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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0 베드로, 고난을 논하다-베드로전서(I)

택하신, 왕 같은, 그리고 거룩한...(베드로전서 2:1~10)

by TwoTalents 2023. 11. 19.

 

 

제목 : 택하신, 왕 같, 그리고 거룩한...

 

본문 : 베드로전서 2:1~10

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말씀 :

베드로는 1장에서 산 소망과 산 소망에 합당한 삶에 대해 가르쳤다.

오늘 본문에서는 산 돌 되시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백성 된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 전하게 된다.

 

먼저 베드로는 성도의 성장에 관해 이야기한다.

본문 1, 2.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아기는 너무나 귀엽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동물들도 어린 새끼는 너무나도 예쁘고 귀엽다.

어떤 때는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이 너무 아쉽기도 하다.

그래서 농담으로 그대로 쭉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엄마, 아빠가 있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 아이가 성장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있는가?

그런 부모는 없다.

아기는 성장하여야 한다.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도, 성장하지 않고 계속해서 아기의 모습으로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아이는 더 이상 부모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그저 걱정거리일 뿐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이는 자라나고 성장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아기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엄마의 젖이다.

아기가 성장하기 위해서 엄마의 젖을 먹어야 한다.

오늘 본문에 엄마의 젖이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했지만, 분유도 마찬가지이다.

모유가 됐든, 분유가 됐던 아기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자라나게 된다.

그렇다면 모유든 분유든 아이가 그것을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때에 맞게, 배고플 때 그것을 달라고 아기가 소리 내어 우는 것이다.

아기가 울면 크게 두 가지 경우이다.

배설로 인해 기저귀를 불편하던가, 아니면 배가 고프던가.

아기가 배고픈데도 울지 않으면, 아이에게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지 유심히 살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믿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믿음도 성장하여야 한다.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그때 그 모습, 그러니깐 새신자, 초신자와 같은 모습으로 10, 20년 계속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렇게 되면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걱정거리가 되는 것이다.

믿음은 성장하여야 하고,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신령한 젖을 먹어야 한다.

또한, 갓난아기가 젖을 사모하며 그것을 먹기 위해 우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믿음의 사람들도 신령한 젓을 사모하고 그것을 먹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는 아기와 같은 배고픔과 갈급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영적인 배고픔과 갈급함으로 신령한 젖을 달라고 울어야 한다.

 

그런데 아기가 젖을 먹는다고 무조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은 아니다.

젖을 먹기는 하는데, 아기에게 맞지 않는 다른 것을 함께 먹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오히려 아기의 성장에 방해가 될 뿐이다.

방해만 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에도 맞지 않는 엉뚱한 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

아기가 성장하는 것에 해가 되는 요인이 있듯이,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믿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을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모든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이라고 전한다.

그러한 것들이 영적 성장을 저해하고, 심하면 영을 죽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함을 가르친다.

이러한 것을 버리지 않고는 아무리 신령한 젖을 먹는다고 해도 믿음은 온전한 모습으로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혼을 살리고 믿음을 성장하게 하는 건강한 신령한 젖은 무엇인가?

본문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베드로는 신령한 젖을 주의 인자하심이라고 말한다.

본문의 인자하심은 헬라어로 크레스토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좋은’, ‘친절한’, ‘자비로운등의 뜻을 가진다.

그러니깐 주의 좋으심’, ‘주의 친절하심’, ‘주의 자비로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주의 인자하심은 주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주의 사랑의 결정체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또한, 말씀으로 복음을 전하시고 가르치셨다.

그렇기 때문에 신령한 젖은 예수 그리스도 자체이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는 바울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리스도인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 신령한 젖인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경험하여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적당량을 매일매일 사모하고 꾸준히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아이가 이틀 치 젖을 한꺼번에 먹고, 다음 날은 종일토록 굶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 아이는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말씀을 한 번에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한다.

매일 매일 꾸준히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날마다 Q.T 하는 것이 너무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믿음 안에서 성장해야 하는 성도는, 또한 교회로, 믿음의 공동체로 세워져야 한다.

본문 4, 5.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

마치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예수를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베드로는 유대인이 버린 돌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다고 말한다.

예수님을 보배로운 산 돌이 되게 하셨다고 선언한다.

이제 성도는 산 돌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신령한 집을 세우라고 전한다.

신령한 집이 무엇인가?

본문의 은 헬라어로 오이코스로 성전을 가르칠 때 종종 사용되는 단어이다.

하지만 본문의 신령한 집은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건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신령한 집은 바로 교회, 신앙공동체가 세워져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 신령한 집을 통해 주님을 향한 신령한 제사가 드려져야 함을 전하고 있다.

신령한 제사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성전인가?

화려한 건물인가?

그렇지 않다.

신령한 제사를 위해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는 사람, 바로 예배자가 필요한 것이다.

요한복음 421~23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참된 예배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어떤 장소나 건물이 아니다.

참된 예배를 위해서는 참된 예배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참된 예배자를 찾고 계심을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으로 성장한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 공동체로 모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이들의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제사장이 제사를 위해 자신의 거룩함을 지켰듯이, 성도는 자신의 거룩함을 지켜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거룩함을 위해 직접 회개하고,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직접 거룩한 삶을 사는 것으로, 직접 거룩한 산 제사를 하나님께 올려야 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렇게 산 돌 되신 예수님과 거룩한 제사장으로 신분이 변화된 성도를 강조하기 위해 성경, 즉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본문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이 말씀은 이사야 2816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이사야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보배로운 모퉁잇돌임을 나타내며 그를 믿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돌은 믿는 자들에게는 기쁨이요 생명이 된다.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본문 7, 8.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것이다.

하지만 복음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부딪치는 돌, 걸려 넘어지는 바위가 되신다.

같은 사랑, 균등한 은혜이지만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근거로 예수님은 생명이 되시기도 하고, 심판이 되시기도 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로 기회는 주어졌다.

그다음은 인간이 선택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살리시는 모퉁잇돌이 되시느냐? 부딪치고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이 되시느냐? 이것은 인간의 믿음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주님을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제사장으로 신분이 바뀌게 되었다.

이제는 실제로 그 신분에 맞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본문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께서 우리를 택하신 족속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아주신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인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를 세상에 선포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나를 높이시고 살리신 주님의 신비한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택하신 족속의 삶을,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거룩한 나라의 삶을,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자들의 삶,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우리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거룩함이 전파될 수도 있고, 우리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찮은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분명하게 선포한다.

본문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믿는 자들은 변화된 신분을 확실하게 자각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의 과거와 같은 삶, 내가 주님을 믿지 않았을 때의 삶과 똑같은 삶을 사는 불신자들을 긍휼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을 향해 말로, 행동으로, 삶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여야 한다.

그것이 먼저 은혜를 받은 자들의 의무이고 책임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믿는 자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복음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존재 자체가 복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변화된 모습, 나의 변화된 삶, 나의 변화된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 삶의 이유가 나에게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산 돌 되신 예수님께서 택하신 족속이다.

주께서 세우신 왕 같은 제사장이다.

주님이 함께하기 원하시는 거룩한 나라이다.

세상을 위해 특별히 세우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그런 우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 거룩한 삶을 통해, 참 소망을 품은 삶을 통해.

인간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 전파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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