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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7 절기

[송구영신] 기억.(신명기 5장 15절)

by TwoTalents 2021. 2. 2.

이미지 출처 - Public Domain

 

제목 : 기억.

 

본문 : 신명기 5장 15절.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 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말씀 :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특별히 구약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자주 살펴보게 된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 역사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나라인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렇게 열심히 배우고 암기하느냐는 것도 있다.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스라엘 역사를 너무 깊이 다루는 것에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

신학자들 중에서도 구약 무용론을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비판적인 시각은 구약성경을 인간의 역사, 특별히 이스라엘의 역사서로만 봐서 생기는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구약에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구약이 온전히 인간의 역사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과정을 그린 하나님의 구속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사, 즉 인간을 구속하시는 과정에서 살펴보려면 반드시 인정해야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제사장의 나라로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한 가지에서 메시아가 탄생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이스라엘의 역사로 본다고 하더라도 결코 무가치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되고 이루어 져가는 과정의 롤 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봤을 때, 결코 평탄한 역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민족이라면 어떤 나라보다도 평안하고 복이 넘쳐나야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많은 고난과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전쟁이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른 민족과 전쟁을 치르거나 아니면 자기들끼리 싸우거나.

나중에는 나라가 분열해서 두 동강이가 나기도 한다.

 

가뭄 때문에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만 믿고 지네다가 요셉이 죽고 난 뒤에 400년 동안이나 애굽의 노예로 생활 했어야 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지도자 모세를 따라 간신히 애굽을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으로 인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14일 정도면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못하고 40년이나 광야에서 뱅뱅 돌기만 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그냥 그 땅을 차지한 것이 아니다.

원래 그곳에 정착하고 있던 원주민들과 계속되는 전쟁을 치러야만 했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다가 도리어 자신들이 하나님께 두들겨 맞기도 하였다.

 

왕이 없고 고대국가로서의 틀이 미흡하다 보니 늘 이방 민족에게는 침략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인도해 주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강력하게 원해서 왕을 세우고 국가를 세웠지만, 그것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은 처음과는 다르게 하나님을 배신했고, 그것으로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사울의 뒤를 이어 다윗이 왕이 되고, 그의 아들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잠시나마 이스라엘에 평화가 깃들기는 했다.

하지만 이내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라가 쪼개지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깨달음이 없었다.

그들은 나라가 두동강이 나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중간에 포로귀환도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무너졌던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기도 한다.

하지만 강대국에 지배당하는 식민지의 상황에서는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스라엘은 나라가 멸망한 후에 세계의 강대국이 바뀔 때마다 그 나라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의 속국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스라엘이 나라가 망하고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으며, 때로는 떠돌이 생활을 하며 지냈던 시간은 거의 2000여 년에 이른다.

이 정도면 나라는 물론이거니와 민족 자체가 말살되는 것이 정상이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에는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역사 속에서 등장했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민족 중에서도 지금은 그 자취가 없는 민족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모두 전쟁과 그 전쟁의 패배로 인해 승리자의 지배 속에 놓여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혹 사라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지배를 받는 나라가 원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민족성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이스라엘도 북이스라엘의 경우 앗수르의 민족 융합 정책으로 인해 사마리아라는 혼혈민족을 남긴 채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문화적이나 사회적으로도 자신들의 고유문화와 사회양식을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제에 38년 동안 침탈을 당했던 우리나라는 그 기간의 두 배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 그 잔재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잔재가 아니라 친일의 후손들이 여전히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속국이 되어 지배를 받은 역사는 결코 쉽게 치유되거나 사라지는 역사가 아니다.

어쩌면 영원히 해결되지 못하는 역사일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 한대로 이스라엘은 2000여 년이란 시간을 다른 나라에 지배받고, 속국으로 살아야만 했었다.

상식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완전히 말살되거나, 아님 혼합되어 원래 모습이 희석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2000여 년이 지나서 결국은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게 된다.

비록 북이스라엘은 사마리아라는 혼혈민족으로 남았지만, 남유다의 후손들이 지금의 이스라엘을 세웠고, 세웠을 뿐만 아니라 세기의 강대국으로 우뚝 서 있다.

 

이런 역사는 전 인류 역사를 살펴봐도 이스라엘 민족 말고는 볼 수 없는 기이한 역사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오늘 본문 말씀 신명기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본문은 모세가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 즉 세 편의 설교 중에 두 번째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중에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부분이고, 그중에서도 제 4계명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서두를 너는 기억하라라는 말로 시작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기억할 것을 주문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그들이 애굽의 종이 되었을 때, 강하신 여호와께서 그들을 인도해 내심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구약성경 전반을 거쳐 수없이 등장하는 말씀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2000여 년을 강대국의 지배 속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힘.

강대국의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

화려하고 보기 좋은 다른 민족의 문화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나라, 제사장의 나라로서의 문화를 지킬 수 있었던 힘.

그것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했었기 때문에 스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나라를 빼앗긴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할 수 있었다.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구원하실 메시아를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기억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이스라엘이 언제나 하나님을 기억하고 인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항상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회복할 수 있었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말씀 마무리.

오늘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서 그들이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해서 회복되고 재기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았다.

그 이유는 기억하는 것이었다.

바로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셨고 인도하셨다.

그렇게 이스라엘 민족은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주님을 기억함으로 어려움과 힘듦 속에서 회복 되어질 수 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으로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된다.

내가 여덟 번 넘어졌다고 하더라도, 주님을 기억하는 것으로 여덟 번 일어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기억하는 것으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나타내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2020년을 돌아보면서 무엇이 기억하는가?

1년 내내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썼던 기억을 하는가?

사람들을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움츠렸던 기억을 하는가?

저는 개인적으로 정확지는 않지만, 대면 예배보다 비대면 예배가 많았던 것 같고...

그래서 본당에서 혼자 침 튀기며 설교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사회적인 상황이 어떠했든지 나름의 행복한 일도 있을 것이고, 슬픈 일도 있을 것이다.

어떤 기억이든지 내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것들이 될 것이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먼저 기억되는 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시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우리는 한 해 동안 주님과 함께했던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한다.

코로나로 온 나라가 힘들었지만, 주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셨다.

나에게 주셨던 주님의 사랑, 위로, 은혜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도 만나지 못하고, 활동에도 제약이 있었지만,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위로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때로는 책망과 징계의 말씀을 주셨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마저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2020년의 마지막은 주님을 기억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면서, 2021년의 새로운 시작 역시 주님을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그저 과거를 추억하고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하신 주님을 기억하는 것으로, 지금도 여전히 함께하시는 주님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 기억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2021년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과 가장 깊은 관계를 맺게되는 귀한 날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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