

사도행전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지금 바울을 잡으려고 선동하는 유대인들은 에베소 사람인 드로비모를 알아보았다.

그것으로 보아 에베소에서, 역시 바울을 잡으려고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소동을 일으켰을 당시에, 그때 있었던 사람들인 것 같다.

그때 유대인들은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까 봐 바울과 선을 그으려고 했었다.

 

어쨌든 이 사람들은 바울이 이방인인 드로비모를 데리고 성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것이 아니었다.

단지 시내에서 바울이 드로비모와 같이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방인인 그를 데리고 성전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주장이다.

말 그대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서 바울을 나쁜 사람으로, 유대인의 입장에서 악마화를 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유대인들에게는 먹히게 된다.

율법과 성전이라는 민감한 부분을 자극하니깐 유대인들이 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본문 30~32.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자신들이 너무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바울이 우습게 여긴다고 하니깐.

그 말에 이성을 잃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바울에게 달려드는 것이다.

율법을 향한 맹목적인 모습과 성전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잘못된 열심, 잘못된 집착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군중들의 생각은 단순해졌고, 그 단순함에서 일어난 군중심리는 옳고 그름의 기준을 완전히 무너트려 버렸다.

재판은 고사하고, 바울의 변명이라도 들어보아야 할 텐데.

그런 것도 없이 곧바로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로마 군인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로마군부는 절기를 맞이해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집결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예루살렘의 치안에 신경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중에 소동이 일어난 것 같으니까 즉각 출동해서 소동을 진정시킨 것이다.

이 부분도 참 씁쓸하다.

유대인들은 성전 안에서 바울을 붙잡고는 그를 때리고 죽이려고 끌고 나왔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는 성전 안에서, 성전 앞에서 사람을 해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로마 군인이 들이닥치니깐 그들을 보고는 바울 때리는 것을 멈추게 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율법과 성전을 생명처럼 거룩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로마 군인들을 더 무서워했던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 보다, 칼과 창을 들고 있는 눈앞의 로마 군인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어쨌든 바울이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으니깐 로마 군인들도 당연히 바울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그래서 폭력의 피해자인 바울을 잡아다가 결박했다.

본문 33, 34.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바울이 무언가 잘못해서 맞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때린 사람들에게 무슨 일인지를 질문한다.

그런데 증거도 없이 그냥 이성을 상실해서 바울을 붙잡았던 유대인들은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두서없이 이말 저말을 막 떠들어댈 뿐이다.

잘못된 고발에는 이런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그냥 막무가내로 사람을 끌어내고 때렸는데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예수님도 이런 폭력을 당하셨다.

마가복음 1455, 56.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냥 예수님을 잡으려는 마음만 앞섰다.

그러니 증언이랍시고 자기들끼리도 맞지 않은 말들을 떠들어 댔던 것이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당장 소동의 진상을 알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바울을 붙잡아 결박해서 로마군의 영내에 가두어 두게 된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군에게 끌려가는 내내 유대인들은 바울을 향해 폭언을 내뱉었다.

본문 35, 36.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유대인들 얼마나 난리를 쳤던지 바울을 그냥 데리고 갈 수 없어서 그를 들어서 옮겼던 것이다.

바울은 이미 엄청난 폭행을 당했다.

그러니 그냥 걸어가는 것도 불편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좇아가면서 바울을 없이하라고, 죽이라고 막 떠들어대니깐.

그냥 바울을 들어서 로마군의 영내로 옮겨버린 것이다.

이렇게 바울은 유대인들이 일으킨 소동으로 인해 로마군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오늘 말씀에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선동을 일으킨 자들과 그 선동에 동조한 자들의 정체에 관한 것이다.

선동을 한 자들이 누구인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아시아에 흩어져있었던 유대인들.

그중에서도 에베소에서 바울 때문에 곤란을 겪었던 유대인들이 주동자였다.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에베소 사람들이 바울을 잡으려고 소동을 일으켰을 때.

그때 그리스도인과 자신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눈엣가시 같았던 바울을 잡으려고 거짓말로 사람들을 충동하고 이성을 잃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선동에 선동된 사람들은 누구인가?

먼저는 절기를 지키려고 각지에서 모여든 다른 유대인들과 그리고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었던 비그리스도인 유대인이 그 한 무리일 것이다.

이들 중에는 바울을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전혀 몰랐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바울이 율법과 유대인을 비방했다는 것이고.

거기다가 거룩한 성전을 이방인의 출입으로 더럽혔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이들은 아무런 증거도 없는 그 말을 믿어버렸다.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부정한 모습을 보였다는 말을 듣고는 흥분해서 이성을 잃은 채 바울을 핍박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선동된 자들은 이들이 다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거짓말에 선동되어 바울을 붙잡아 죽이려고 했던 자들 중에는...

야고보가 처음에 말했던 그리스도를 믿는, 하지만 여전히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깐 비그리스도인이 아닌 그리스도인 유대인들 중에서 거짓 선동에 휩쓸려 바울을 붙잡아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예루살렘에 있었던 수만의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은 율법에 너무나 열성적이어서 지도자였던 야고보의 말도 잘 먹히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바울은 율법을 범하는 사람이 아니고,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야고보가 증언해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서원자 네 명을 내세워 결례 비용을 바울보고 대라는, 그래서 율법에 열성인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라는 어처구니없는 방법을 제시했던 것이다.

장로들들이 제시한 방법으로 예루살렘 교회에서 율법에 열성인 성도들과 바울의 갈등이 해소되었다고 보는 목회자들도 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고 있다.

 

율법의 열성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레 동안은 바울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에 의해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자신들처럼 율법의 열성이면서 이방 땅에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바울을 알아보고는 바울이 율법을 업신여긴다고 증언을 하는 것이다.

이방인을 성전으로 끌어들인 것을 자기들이 봤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바울을 붙잡고, 그를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서는 두들겨 패기 시작하는 것이다.

거기에 율법에 열심을 내는 또 다른 유대인들도 동조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율법에 열성인 그리스도인들도 바울이 율법을 어기고, 성전을 더럽혔다는 말에 이성을 잃고 흥분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선동되어 바울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렇게밖에 볼 수 없는 것이.

본문에는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집단 구타를 당하는데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다.

믿는 자가 수만이라는데 바울의 말도 들어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행여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직접 바울 린치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상관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으로 바울이 당하는 고난을 당연하게 생각했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을 핍박하는 것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바울을 돕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말이다.

결코 적은 세력이 아니면서도 바울의 고난을 외면했던 것은 분명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율법과 성전을 향한 열성이 믿음보다 위에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봐야 한다.

 

잘못된 집착을 가졌을 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이런 때는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들과 똑같은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율법에 열성적이고.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여전히 성전에 집착하고.

그러니 믿지 않는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핍박받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이 일을 통해 바울이 로마로 가게 되는, 주께서 인도하시는 선교 여정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잘못된 믿음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믿는 자들이 집착해야 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밖에 없다.

믿는 자들이 열성적이어야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밖에 없다.

주님의 뜻 안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진리를 기억하여서 잘못된 세속의 주장에 동조하는 일이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의 뜻도 아닌 자기 신념에 사로잡혀 진실한 믿음의 사람의 등에 칼을 꽂는 어리석은 일이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오히려 주님의 뜻을 지키기 위해 함께 핍박받고 고난받는 믿음의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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