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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신약)/42 누가복음 묵상(I)

여전히 모르고 있다.(누가복음 9:51-62)

by TwoTalents 2022. 12. 31.

 

 

이미지 출처 - iStock

제목 : 여전히 모르고 있다.

 

본문 : 누가복음 9:51~62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묵상 :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시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일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소개된다.

 

먼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실 것을 결심하시는 장면이 나타난다.

본문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르시기를 결심하시는 것이다.

이제 주님의 때가 가까웠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죽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자신이 인간의 죄를 감당하시고 죽어야 인간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자신이 감당하게 될 고난과 죽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온전한 인간으로 오셨기에 인간이 겪어야 했던 두려움을 주님도 동일하게 감당하셨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시험을 기도와 말씀으로 물리치는 승리를 이루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일행이 예루살렘을 향하는 도중에 지름길인 사마리아를 지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본문 52~56.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예수님과 그 일행의 목적지가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을 알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땅을 지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는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간에 있었던 오랜 반목의 역사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 여기고 그곳에 성전을 지었지만,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 자기들만의 성소를 따로 지었었다.

어쨌든 갈 길을 막아선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야고보와 요한이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러면서 불로 그들이 벌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고 얘기하면서 예수님도 당연히 화를 내셔야 하는 것처럼 주님의 분노를 원하게 된다.

하지만, 예수님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오히려 화를 냈던 야고보와 요한이 꾸중을 듣게 된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를 모르고 막아선 사마리아인들이나, 주님의 사랑의 가르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이나 도긴개긴이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인들의 요구대로 그곳이 아닌 다른 마을을 지나셨던 것이다.

 

이렇게 예루살렘을 향하시던 도중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이들을 만나게 되신다.

본문 57~62.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3명의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명에게는 각자의 상황들이 있었다.

첫 번째 사람은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그저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르겠다고 고백한다.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를 향해 따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가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죽은 자신의 아버지를 장사지낼 시간을 달라고 말한다.

세 번째 사람은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다음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한다.

 

마태복음에서는 첫 번째 사람이 서기관이라고 소개된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서기관은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함께할 밝은 미래를 상상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과감하게 어디라도 따르겠다고 고백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의 고백에 인자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길은 세상에서 말하는, 세상 가치에서 인정하는 성공의 길이 아님을 다시 한번 드러내신다.

 

두 번째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 요구를 허락하지 않으시는 듯한 대답을 하셨을까?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것은 시기와 관련된 문제라고 본다.

만약 이 시기가 예수님의 사역의 초창기나 중반쯤이었다면 예수님의 대답은 달랐을 수도 있다고 본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마지막 사역을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고 계신다.

그런데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다른 것을 우선시하고 그것을 신경 쓰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세 번째 사람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비록 누군가가 죽은 것은 아니지만,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와서 예수를 따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긴박한 하나님의 사역 앞에서 다른 것에 신경을 쓰고 있을 여유가 없음을 분명하게 밝히신다.

두 번째 사람과 세 번째 사람의 차이는 예수님의 부르심인가 아니면 자원한 것인가이며, 그 사람의 걸림이 죽은 가족인가? 살아있는 가족인가? 의 차이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예수님의 사역이 마무리되고 있는 그 시점에서 주님을 따르는 것,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보다 우선시 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예수님을 잘 모르고 있고, 예수님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사마리아인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그 길의 의미를 몰랐다.

제자들도 스승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참된 이유를 몰랐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스스로 고백한 이들도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의 의미를 몰랐으며, 예수께서 따르라고 권고한 이도 주님의 길의 긴박성을 깨닫지 못했다.

 

본문에 나타난 사람들은 예수님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수많은 소문을 들었던 사람들이다.

그중에는 주님의 능력을 직접 체험한 이들도 있다.

가장 가까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주님의 따라오라는 말씀을 듣고 주를 따랐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자기 생각, 세상 속에서 형성된 자기 가치에 매몰되어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본문에 나타나는 사람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주께서 가시는 길을 이해하고 있는가?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주님의 위대한 결단을 이해하고 있는가?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신 그 사명의 긴박성을 이해하고 있는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스스로 가장 낮은 자의 삶을 사셨는데.

대형 교회와 엄청난 재정을 목표로 나아가는 목회자들이.

세상적 성공을 위해 믿음을 이용하는 성도들이.

그런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오늘 주님의 성령이 깊은 깨달음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나의 귀를 여시고, 나의 마음을 여시고, 나의 영을 여시어 참된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깨달은 대로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는 나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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