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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19 호흡이 있는 자마다(시편)

신앙공동체.(시편 20편)

by TwoTalents 2020. 5. 22.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신앙공동체.

 

본문 : 시편 20편

1.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4.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5.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6.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7.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말씀 :

시편 20편은 해석이 상당히 난해한 시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개역 개정이나 개역 한글, 그리고 공동 번역, 새 번역이 조금씩 다른 뉘앙스로 시편 20편을 번역하고 있다.

오늘은 제가 지지하는 해석을 따라 본문을 나눌 것이다.

 

시편 20편은 다윗의 시라고 표제로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이 시를 지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처음 시작되는 시의 화자가 다윗이 아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1~5절까지 백성이 하나님과 왕 사이에 서서, 2인칭 단수인 라고 지칭되는 을 향해 말하고 있다.

그러니깐 백성이 화자이다.

백성이 왕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 1~3.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전쟁에 임할 왕을 위해 백성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나라가 곤경에 처했을 때 왕은 당연히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왕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백성의 바람이 고백 되고 있는 것이다.

백성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성소에서부터 왕을 도와주시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왕의 모든 소제와 번제를 기억하고 받아 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하나님께서 소제와 번제를 기억하고 받아 주신다는 것은 그 제사가 정결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제사를 드린 왕과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실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왕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것이다.

본문 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전쟁에 참여하는 왕이 가진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그 마음의 소원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음이 분명하다.

백성들은 그 소원이 이루어지고 왕의 계획대로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백성들은 왜 왕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가?

왕의 승리가 곧 자신들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본문 5.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본문의 승리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예슈아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예수님의 그 예슈아로 구원을 의미한다.

대적들로부터의 구원을 받는다는 것인데, 그것은 곧 승리를 뜻한다.

왕의 구원, 왕의 승리는 모든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승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백성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승리의 깃발을 세우게 될 것이다.

백성들은 전쟁을 앞두고 승리를 위해 기도할 다윗왕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이렇게 왕을 위한 백성들의 중보가 그려진 다음에 6절에서는 화자가 바뀌게 된다.

본문 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본문의 구원하시는은 히브리 문법상 완료 시제이다.

전쟁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승리하였음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내가 아노니라고 고백한다.

화자의 인칭이 바뀐 것이다.

1~5절까지는 기도의 주체가 1인칭 복수였다.

바로 이스라엘의 백성인 것이다.

그런데 6절에서는 1인칭 단수로 사용되었다.

복수의 화자에서 단수의 화자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바뀐 화자, 이 개인의 화자는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많은 학자들이 6절의 화자를 성소에서 회중의 기도를 다 들은 대제사장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갑자기 대제사장이 출현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뜬금없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백성의 기도를 다 들은 다윗왕이라고 해석한다.

지금까지 백성의 기도는 전쟁에 참여할 자신들의 왕, 바로 다윗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이어서 다윗 왕 자신이 고백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6절의 화자가 누가 되었든지 중요한 것은 그와 백성들의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 중에도 왕과 이스라엘이 의지해야 할 이는 오직 하나님뿐임을 다시 한번 고백한다.

본문 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병거은 당시의 아람 연합군의 병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는 병거와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주로 산지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말을 사용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러니깐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를 적군들은 병거와 말을 의지하여 이스라엘을 쳐들어온다.

지금으로 치면 최신식 무기를 가지고 침략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오직 여호와를 의지할 뿐이다.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참전하시어 그들이 의지하는 병거와 말을 철저하게 멸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윗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에게 있어서 전쟁은 단순히 사람들의 다툼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전쟁을 하나님을 위한 성전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과 다윗 왕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을 확신한다.

본문 8.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병거와 말을 의지하는 적군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확신함으로 노래한 다음, 그 모든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간구하는 것으로 시편은 마무리된다.

본문 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이 고백이 바로 시편 20편의 주제이다.

앞에서 이미 이 주제를 다룬 다윗은 결론 부분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부를 때에’, 즉 환난 날, 곧 임박한 전쟁의 때에 하나님께서 왕을 승리로 이끄시는 것으로 백성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말씀 마무리.

시편 20편은 전쟁에 참전하기 전에 왕과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께 승리를 간구하기에 알맞은 찬양이며 기도이다.

아마 다윗은 당대는 물론 이후에도 전쟁 전에 온 백성이 함께 시편 20편을 찬양하기 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시편 20편과 같은 형식을 취하였을까?

그러니깐 다윗 자신이 지은 시인데, 왜 백성들을 우선적으로 화자로 내세워 백성들이 왕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으로 시작한 것일까?

이것은 하나님이 다윗 개인만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이며,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졌지만.

하나님은 엄연히 이스라엘 전체를 선택하시고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다윗 한 사람을 위해 싸우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을 위해 전쟁에 참여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하여야 하고, 이스라엘이 승리하여야 하는 것이다.

다윗은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백성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또한, 다윗 자신에게도 백성들의 기도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었다.

왕인 자신을 위해 중보하는 백성들의 기도는 이제 곧 전쟁을 치를 다윗에게 너무나도 큰 힘과 격려가 되어 주었다.

적군에게서 구원을 이루는 것, 전쟁에서의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될 수 없다.

다윗의 간구와 백성들의 중보 기도, 거기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씀이다.

교회는 목회자 한 사람의 기도와 간구로 유지될 수 없다.

몇몇 중직들이 열심을 낸다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모든 성도가 함께 기도하여야 한다.

신앙공동체 전체가 말씀을 맡은 목회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각 기관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특별히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이 지역 사회에서의 역할을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기도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승리하고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교회라는 이름, 신앙공동체라는 이름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믿음은 분명히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교회를 통해,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약 성경으로 주어진 복음서와 서신서는 몇몇 개인 서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교회라는 신앙공동체에 주어진 것이다.

성경은 반복적으로 교회를 이야기하고, 공동체를 바로 세울 것을 주문하고 있다.

교회가 주님의 모습을 닮고, 교회가 천국의 모습을 나타낼 때까지 모든 성도들은 끊임없이 기도하고,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바라시는 교회의 모습이다.

한마음 신앙공동체 안에는 결코 영적 외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영적 아웃사이드가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이름 그대로 모두가 한마음 되어서 주를 위한 신앙공동체로 다 함께 바로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여러분 우리는 교회이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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