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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0 베드로, 고난을 논하다-베드로전서(I)

세상 권력에 대하여...(베드로전서 2:13-17)

by TwoTalents 2023. 12. 3.

 

 

제목 : 세상 권력에 대하여...

 

본문 : 베드로전서 2:13~17

13.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말씀 :

베드로는 오늘 본문 바로 앞부분에서 이 땅의 삶이 믿는 이들에게는 나그네의 삶과 같은 것이라고 가르쳤다.

말 그대로 지나가는 삶이고, 최종적인 목적지는 따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지나가는 곳이고, 목적지는 따로 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그냥 막살아도 되는 것 아닌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세상이 지나가는 곳이라는 것, 목적지가 따로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세상 이후에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927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세상 삶이 끝나면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927절의 심판크리시스라는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결정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재판을 하게 되면 판사의 판결이 주어진다.

그 판결에서 유죄냐, 무죄냐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 그 사람이 교도소로 갈 것인지, 아니면 자유의 몸이 되어 세상으로 나갈 것인지가 또 결정되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새롭게 주어진 삶이 이와 같다.

육체의 삶은 끝이 났지만, 영혼의 삶이 기다리는 것이다.

심판을 통해 영혼의 삶이 어디서 이루어질 것인지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이 심판을 통해 누군가는 어두움으로 떨어질 것이고, 누군가는 빛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심판이 누구에 의해서, 어떤 기준으로 진행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인간의 육체적 죽음 이후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기준으로 심판하실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한 이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믿음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고, 없고가 어디에서 나타나는 것인가?

그 믿음은 이 세상 삶에서 드러나게 된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통해 내가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주의 뜻을 이루려는 사람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삶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결코, 막살아서는 안 되된다.

오히려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자신의 서신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오늘 본문에서는 국가라는 제도에서 세상 권력을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를 설명한다.

우리의 진정한 왕은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의 제도적인 국가와 권력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가?

어차피 천국에 갈 것인데, 세상의 법과 질서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맞지 않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앞서 말 한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비록 나그네의 삶을 사는 성도들이지만, 그럼에도 이 땅의 국가와 권력자에 대하여 가져야 할 합당한 삶의 자세를 이렇게 설명한다.

본문 13, 14.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먼저 베드로는 세상의 제도와 권력에 순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의 제도와 권력에 순종한다는 것은 세상의 제도와 권력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발전해온 국가와 권력과 같은 제도를 인정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인간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구축된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해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베드로는 모든 제도에 순종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오직 주를 위하여,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이다.

인간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형성된 것이지만, 결국 그것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혹시라도 세상에서 합의로 이루어진 합당한 제도가 있는데, 그것을 믿는 자들만 거스르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하나님의 이름이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개인을 향한 비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교회를 경멸하고, 하나님을 향해 손가락질할 것이다.

그렇기에 믿음의 사람들은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사회의 질서에 역행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경계하고 경계하여야 한다.

 

하지만 권력의 순종함에도 베드로는 분명히 전제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 권력이 합리적이고 정직한 권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악행 하는 자에게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에게는 포상하는 온전한 권력이어야 한다.

악행 하는 자를 징벌하는 것은 법치주의와 사회적 질서가 제대로 잡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행하는 자에게 포상이 주어지는 것은 착한 일에 대해 잘했다고 칭찬하는 나라, 선함을 존중하는 나라, 도덕과 윤리가 바로 선 나라라는 말이다.

 

만약 악행 하는 자를 포상하고, 선행하는 자를 징벌한다면 그 권력을 정직하고 합당한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실제로 나라가 그 모양이라면, 그런 나라를 위해 누가 최선을 다하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잘못된 권력에 순종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권력에 빌붙어서 그들의 악행에 그리스도인이 동참한다는 것은 주님을 위한 것도 아니고, 내 이웃을 향한 사랑도 아니다.

악행 하는 권력에 빌붙는 것 자체가 바로 악행이다.

 

베드로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향해 세상에서의 선행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선행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선행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본문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너무나도 확실한 선행이 이루어져서 비난하려는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한 행동으로 혹시라도 있을 억지스러운 주장에 책잡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서 무엇이 참된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인지 이미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피폐해진, 그런 인간들의 판단을 신경 쓰라는 말이 아니다.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의 중상모략을 사전에 막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애초에 트집 잡히고 흠이 될만한 행동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성도들은 세상의 눈을 너무 의식하지 않고 있어서 문제이다.

