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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19 호흡이 있는 자마다(시편)

여호와여 돌아오소서.(시편 6편)

by TwoTalents 2020. 5. 6.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본문 : 시편 6편

1.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5.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8.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9.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말씀 :

오늘 본문은 시편 6편의 말씀이다.

개역 한글 성경의 표제에는 다윗의 시, 영장으로 현악 스미닛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있다.

이것을 개역 개정 성경에는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라고 번역하였다.

영장은 인도자나 지휘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스미닛은 음악 용어로 8번째를 가리킨다.

아마도 여덟 개의 줄을 가진 현악기일 것으로 추측된다.

 

시편에는 일곱 편의 대표적 참회시가 있다.

시편 6, 32, 38, 51, 102, 130, 143편 등이다.

오늘의 본문인 시편 6편이 이에 속하는데 다윗의 회개시이다.

다윗의 회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직접 혹은 간접적인 징계가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깐 징계로 받은 육체의 질병이나 심리적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다윗은 시편 6편을 통해 자신의 범죄를 철저하게 회개한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는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시편 6편의 배경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던 것에 대한 회개라는 주장이 있고, 시편 3편과 같은 배경으로 압살롬 반란 때 고백 된 시라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시편 6편은 지금 깊은 병 가운데 있는 다윗이 드리는 기도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는 영혼까지 떨리는 고통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자신을 고쳐주시기를 기도한다.

본문 1~3.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바라보는 다윗의 이해이다.

시편 6편에는 죄에 대한 고백이나 회개의 내용이 나타나 있지 않다.

다윗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단지 자신의 질병과 고난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자신의 질병과 고난을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물론 현대의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모든 질병과 고난이 무조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본문은 구약시대이다.

어제 말씀에서 언급했듯이 지금과 똑같은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질병과 건강의 문제를 비롯한 인간의 모든 문제가 유일하신 하나님에게 달려있다고 다윗은 믿고 있다.

이것은 인생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함께하고자 하는 다윗의 진지한 신앙으로 보아야 한다.

실제 다윗은 그런 개념으로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다.

다윗은 철저하게 인생의 주관자를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다윗은 자신이 죽음 직전의 상황에 있다고 느끼고 있다.

본문 4, 5.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여기서 다윗은 자신이 죽으면 하나님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호소하며 떠나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돌아와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4절에 사용된 돌아와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 성경에는 슈브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관계회복이란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깐 다윗이 하나님께 자신에게로 돌아와 달라는 간구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윗은 지금 질병으로 인해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에게 드리워졌음을 느끼고 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된 이유를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죄에 대한 징계로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셨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의 용서하심을 간구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인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만지신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다윗의 원초적인 믿음의 고백이다.

 

다윗의 고백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간절했던지 그는 질병 가운데에서 탄식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는 탄식함으로 지치고, 밤마다 눈물로 침상과 요를 적신다고 고백한다.

본문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여기서 침상을 띄우며라는 표현은 히브리 원어로 싸하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이다.

그 뜻은 수영하다’, ‘침수시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윗이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던지 눈물에 침상이 푹 젖어서, 침상에서 수영할 정도, 침대가 침수될 정도라는 것이다.

다윗이 그만큼 간절하게 눈물 흘리며 하나님께 간구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육체의 질병보다 더 큰 고통을 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대적들이었다.

본문 7절 말씀.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어려움을 더 어렵게 만들고, 고통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고통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질병에 대해서 이런저런 자기 말을 쏟아내며 비난과 조롱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다윗은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종종 있다.

욥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도 같은 맥락의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회복하심을 바라고 기대하고 있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바로 내 안의 근심과 더불어 나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 친척, 친구일 때가 너무나 많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하고 담대해야 한다.

내가 잘못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맞다면.

내 속에서 나 스스로를 책망하는 비난의 소리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소리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나의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서 들리는 책망의 소리로 인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회복에 대한 확신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본문 8~10절까지를 읽어 보겠다.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시편 6편은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시인의 확신으로 마치고 있다.

하나님은 믿음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다.

아무리 힘든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모든 문제의 해결을 하나님께 구할 때,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이다.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분석력으로는 나에게 일어나는 문제의 근원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문제의 근원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그저 온갖 증상들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슬퍼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통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주관자 되심을 기억하고 고백하여야 한다.

또한,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

죄로 인한 육체의 고통과 죄의 회개로 인한 육체의 고통은 구분되어야 한다.

시인은 후자의 고통을 말해주고 있다.

죄로 인한 고통이 있다면 먼저 죄를 해결해야 한다.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죄는 더욱 깊어져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뿐이다.

하지만 죄를 회개하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고통이라면, 우리는 그 고통을 기쁨으로 감당하여야 한다.

우리를 십자가 앞에 서게 하여 우리를 낫게 하는 고통이다.

그 고통은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고통을 허락하셨지만, 고통으로 인해 다윗을 더욱 간절하게 하셨다.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간구할 수 있는 깨달음을 주셨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소망을 품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때로는 내가 나에게 실망할 수 있다.

어떤 때는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매몰찬 비난을 받을 때도 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여전히 변함없으신 주님은 나와 함께하고 계신다.

내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구할 때, 지금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기를 소망한다.

나의 고통으로 인해 나를 낮추시고, 겸손하게 하신 주님의 아름다운 사랑을 기억하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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