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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19 호흡이 있는 자마다(시편)

구원이 여호와께 있사오니...(시편 3편)

by TwoTalents 2020. 5. 5.

이미치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구원이 여호와께 있사오니...

 

본문 : 시편 3편.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말씀 :

오늘 읽은 시편 3편은 다윗의 시이다.

성경의 표제에는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고 되어있다.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쳤었던 그 당시 자신의 마음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이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사무엘하 15~17장에 나타나 있다.

거기에는 압살롬의 반역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이 다윗을 버렸다는 사람들의 비웃음, 그날 밤에 닥친 암담한 위기, 기울어진 민심, 맨발로 울면서 감람산을 올랐던 다윗의 애절한 심경 등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 이 시를 짓고 있는 다윗의 심경은 참으로 암담할 것이다.

다윗은 백성들의 인심을 잃고, 쫓김을 당하는 슬픔을 겪고, 배신을 당한 처지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에 의해서 말이다.

그의 처지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무엘하 1530.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글로써 표현된 다윗의 상황이 상상되는가?

다윗의 외형이 흡사 역 주변에 계신 노숙자분들을 설명해 놓은 것 같은 글이다.

가끔씩 동네에서 보이는 정신적으로 불편함을 겪고 계신 분들의 모습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강력했던 왕, 다윗의 당시 모습이다.

하나님 앞에서 합한 자였던 다윗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 이유를 찾고 그것에 나타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큰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보다는 다윗이 가슴 아픈 이 고난을 어떤 마음으로, 어떤 눈으로,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먼저 이 시는 각각 2절씩 묶여있는 형식을 보이고 있다.

1~2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탄식한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다윗은 지금 자신의 처지를 하나님 앞에 가감 없이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막강한 권력과 엄청난 부를 주셨다.

그런데 다윗은 그것을 잘 감당하지 못했다.

무슨 이유에서건 지금 다윗에게 닥친 현실은 다윗, 자신에게 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도 다윗은 지금 수치스러운 상황에 처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그것을 부끄러워하며 숨기려 하지 않았다.

아들에게 쫓겨 도망가는 이 민망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다 아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자신의 백성들이, 다윗의 지지자였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버렸다고 말하며 다윗을 더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까지 다 고백하고 있다.

이건 참으로 힘든 고백이다.

더욱이 다윗처럼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이러한 고백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던 사람이 한순간에 벼랑 끝으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다윗은 이 순간을 가장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다.

 

이어서 3~4절을 통해 다윗은 여호와를 향한 여전한 신뢰를 선언한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 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 도다.(셀라)”

 

하나님께서 다윗의 현실을 해결해 주시기 그 이전에, 다윗이 먼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새롭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이었다.

다윗은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바라보며, 그 현실 안에 하나님을 끼워 맞추려 하지 않았다.

그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는 믿음을 다윗은 품고 있었던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방패라고 고백한다.

그의 보호하심을 믿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영광이라고 고백한다.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 현재 어떠한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는 다윗의 놀라운 믿음이다.

그리고 머리를 드시는 자라고 선언한다.

내 비록 슬픔 가운데 고개 숙이지만, 곧 기쁨과 감사로 내 머리가 들릴 것이라는 다윗의 확신이다.

이러한 확신에 찬 믿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주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음으로 선언하고 있다.

 

계속해서 5절과 6절을 통해 다윗은 자신이 무한 신뢰하는 여호와가 자신을 어떻게 보호하시는지에 관한 고백을 하고 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 이다.”

 

다윗은 지금 쫓기는 신세이다.

언제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주변 누군가가 자신을 배신하고 압살롬에게 지금의 위치를 고자질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한시라도 누워서 눈을 감기 힘든 상태일 것이다.

눕기는커녕 앉아있는 것조차 힘든 좌불안석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누워 자고 깨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다윗의 믿음에 의해 가능한 일이다.

자신을 지키실 것이라는 하나님을 향한 무한 신뢰가 다윗을 잠잘 수 있게 한 것이다.

그 때문에 다윗은 고통 중에도 평안할 수 있었다.

그가 불안했다면 밤새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원수들이 오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뜬눈으로 어둠을 지켰을 것이다.

단잠을 자고 깨어난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셨음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하나님에 대한 무한 신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평안은, 세상의 다른 평안과는 차원이 다른 평안이다.

다윗의 평안은 인간의 의지와 본능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다윗은 천만인이 자신을 에워싸고 진을 친다하여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원수들의 숫자나 그들의 지혜를 과소평가해서 나오는 고백이 아니다.

원수들은 천만인이나 되었고 그들은 지혜가 있었다.

사냥꾼들이 사냥감을 둘러치며추적하듯이, 원수들이 다윗을 잔혹하고 교묘하게 추적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나님이 그들보다 강하시기 때문이다.

그 강하신 하나님이 다윗을 지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무한 신뢰를, 그 믿음을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7절과 8절에서 다윗은 이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한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겨 드린다.

본문 7, 8.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

 

다윗은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실 것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저 하나님께서 일어나시기만 한다면, 그는 원수들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을 믿고 의지하였다.

하나님께서 원수의 뺨을 치셨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이 문장은 과거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미 주께서 승리하셨다는 것이다.

주께서 악인의 그 날카로운 이를 꺾으셨다.

다윗은 이제 두려움이 없다.

주께서 이미 그들을 무력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마지막 고백을 올린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말씀을 마무리...

조금 오래된 통계이긴 한데, 인간의 행복지수를 위한 여러 가지 설문 조사를하고 그에 대한 결과를 기록한 통계를 본적이 있다.

그 통계에 의하면 사람이 걱정하는 일의 90%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한다.

나머지 10%도 내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깐 이 통계에 의하면 걱정은 정말 쓸데없는 것이 된다.

걱정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너희가 걱정한다고 너의 키를 한 치라도 자라게 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결코 아무런 고난을 당하지 않을 수 없다.

참된 믿는 자라면 악과 타협할 수 없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할 때, 끊임없이 고난에 처하는 것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때로는 믿음 없는 사람들이 나의 처지를 보고, 갑자기 내 믿음을 걸고넘어지며 내가 잘못되었다고 조롱할지도 모른다.

오늘 다윗이 그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가 한 치의 잘못도 없었고, 한 치의 실수도 없으며, 아무런 고난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윗이 위대한 것이 아니다.

그는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갔다.

그리고 하나님을 먼저 찬양했다.

그의 신실하심을 경배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무한 신뢰했다.

그리고 그의 승리하심을 선언한다.

결국, 여호와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복을 내리실 것을 확신하며 선포하였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혹시 우리 앞에,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어려움이 밀어닥치고 있는가?

죽을 것 같은 괴로움이 나를 엄습하는가?

나는 이제 끝이다.’라고 한숨지을 슬픔이 내 마음을 공격하는가?

오늘 다윗이 그러했던 것처럼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나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신뢰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승리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우리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구원이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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