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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111

두 달란트 찬양 묵상 10 - 사랑하는 아이야 [두 달란트 찬양 묵상] 열 번째 묵상... 사랑하는 아이야 나는 39살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차니깐 ‘이제 결혼은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실 여인을 향한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함께 목회 준비를 하던 동료들에게 기도 제목을 나눌 때면 결혼보다 우선적으로 나누는 제목이 있었다. 그것은 자녀에 관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결혼이 늦어지고 나이가 많으니까…. 하나님께서 쌍둥이를 허락하셔서 한 번에 두 명의 아이를 낳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제목이다. 결혼도 못 하고 있는 인간이 쌍둥이라니….^^;; 어쨌든 나는 마흔이라는 나이에 결혼했고, 다음 해에 라온이, 가온이 이란성 .. 2020. 12. 6.
두 달란트 찬양 묵상 9 - 지온이에게... 아홉 번째 묵상... 지온이에게 쌍둥이 이름, 라온이 가온이는 엄마가 작명하였다. 라온이, 가온이 둘 다 순우리말로 ‘라온’은 즐거움, ‘가온’은 가운데를 뜻하는 말이다.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에 가장 공이 큰 사람은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이름을 엄마가 짓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권한 것이다. 그런데 셋째의 이름은 내가 짓고 싶었다. 셋째가 태어나기까지 나름의 사연이 있는데, 아빠의 힘이 컸다는 것을 엄마도 인정한다. 기도 가운데 셋째 이름을 ‘지온’이라고 짓게 되었다. 누나, 형과 함께 ‘온’자 돌림을 하면서 의미 있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지온’은 한자로는 물가 ‘지’에 편안할 ‘온’을 사용하였다. 풀어서 해석하면 ‘편안한 물가’, ‘쉴만한 물가’가 된다. 이는 시편 2.. 2020. 11. 21.
두 달란트 찬양 묵상 8 - 주님께서 보내신 여덟 번째 묵상... 주님께서 보내신 쌍둥이 출산하고 아내는 다음 해에 셋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셋째에 대한 뜻이 없었기 때문에 조절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기쁘긴 했지만, 나와 아내 둘 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실수로 임신했다, 원하지 않았다, 이런 말들을 장난 삼아 했었다. 그런데... 그런 아빠에 멍청한 말을 들어서 일까... 아이의 심장이 뛰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계류유산’ 같다고 하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계류유산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다. 어쨌든 아내와 나는 아이의 심장이 다시 뛰기를 최대한 기다려 보겠다고 의사 선생님에게 말하였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간혹 다시 심장이 뛰는 경우가 있다고 하길래... 하지만 아이의 심장은 끝내 다시 뛰지 않았다. 결국, 아내는.. 2020. 11. 21.
두 달란트 찬양 묵상 7 - 이곳에 모인... 일곱 번째 묵상... 이곳에 모인...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이 찬양으로 건작동의 모든 목회자들을 축복하고 싶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 열왕기상 19장 18절. #두_달란트_찬양_묵상 #이곳에_모인 2020. 11. 7.
두 달란트 찬양 묵상 6 - 그는 예수. 여섯 번째 묵상... 그는 예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다시 하늘로 승천하시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한 곡의 찬양에 담고 싶었다. 처음에는 느린 찬양을 구상했었는데... 예수님의 역동적이고 열정 가득한 삶에는 빠른 비트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리듬감 있는 찬양으로 바뀌었다. 찬양의 가사는 단순하면서도 흔한 가사이다. 가장 기본적인 복음을 어렵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기본에 충실한 이 찬양의 가사가 마음에 든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언제 어느 때라도 주님만을 바라보며, 기본적인 믿음을 지킬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 2020. 11. 7.
두 달란트 찬양 묵상 5 - 다시 만날 때... 다섯 번째 묵상... 다시 만날 때.(1995) 20여 년 전에 전도사 실습을 하게 되면서 모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그때 어릴 때부터 다니던 교회와 헤어지는 마음을 담아 ‘다시 만날 때’라는 찬양을 만들었다. 그런데 친한 친구 하나가 이 찬양을 듣더니 가사 내용이 마치 장례식 노래 같다는 말을 했었다.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다시 불러보니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육체의 죽음을 잠시 잠깐의 이별이라 생각하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는 찬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에 장례식장 몇 군데에서 조문을 하였다. 고인이 되신 분들 중에는 같은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분도 있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함께 예배했던 사람, 함께 주의 .. 2020.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