오히려 세상이 잘못했다고 가르쳐 줘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 버린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난하기 이전에 이미 교회가 하나님을 범죄의 주동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면서 세상의 비판과 비난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들 뜻대로,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하고 있다.

결코, 하나님의 뜻도 아닌 잘못을 저지르면서, 하나님의 영광도 가리고,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삶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받은 자신의 자유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주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자유가 무엇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헛소리일 뿐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리스도인으로 주어진 자유마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문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믿는 자들의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죄를 막 저질러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죄를 저질러도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과거, 현재는 물론 미래의 죄까지도 다 깨끗함을 얻었기 때문에 내 맘대로 막살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죄로부터의 자유는 이제는 더 이상 죄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죄를 지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 땅에서 잘 살려고 하다 보면, 다른 사람보다 위에 있어야 한다.

내가 이익을 얻고 잘 사는 만큼,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못살 수밖에 없다.

그러한 경쟁 구도 속에서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그를 짓밟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상처를 받고, 짓밟힐 수도 있다.

그렇게 반복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경쟁하듯이 죄를 짓다가 끝내는 모두가 죄의 종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믿는 자들은 베드로의 말처럼 이 땅에서 그저 나그네일 뿐이다.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나라, 천국을 소망하며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 땅에서 더 잘살려고 남을 밟고 일어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남에게 상처를 주고,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이길 이유가 없다.

그저 지나갈 이곳이기에 죄를 지을 필요가 없고, 죄에 붙잡혀 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죄를 안 지어도 되는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그 믿음이 한결같다면 우리는 이미 천국이 허락된, 이 땅이 아닌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이다.

 

오히려 베드로는 믿는 자들에게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말한다.

자신의 자유함으로 스스로 종이 될 것을 권고한다.

종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하듯이 세상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한 섬김을 베드로는 이렇게 전한다.

본문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먼저 모든 인간을 공경하는 것이다.

공경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존중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그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제가 오프라인에서 목회할 때, 성도들에게 부탁드렸던 말이 있다.

저를 존경하지 말라는 것이다.

저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반드시 존중하시라고 말씀드렸다.

말씀을 맡은 자로 예배를 진행하는 자로 존중하시라는 것이다.

이것은 목회자로서 권위를 세워달라는 말이 아니다.

권위를 세워주는 것은 저를 위한 것이지만, 저를 존중하시라는 것은 제가 아닌 교회를, 성도를 위한 것이다.

인간을 향한 존중이 없다면 결코 사랑도 있을 수 없다.

존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 거짓말이다.

믿는 자들은 사람들을 사랑하기에 앞서 그들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여야 한다.

본문의 형제는 가족 공동체의 형제, 자매와 신앙공동체의 형제, 자매를 다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형제, 자매가 될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마음이다.

이 당연한 마음이 혹시라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세 번째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본문의 두려워하는 마음은 경외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으로 따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분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왕을 존대하는 것이다.

이는 13절에 언급한 합당한 권력과 제도에 대하여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올바른 권력에 대해서 그들에게 부여된 제도적 권력에 순종하면서 사회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는 분명하게 다른 것이다.

경외함이 아니다.

권력을 향해서 두려움을 갖는다면, 사회 질서와는 상관없이 힘 있는 자들에게 무조건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다.

권력을 향한 두려움 클 때, 혹시라도 그 권력이 악을 행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위해 사회 질서를 오히려 망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잘못된 권력에 두려움으로 머리 숙이고 그들을 지지할 것인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 순간, 잘못된 권력과 똑같은 죄악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오늘 베드로는 세상 권력에 대해서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권력에 순종한다는 것은 단순히 모든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권력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사회의 정의와 질서에 합당하여야 한다.

그런 권력에 순종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순종하며 사회 질서를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는 것이다.

만약 잘못된 권력이 세상을 어지럽힌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도 그 권력에 순종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교회는 불의한 권력을 향해 진리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세상 권력에 순종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세상 질서를 무너트리고 자기들 배만 채우기 바쁜 그 어떤 세력과도 타협할 수는 없다.

 

오늘 하나님께서 세상 권력에 대한 바른 깨달음을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가 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지금도 이 나라의 권력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누구를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 철저하게 감시하고 살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래서 엉터리 권력 앞에서의 방관자가 아니라, 올바른 권력이 세워지는 나라, 권력이 참되게 행사되는 나라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노력하고, 행동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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