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치는 자의 소리/19 호흡이 있는 자마다(시편)

억울합니다.(시편 7편)

by TwoTalents 2020. 5. 7.

이미지 출처 - 벧엘 성결교회 홈페이지

제목 : 억울합니다.

 

본문 : 시편 7편

1.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2.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3.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5.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6.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7.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8.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9.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 하시나이다

10.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 하셨도다

13.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14.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15.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17.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 다

 

말씀 :

오늘 읽은 시편 7편의 표제는 이렇게 되어있다.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

 

식가욘이라는 단어는 슬픈 노래, 애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니깐 격렬한 표현된 슬픈 감정으로 지어진 시를 의미한다.

다윗이 그러한 심정에서 시편 7편을 썼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다윗이 이렇게 격렬한 흥분으로 호소하듯이 시편 7편을 쓴 이유는 베냐민 사람 구시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베냐민인 구시라는 사람이 다윗에게 어떠한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조금 전 표제에서 읽었듯이 그 말에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서 자신을 변호하듯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시를 지은 것이다.

 

그렇다면 구시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가 누구이고 무슨 말을 했기에 다윗은 식가욘’, ‘슬픈 노래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이렇게 애통한 시를 하나님께 올린 것일까?

시편 7편의 기록만 봐서는 구시가 누구인지, 뭐하는 사람이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어떤 학자들은 베냐민 사람 구시라는 말에서, 베냐민 지파 출신인 사울 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학자는 다윗과 함께 동굴에 숨어있던 다윗의 추종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니깐 함께 도망하고 있는 베냐민 사람 중 누군가가 다윗의 신경을 거스르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혹은, 사울 왕이 죽고, 다윗이 왕위를 이어받은 것에 대하여 무척이나 못마땅하게 여긴 베냐민 지파 사람 중에 다윗에 대한 반대 운동을 했던 어떤 한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누구의 말이 맞든지 간에, 시편 7편의 역사적 배경은 다윗이 사울의 질투를 받아 쫓겼던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성경에서는 사무엘상 24장을 시편 7편의 시대적 배경으로 보고 있다.

우리도 이 배경으로 본문을 살펴볼 것이다.

 

다윗은 사울의 신하이자 사위였다.

한결같이 사울에게 충성했던 다윗이었지만, 사울은 다윗의 충성심을 의심해서 죽이고자 했다.

이로 인해 다윗은 오랜 도피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된 것은 앞서 말한 대로 다윗에 대한 사울의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다.

사울이 삼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다윗을 잡으러 엔게디 광야로 갔을 때, 다윗이 숨어있는 동굴에서 볼일을 보게 된다.

그때 다윗과 함께 동굴에 숨어있던 사람들은 다윗에게, 이때가 사울에게 원수를 갚을 절호의 기회라고 권하게 된다.

그러한 모습을 사무엘상 244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 이다 하니…….”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자신이 죽일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사울을 죽이지 않고 그의 옷자락만 자른다.

그것마저도 다윗은 마음에 찔렸다고 사무엘상 245절에 기록되어 있다.

사울이 동굴 밖으로 나갔을 때, 다윗도 따라 나가 멀리 서서 사울 왕을 소리 내어 부른다.

그리고 자신이 잘라낸 옷자락을 보이며 다윗이 사울을 죽일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알아 달라고 말한다.

사울은 그 모습에 감동하여 그 자리에서 돌아가게 된다.

 

이처럼 시편 7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중에, 자신을 죽이고자 따라오는 원수, 사울조차도,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이므로 그를 칠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끝까지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어 달라고 부르짖는 간구의 노래가 바로 식가욘’, 다윗의 슬픈 노래, 시편 7편이 되는 것이다.

 

다윗은 본문 1, 2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자신은 직접 대적을 칠 수 없고 단지 피할 뿐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대적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을 호소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원수는 우는 사자와 같이 덤벼들어 다윗을 죽이려고 할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호소하는 이유는 자신이 결백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에게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문 3~5.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만약에 혹여라도 자신에게 잘못이 있고, 사울 왕에게 해를 끼친 일이 있다면, 그냥 원수들에게 망하도록 넘겨 버리시라고 고백한다.

