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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19 호흡이 있는 자마다(시편)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시편 22:1~21)

by TwoTalents 2020. 5. 25.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본문 : 시편 22:1~21

1.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 시나이다

3.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12.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 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 이다

 

말씀 :

시편 22편은 신약의 예수님과 연결되는 대표적인 시이다.

이 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사역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오늘은 시편 22편을 메시아의 사역과 연관시키지 않고, 단순히 다윗의 시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시편 22편의 표제는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아얠렛샤할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있다.

아얠렛샤할’(אילתשחר)이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단순히 단어적 뜻에 있어서 아얠렛’(אילת)은 사슴이라는 뜻이고 샤할’(שחר)은 새벽이라는 뜻으로 아얠렛샤할새벽의 사슴이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새벽의 사슴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단지 시의 내용으로 보아서 아마 슬픈 상황에서 노래할 때 사용하던 곡조이거나 아니면 악기의 종류 중 하나가 아닌가 하고 예상될 뿐이다.

본 시는 다윗이 사울 왕에게 박해를 당하며 온갖 수난을 겪던 상황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시편 21편은 전체를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21절까지는 다윗의 고뇌에 찬 기도와 자신에게 닥친 끔찍한 고난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함을 고백한다.

22~31절까지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회중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오늘은 1~21절까지를 나눌 것이다.

 

먼저 다윗은 자신의 슬픈 마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본문 1, 2.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윗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에게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으신다.

다윗은 이런 상황을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평생을 하나님만을 의지했던 다윗이다.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골리앗을 향해 나아갔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여 다윗은 만만이라는 칭송을 받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 침묵하고 계신다.

다윗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큰 고통은 있을 수 없다.

직접 닥친 고통보다 그것 때문에 기도하는데 잠잠히 계신 하나님의 침묵이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다윗은 그 옛날 응답하셨던 하나님을 추억하며 고백한다.

본문 3~5.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았던 조상들의 역사를 기억한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치시고 그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하지만 그때에도 이스라엘이 돌이켜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어 그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다.

주님의 함께하심으로 더 이상의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셨던 것이다.

 

다윗은 지금 자신의 처지가 대적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본문 6~8.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대적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사람도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은 하찮은 벌레에 지나지 않으며, 사람들의 비웃음과 멸시를 오롯이 감당해야만 했다.

그런데 대적들은 다윗을 멸시하면서 여호와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다윗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이 영광 받지 못하고 오히려 함께 조롱거리가 되는 현실이 다윗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래서 다윗은 어릴 때부터 함께하신, 자기에게 있어서 평생의 하나님이 되심을 잊지 마시길 간절히 호소한다.

본문 9~11.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다윗은 자신이 출생의 순간부터 하나님께 맡겨진 존재였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지금 그는 커다란 고난 중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마저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의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멀리하지 마시기를 간절히 간구한다.

하나님 말고는 환난 날에 다윗을 도우실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다윗은 급박한 원수들의 공격과 위협을 이렇게 표현한다.

본문 12~18.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다윗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있다.

사방이 적들이고, 강한 적들은 마치 부르짖는 사자와 같이 다윗을 노리고 있다.

그런 대적들 앞에서 다윗은 연약한 밀랍 인형과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만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다윗을 주님께서 그저 죽음 앞에 버려두시는 것만 같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전환 된다.

이런 반전은 시편 13편에도 등장하였다.

다윗의 많은 시가 이런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도 설명하였다.

본문 19~21.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다윗의 탄식시에 자주 등장하는 절박한 상황 중에서 낙심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다윗의 기도 장면이 언급되고 있다.

다윗은 절망의 끝까지 치달았다가 다시 힘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찾기 시작한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결국 이런 다윗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믿는 사람들도 스스로 이해하기 힘든 고통에 처할 때가 종종 있다.

왜 그런 자신이 겪어야 하는지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실수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원망하며 하나님께 따져 물을 것인가?

아니면 알 수도 없는 고통의 이유를 찾으려고 고민하며 분석면서 스스로의 고통을 가중시킬 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경험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우리의 작은 지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신비한 뜻 앞에 맞닥뜨려야 할 때가 너무 많다.

어떤 때는 나의 고통을 위로한답시고 어쭙잖은 신앙 용어를 사용하며, 기도가 부족하다고, 회개가 부족하다고, 더 봉사해야 한다고, 더 많이 섬겨야 한다고 사랑을 가장한 조롱을 하는 이들도 있다.

욥의 친구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말은 나를 더 좌절하게 할 뿐이다.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바는 명확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선택해야 할 최선의 방법은 겸손함으로 주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이다.

그 방법밖에 없다.

다윗의 시에는 절망 가운데에 있다가 갑자기 확신의 고백으로 급반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오늘의 시편인 22편도 그러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저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고, 간구했던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불현듯 깨달음을 주신 것이라고 믿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없고, 많은 사람들이 위로하여도 더 고통스러울 뿐이지만.

기도 중에 임하신 성령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다.

내 상황이 어떠하든지, 지금 무슨 고통을 당하고 있든지.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변함이 없고, 지금도 함께 하심을 확신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이다.

 

한마음 신앙공동체의 신앙이 이런 다윗의 신앙과 같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울며불며 떼쓰는 것으로 해결 받는 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이제는 성숙한 믿음으로 세상의 고통은 이겨낼 수 있는 장성한 신앙인으로 자라나길 주님의 이름을 기도드린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것 같다고 고백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나님만이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다고 고백하였다.

오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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