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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구약)/01 창세기 묵상(I)

깨닫지 못하는 에서.(창세기 27:30-40)

by TwoTalents 2023. 2. 6.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깨닫지 못하는 에서.

 

본문 : 창세기 27:30~40

30.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의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31.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32.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35.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36.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38. 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39. 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40.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묵상 :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친 이삭 앞에 이어서 에서가 등장한다.

갑자기 나타난 에서가 자신에게 마음껏 축복을 해 달라는 것이다.

이제야 이삭은 자신의 의심이 맞았음을 알게 된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인 것이다.

이미 야곱에게 맏아들의 축복을 해 버린 이삭에게는 더 이상 에서에게 해줄 축복이 남아있질 않았다.

에서는 자신에게도 축복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이삭은 그렇게 할 수 없음을 밝힌다.

본문 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는 야곱에게 축복한 것처럼 그냥 에서에게 한 번 더 축복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삭이 장자에게 축복한다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며,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과도 관련된 일이다.

이것은 오늘날 직분이나 역할에 대해 임명 되고, 공표 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삭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영성으로 축복을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의 축복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야곱에게 주어진 장자의 축복을 에서에게 다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아비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에서는 깨달음이 없다.

이삭이 이토록 장자에 대한 축복을 진지하게 여기고 있는데도 에서는 장자권 자체를 너무나도 가볍게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

에서는 장자권을 사고, 판다는 것을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팥죽 얻어먹으려고, 배고파 죽겠는데 그딴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고백했던 사람이다.

그래놓고선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전혀 반성이 없다.

본문 36.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에서는 동생 야곱을 책망하기에 바쁘다.

자신의 부모가 지어준 동생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야곱이 자신을 속였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야곱은 형, 에서를 속인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비 이삭을 속였지, 에서는 아니다.

에서가 주장하는 장자권에 대한 것도 야곱은 자신에게 장자권을 팔라고 제안을 한 것이지, 에서를 속인 것이 아니다.

에서 자신이 배고파서 죽을 것 같다고 엄살을 부리며 흔쾌히 승낙한 일이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장자의 축복도 빼앗은 것이 아니다.

야곱은 자신이 팥죽 한 그릇에 구매한 장자권, 그 장자권에 딸려오는 장자에 대한 축복을 받았을 뿐이다.

단지, 형 에서는 지가 장자권을 팔아 놓고도 곱게 장자의 축복을 양보할 위인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그가 없을 때, 아비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을 뿐이다.

야곱의 행위에 대해 이삭은 화를 낼지언정 에서는 화낼 자격이 없다.

 

이삭은 오히려 축복을 요구하는 에서에게 변하지 않을 사실을 확인 시킨다.

본문 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야곱이 에서의 주가 되고, 에서는 야곱의 종이 된다는 것이다.

이미 이렇게 축복되었기 때문에 이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더 이상의 축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에서가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가슴 치며 후회해야 한다.

그런데 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계속해서 아비 이삭에게 떼를 쓸 뿐이다.

본문 38.

 

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자꾸만 자신에게도 축복해 달라는 것이다.

어쩌면 에서는 장자권 같은 것은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주 가볍게 동생에게 장난치듯이 장자권을 넘겨버린 것이다.

에서가 원한 것은 오직 축복일 뿐이다.

야곱이 장자권을 가져가든 말든 자기는 축복만 받고 잘 먹고 잘살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에서에게 아쉬움이란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 뿐이었다.

 

이삭은 이런 에서가 안타까웠는지 그를 위해 뭔가를 빌어주기는 한다.

그런데 그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내용이 애매하다.

본문 39, 40

 

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이번 일을 통해 마땅히 에서는 장자권을 가볍게 여긴 마음과 그것을 팔아버린 경솔한 행동을 회개하고 뉘우쳐야 했었다.

만약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다면, 비록 장자권은 빼앗겼고 장자로서 받을 축복은 없지만,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회복되고 새로운 비전이 제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직 동생을 향한 분노와 미움만이 있을 뿐이었다.

결국 그는 하나님 앞에서 회복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도 하나님의 역사에 방해 거리가 되어버리고 만다.

 

어떤 일이 사람에게 발생했을 때,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많은 사람들은 그 일 자체에 모든 것을 집중하게 된다.

좋은 일에 기뻐하고, 나쁜 일에는 화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다.

또한 그 일을 통해서 얻게 되는 깨달음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 뒤에 행해질 반응을 어떻게 할 것이냐다.

이것은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 어느 것 하나 나의 믿음과 연관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든, 내 계획이든, 모든 것은 나의 믿음 안에서 처리 돼야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공과 실패 때문에 일희일비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살기를 바라는 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다.

천국을 기다리는 우리에게는 한 번의 성공, 한 번의 실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 번의 성공에서 얻게 되는 믿음의 확신이 중요한 것이고, 한 번의 실패에서 얻게 되는 영적 깨달음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을 통해 다음 번에는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 삶의 방향이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에서처럼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너무 기뻐서 정신없어도, 너무 슬퍼서 힘이 없어도.

그 일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전달되는 주님의 뜻을 찾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사무엘상 3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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