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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구약)/01 창세기 묵상(I)

야곱, 하나님을 만나다.(창세기 28:10-22)

by TwoTalents 2023. 2. 11.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야곱, 하나님을 만나다.

 

본문 : 창세기 28:10~22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묵상 :

어머니 리브가의 말대로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삼촌 라반의 집으로 길을 떠난다.

그러던 중 어느 한 곳에서 유숙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드디어 믿음의 체험을 하게 된다.

본문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비록 꿈이긴 하지만 야곱에게는 이런 체험이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를 통해 들은 것이 전부인데, 야곱이 직접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이다.

본문 13, 14.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셨던 약속의 말씀을 야곱에게도 하고 계신다.

야곱은 장자권과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해 무리를 하면서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실행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이미 선택하셨던 것을 리브가에게 분명히 밝히셨다.

야곱은 그 이야기를 어머니 리브가에게 들으면서 자라났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그것을 직접 확인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함께하실 것과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떠나지 않으실 것을 말씀하신다.

 

앞서 말한 대로 야곱이 이런 영적 경험을 처음 해 본다는 것을 다음 구절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본문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들은 것을 두려워했다.

이것은 말씀의 내용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들은 것 자체가 처음이기 때문에 익숙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두려울 수밖에 없다.

스파르타식이든 방목이든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에게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듣기만 한 것이 전부이다.

이 당시는 성경이 없었다.

하나님에 대한 그 어떤 기록도 없다.

그리고 지금처럼 하나님에 대한 것들이 신학적으로 정리되어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아브라함의 경험과 이삭의 경험을 바탕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것이 전부이다.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진정으로 믿음이 생긴다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직 야곱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지금 자신에게 증거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처음으로 경험한 야곱의 신앙은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다.

아이처럼 순수하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같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야곱은 함께하실 것을 말씀하신 하나님께 이렇게 서원하며 고백한다.

본문 2820~22.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은 지금 만약에의 신앙, ‘IF’의 신앙으로 하나님께 조건을 달고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러이러한 것을 해 주시면, 자기도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시고,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고,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신다면, 그렇게 해 주시면 그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님 되리라고 고백한다.

자신이 가진 것 중에 십 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 주시면, 그에 대한 대가로, 감사로 자신도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보다도 오히려 후퇴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것은 야곱으로서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야곱은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버지 이삭에게 하나님을 전했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유하고 순종적인 이삭이 아들들에게 하나님을 전할 때는 강제성이 없었던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기 때문에 에서가 이방 여인과 결혼할 때도 그것을 막지 못하고 리브가와 함께 근심만 했던 것이다.

부모님에게 말로만 들었던 하나님.

그것도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경험이 전부일 것이고.

무슨 기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체험한 것도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러니 하나님을 경험하고는 두려워서 돌을 기둥으로 세운다든지, 그곳의 이름을 새로 짓는다든지 평소 안 하던 행동을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야곱이 지금이야 아이와 같이 깊지 못한 신앙을 가졌지만, 이런 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야곱은 반드시 믿음이 성장해야 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넘어, 야곱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언가를 해 주셔서가 아니라, 자신을 선택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게 해 주신 것, 그 자체만으로도 영광 돌리고 감사하는 믿음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야곱은 앞으로도 삶 속에서 여러 고난을 겪게 될 것이다.

세상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며 괴로워할 것이다.

자신이 형, 에서를 속였던 것처럼, 삼촌 라반에게 속게 될 것이다.

그런 때에도 야곱은 함께하시는 하나님,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 끝까지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믿음으로 모든 것을 잘 이겨 나갈 때, 야곱은 놀라운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에도 야곱의 처음 신앙,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 낮은 신앙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것이 믿음의 연수가 얼마 안 된 초신자들만의 모습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10, 20년 되었다는 사람들, 교회에서 집사, 장로와 같은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아이가 마트의 장난감코너에서 바닥에 드러누워 그것을 사달라고 울며불며 떼쓰는 것처럼.

기도랍시고 이거 해달라고, 저거 해달라고, 사업 잘되게 해 달라고, 우리 아이 좋은 대학가게 해 달라고 큰 소리로 부르짖는 것이다.

이런 것은 기도도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자기 혼자 원하는 것 요구하며 떠들다가 그냥 끝나버리니 그것이 어떻게 기도일 수 있는가?

 

사람이 태어나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육체는 자라나야 한다.

지적 능력도 자라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영적 능력도 자라나야 한다.

믿음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야 무조건 기도하며 하나님께 어리광을 부린다지만.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계획하심을 하나하나 깨닫게 될 때.

이제는 죄인 된 나를 구원하신 것만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살려주신 것만으로, 그것만으로 진정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러한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는가?

어떠하더라도 주님의 구원하심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가?

모든 상황 속에서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심만으로 예배하고 있는가?

세상 삶에서 필요한 것을 가끔 기도하는데, 그것마저도 잘 들어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을 소망하며 경배하고 있는가?

 

하나님...아버지...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그리 강하지 않는 사람인 것, 연약한 사람인 것.

하나님께서 너무나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잡아주소서.

끝까지 놓지 마소서.

언제나 함께하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41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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