원수의 핍박을 받아 죽어도 좋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못 받아도 좋다는 말이다.

극한 수치와 파멸에 빠지도록 하시라는 것이다.

만약 다윗이 자신을 쫓는 원수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말이다.

 

다윗은 오직 언약의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려 한다.

그리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확신하며 호소한다.

본문 6~8.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본문의 일어나사이라는 히브리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명령어로, 하나님이 백성을 위해 전쟁터로 나아가실 때 사용된 말이었다.

대적들의 헛된 노를 막기 위해 전쟁을 치러 달라는 호소인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심판해 주실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본문 9~11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재판장이시기 때문에 모든 의인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이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 안에서 안전하게 될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본문의 분노는 당연히 악인에 대한 분노이다.

다윗은 이 분노가 매일 끊임없이 악인에게 임한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본질상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악인과는 함께하시는 것이 불가능하시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매일 악인을 거부하는 것으로 심판을 하고 계신 것이다.

 

이렇게 악에 대해 날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만이 기다릴 뿐이다.

본문 12, 13.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칼을 갈고, 활을 당기고 악인을 향한 심판의 도구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활은 불화살이기 때문에 급소를 피해 맞았다 하더라도 불에 타 죽을 수밖에 없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주님의 심판인 것이다.

 

회개치 않은 악인은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다.

본문 14~16.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악인은 자멸할 수밖에 없다.

악인에게서는 죄악과 거짓만이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을 잡으려고 함정을 파 놓지만, 그것은 자기 무덤이 될 것이다.

악인이 휘두른 폭력은 결국 자기 머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런 믿음,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윗은 억울함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문 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억울한 마음으로 절박하게 시작되었던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다윗은 기도하고 찬양하는 중에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날 목자와 같이 자신을 보호하셨던 하나님의 인도가 기억났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무릎 꿇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함께 했던, 주님의 보호하심 아래 있었던 행복하고 아름다운 역사가 기억되고 찬양하게 하고 감사하게 하실 것을 확신한다.

 

말씀 마무리.

우리는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사건을 통해서 인간관계로 인해 억울한 고난을 당하는 다윗의 심정을 나누었다.

시편 7편의 배경에서 다윗이 겪은 고난은 그의 잘못 때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당하는 고난은 목숨까지 위태로운 고난이었다.

그리고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계속되는 고난이었다.

중간에 그 고난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기회도 있었다.

주위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고 다윗을 종용하였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면서 그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다윗은 사울을 살려 보내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사무엘상 2415.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부분은 시편 7편의 핵심 주제라고도 말할 수 있다.

다윗이 원수를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우시고,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현실을 다 알고 계심을 다윗은 확신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의로움이 승리할 것을 믿음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때로는 그 관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게 하신 관계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 관계가 이상하게 틀어지거나, 그 관계로 인해 슬픔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믿는 우리는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세상과는 다른 시각을 가져야만 한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의 잘못을 드러내려고 한다.

상대방이 잘못한 것이 되어야 내가 무죄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내가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각은 믿음의 시간이어야 한다.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당장 눈앞의 손해와 이익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눈을 들어 의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가장 선한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익, 어떻게 해서든 나와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을 이기려는 마음, 이러한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답답하게 보이고 어리석은 생각과 무지한 선택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고의 선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 공동체 여러분.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의 뜻을 따르려고 한다면.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마침내 우리의 모든 억울함을 풀어주실 것을 믿고 확신한다.

모든 관계의 어려움을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을 한 번 더 확신한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결코, 악인과 함께할 수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는 악인에게 그 어떤 자비도 남겨 두시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의인의 억울함과 슬픔을 감사와 찬양으로 바꾸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지금 말할 수 없는 억울함이 나를 힘들게 하는가?

공의의 하나님을 믿으며,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