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여호와 우리 주여...
본문 : 시편 8편
1.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 나이까
5.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말씀 :
시편 8편은 찬양의 시이다.
어느 날 다윗은 하늘과 그 하늘에 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깨닫게 된다.
이전에도 바라보았던 똑같은 하늘이지만, 그가 성령의 눈으로 보았을 때, 온 만물은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나타내고 있는 알게 된다.
그래서 시편 8편은 창조주의 놀라움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의 특별함을 신령과 진정으로 노래하고 있다.
시편 8편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라는 표제가 기록되어 있다.
이 ‘깃딧’이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아마도 옛 히브리인들이 불렀던 음악의 곡조나 사용된 악기로 추측된다.
‘깃딧’이란 제목이 붙은 시편은 시편 8편 말고도 두 편이 더 있는데 81편과 84편이다.
이 두 시편은 모두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시편 8편에서 다윗은 온 우주의 창조와 하나님의 통치, 경이로운 주님의 능력을 그의 눈앞에 두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증거가 자연의 모든 질서를 통해서 제시됨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는 온 만물을 바라보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처음을 다윗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이름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본문 1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모든 나라와 모든 땅을 넘어, 온 우주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온 세상과 온 땅, 온 하늘 위에서 아름답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이로움은 온 땅에 가득하며, 하나님의 명성은 하늘에까지 닿아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 위에까지 덮었다고 고백한다.
땅이 아무리 넓어도, 하늘이 아무리 넗어도 하나님의 놀라우심과 아름다움, 그 신비한 영광을 다 담기에 너무 좁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이름을 찬양한 다윗은 이어서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한다.
본문 2절.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본문의 ‘대적’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자랑하며,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여, 하나님과 맞서는 이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자기 자랑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가소로운 일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들을 부르신다.
‘어린아이’와 ‘젖먹이’는 자신의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겸손한 자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젖먹이 같은 이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들을 통하여 그의 권능을 세우신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연약한 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행하게 하심으로 창조주의 이름을 부인하고, 교만하여 자기 자랑하기 바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내가 어린아이와 같이 무지하고, 젖먹이와 같이 무력하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지혜로우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강하시기 때문이다.
강하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믿고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계속해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온 우주에 시선을 돌린다.
본문 3절.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고 생각해 볼 때, 인간의 존재는 너무나도 작고 미약함을 깨닫게 된다.
이런 우주 앞에서 인간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 다윗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주께서 베풀어 주신 하늘과 달과 별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 존재인지를 하나님 앞에서 고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4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저 광활한 우주를 바라볼 때 인간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하물며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는 너무나 하찮게 보일 것이다.
저 넓은 우주 앞에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은 그리 큰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인간이 하나님께서 가장 깊은 관심을 갖는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다윗은 놀라워한다.
보잘것없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관심을 다윗은 찬양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초라하고 작은 존재인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 인생에 관심 가지시고 기억해 주셨다는 것이다.
본문의 ‘돌보시나이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파카드’이다.
이 단어는 동사로 본문에서는 ‘주의 깊게 돌보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스쳐지나가듯이 보는 것이 아니다.
주의 깊게, 집중하여, 신경 써서 사람을, 인간을, 인자를 돌아보신다는 것이다.
우리를 주의 깊게, 집중해서 돌아보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다윗은 계속해서 이렇게 고백한다.
본문 5절.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개역 한글에서는 ‘하나님’이 아닌 ‘천사’로 번역되어 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엘로힘’이라 기록되어 있다.
초기의 많은 번역본들은 이를 ‘천사’로 번역했었다.
70인 역, 라틴어 역본인 벌게이트 역, 시리아 역본 등은 모두 ‘천사’라고 번역했다.
그리고 히브리서에도 70인 역을 따라서 ‘천사’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사람을 하나님과 비교하는 것이 신성 모독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천사’로 의역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른 학자는 여기서의 ‘엘로힘’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일반적인 신적 존재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니깐 ‘엘로힘’은 ‘하늘에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지 ‘엘로힘’보다 좀 못한 존재로 인간을 만드셨지만, 인간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고 고백한다.
‘영화와 존귀’는 왕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관을 씌우셨다는 말은 인간을 만물을 다스리는 지배자로 세우셨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만물을 다스리는 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리는 권능의 일부를 허락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다.
다윗은 인간에게 허락하신 놀라운 권세를 6절부터 8절까지에 다시 한번 찬양하며 고백한다.
본문 6~8절.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왕에게 백성이 종속되어 있듯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통치권에 만물을 종속시키신 것이다.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 땅과 바다와 공중에 있는 모든 생물이 인간들의 지배에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왕 적인 영광이다.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워주신 인간을 위한 영광이다.
그 은혜를 감사하며 다윗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하면서 자신의 찬양을 마무리한다.
본문 9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그 옛날 다윗이 바라보았던 주의 영광을 오늘 우리도 바라볼 수 있기를 소원한다.
주가 베풀어 두신 달과 별을 바라보며, 겸손할 수밖에 없었던 다윗의 마음이 오늘 우리의 마음이길 기도한다.
그 미약한 존재인 인간을 사랑하시어, 집중하여 돌아보시고,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우시고, 세상의 왕으로 세워주신 은혜를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매일 매일 같은 하늘이었지만...
오늘 하루 새롭게 다가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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